‘웹툰’의 영향력이 미디어를 집어 삼키고 있다. ‘디지털로 보는 만화’라는 속성을 넘어, 다양한 장르로 자유롭게 확장되며 위세를 떨친다. 국내 최초로 연작 두 편이 모두 관객 수 1000만을 넘은 영화 ‘신과 함께’부터, 최근 전 세계 18개국에서 1위를 차지한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까지, 활약을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전 세계 엔터 업계가 웹툰 시장을 주목한 지는 이미 오래다. 검증을 마친 강력한 IP(지적재산권) 콘텐츠에 대한 수요 덕분이다. 만화에서 영화‧게임‧관련 상품으로 확산되는 ‘미디어믹스’의 주인공은 단연 웹툰이다. 자연스레 플레이어들도 늘어난다. 최근에는 아마존‧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까지 웹툰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을 정도다. 지난 2000년대 초반, 네이버가 웹툰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예상할 수 없었던 파급력이다.
반가운 것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 웹툰 생태계의 주도권을 꽉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명실상부 웹툰 산업의 종주국으로, 제작‧유통 전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여기에 ‘스토리테크’를 자처하는 다양한 스타트업들의 활약까지 더해지며, 종주국으로서의 지위를 다져가는 모양새다.

웹툰의 영향력은 협업과 연계를 통해 무궁무진하게 확대된다. 최근 네이버 웹툰, KB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주식회사 열혈강호’의 행보는 웹툰의 가치사슬이 어떻게 확장되는지 잘 보여준다. 해당 스타트업의 절대 자산은 무려 28년 간 연재됐던 무협만화 ‘열혈강호’다. 온‧오프라인 통틀어 1000만부 이상 판매됐던 메가 히트작. 이 회사는 이를 대표 IP로, 새로운 웹툰‧웹소설 등의 2차 창작물을 제작할 계획이다.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굿즈 등으로 확장되는 것 역시 예정된 수순. 전명진 주식회사 열혈강호 대표는 “대한민국 만화의 역사인 열혈강호를 전 세계적인 메가 IP로 성장시킬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인기 웹툰이 드라마로 제작되는 것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지난해 한국에서 공개된 웹소설·웹툰 원작 드라마만 27건에 달할 정도. ‘사내맞선’, ‘유미의 세포들’, ‘지금 우리 학교는’ 등 화제작도 많다.
지난 5월, 콘텐츠 스타트업 ‘㈜피플앤스토리’가 웹툰 ‘죽음 대신 결혼’의 드라마 제작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해당 작품은 카카오페이지에서 인기리에 연재 중인 웹툰‧웹소설로, 다수의 OST가 동반 인기를 끌며 드라마화의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회사 측은 “드라마는 원작과는 또 다른 영상 콘텐츠만의 재미를 전할 예정”이라며 “앞으로도 우리가 보유한 다양한 IP의 영상화로 콘텐츠 시장에 활력을 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웹툰의 드라마화가 일상적인 현상이 되면서 다양한 변주도 생긴다. 글로벌 웹툰 플랫폼 ‘태피툰’의 운영사 콘텐츠퍼스트는 지난해 말, CJ ENM와 ‘콘텐츠 제작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콘텐츠퍼스트는 해당 MOU를 통해 CJ ENM의 드라마·영화를 원작으로 한 웹툰·웹소설을 제작할 계획이다. 이는 IP확보에 대한 시장의 니즈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방선영 콘텐츠퍼스트 대표는 “향후 콘텐츠 기업들과 활발한 업무 제휴를 통해 IP의 단순 실사화를 넘어 장르 간 융합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콘텐츠 IP의 탁월한 가치를 통해 급성장하고 있는 웹툰 생태계는 혁신 기술과 만나 더욱더 풍성해진다. 가장 대표적인 기술은 역시 ‘인공지능(이하 AI)’이다. 웹툰 제작 과정을 학습한 AI가 자동으로 웹툰을 그려주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가장 잘 알려진 서비스는 스타트업 ‘툰스퀘어’의 ‘투닝’이다. 해당 서비스는 글로 쓴 문장을 만화로 바꿔줄 정도의 직관성을 탑재했다. 접근이나 이용 방식의 문턱을 크게 낮춰 비전문가들이 활용하기에 적합하다. 지속적으로 고도화되는 AI기술의 특성상, 서비스의 활용도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해 프리A 투자를 유치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던 ‘오늘의 웹툰’은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케이스다. 독자들의 데이터를 웹툰 작가들에게 제공하는 ‘웹툰 애널리스틱’이 핵심 기술. 철저한 데이터 분석이 흥행성과 작품성을 제고한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업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이 회사에 투자를 진행했던 한 관계자는 “웹툰 시장의 핵심은 히트작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것”이라며 “오늘의 웹툰은 그 노하우를 기술적‧사업적으로 구현한 최초의 스타트업”이라고 평가했다.

블록체인, NFT 등 웹3의 기술을 활용해 독자가 웹툰 IP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지난 5월, 콘텐츠 스타트업 ‘오지’가 출시한 ‘치즈코믹스’는 독자가 작가와 함께 웹툰 작품을 완성하고, 성과에 기여한 만큼 보상을 받는 인터랙툰 서비스다. 이홍인 오지 대표는 “웹툰 시장 성장의 진짜 주역인 독자들과 함께 하자는 취지의 서비스”라며 “양산형 웹툰에 대한 피로도를 극복하는 선기능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사는 지난해 투자 유치와 팁스 선정 등을 일구며 웹툰 시장을 혁신하기 위한 동력을 마련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