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에겐 너무 벅찬 ‘일조량’
초딩에겐 너무 벅찬 ‘일조량’
2016.03.11 10:14 by 시골교사

구구단 없는 수학과 찍기 없는 시험. 과속 없는 배움의 현장을 엿보다.

큰아이 4학년 때, 한국의 수학책을 함께 들춰보다 ‘억’소리에 놀랐다. 벌써 억 단위 문제가? 독일의 동 학년 교과서엔 천 정도가 고작이고, 많아야 만 단위다. 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둔 교육과정에 억씩이나 필요할리 만무하다. 한참을 이해시키고, 다음 장을 넘기니 사태는 더 심각했다. 무려 조 단위… 아연실색한 나에게 큰아이가 묻는다.

“엄마, 5학년에 올라가면 또 어떤 단위가 나와요?”

1조. 0이 12개, 전부 세려면 10년이 걸리는 막대한 수. (사진: megainarmy/shutterstock.com)


| 4학년에 조 단위가 필요할까?

“왜 들어오려고 그래? 남들은 못 빠져 나가 야단인데, 그냥 거기 눌러 앉아.”

한국에 지인과 통화하면 종종 들었던 말. 들을 때마다 혼란스럽고 마음도 무거워졌다. 대학교 식당에서도 이런 류의 대화는 잦다. 특히 나처럼 애가 있고, 곧 돌아가야 하는 학생 부부에게 한국 교육의 현실은 희망 보다는 유감 그 자체. “교육현실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아예 교육에 희망을 접고 이민 가는 사람도 많다”는 얘기를 들으면 먹던 밥이 갑자기 얹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석사논문을 제출하고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마음이 무겁고 분주해졌다. 가장 큰 걱정은 아이들의 적응문제. 경쟁적 교육 시스템도 걱정이지만, 당장 급한 건 한국말이었다. 큰 아이는 한국에서 기억, 니은 정도만 익혀온 수준. 글자 읽을 줄은 알았지만, 그 뜻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더구나 돌아가면 5학년인데 그동안 놓친 어휘력을 어떻게 만회해 주어야 할지 대략난감이었다.

얘야, 무슨 일이야. 우슨 일 아니고…(사진: Eiko Tsuchiya/shutterstock.com)

일단 급한 대로 아는 상사직원에게 한국 교과서 몇 권을 얻어 큰아이와 함께 들쳐보곤 하는 게 전부였다. 국어책은 엄두도 못 냈기 때문에, 그나마 아이가 좋아하고 글이 적은 수학책에 먼저 도전했다. 그런데 4학년 수학책이 정말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조 단위가 소개 되어 있는 것도 모자라 그걸 토대로 우리나라 예산규모를 읽는 부분도 있었다. 도대체 4학년에게 이런 게 왜 필요한 거지?

 

| 독일의 수학은 숫자놀음이 아니다

큰아이는 나름 영민한 편이다. 하지만 독일에서 공부하기엔 불안한 면도 꽤 있었다. 아이의 독일어 이해력과 관사사용이 완벽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국어(독일어) 뿐만 아니라 수학과목 점수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큰 아이의 독일어 점수는 평균적으로 4년 내내 1.5(A-)~2점(B+), 수학은 1점(A+)이었다. 수학을 잘했지만, 완벽한 만점은 아니었다. 45점 만점에 43점, 56점 만점에 53점 정도. 독일어는 관사가 늘 문제였고, 수학에서는 서술형 문제의 이해가 걸림돌이 되었다.

외국에선 언제나 언어가 발목을 잡는다. (사진: iQoncept/shutterstock.com)

독일 초등학교의 수학시험은 한 학기에 두 번 치러진다. 시험채점이 끝나면 채점한 시험지를 돌려주고 부모확인을 받게 한다. 나는 채점된 시험지를 확인하면서 초등학교 수학문제 형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한 시간짜리 수학시험에서 학생들이 풀어야 할 문항 수는 35개에서 많으면 45개 정도. 교과시간에 다룬 학습주제를 모두 다루되, 주제 당 한 문제가 아니라 한 주제에 난이도를 달리한 여러 개의 문제를 낸다. 해당주제에 대한 아이들의 이해력과 계산력 정도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다.

점수는 문항마다 좀 차이가 있어 전체 60%를 차지하는 연산문제는 1점씩, 나머지 응용문제는 3점 내지는 4점씩이다. 여기에 보너스 문제도 몇 개 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어렵다고 해서 ‘크노블라우(마늘)’ 문제라 불리는 것들이다. 풀어도 그만, 안 풀어도 그만인, 말 그대로 보너스지만 잃은 점수를 만회할 수 있기 때문에 의욕 있는 학생들은 이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전체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서술형 응용문제다. 이 서술형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4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문제에 해당하는 식을 써야하고, 그 다음에는 계산을 하고, 답을 적은 뒤, 마지막으로 그 답이 갖는 의미를 적어야 한다. ‘수학 문제에 답은 그냥 숫자일 텐데, 의미라니?’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5명이 10조각된 피자 한판을 놓고 공평하게 나눈다면 한 명당 몇 조각씩 먹으면 될까? 라는 질문이 나오면, 우리 같으면 ‘10/5=2’로 끝난다. 그런데 독일에선 숫자 ‘2’가 갖는 의미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즉 “2조각은 5명이 10조각짜리 피자 한판을 놓고 공평하게 나눌 때 한 명당 먹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라고 적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응용문제는 식과 풀이과정, 그리고 답과 그 답의 의미로 나뉘어 점수가 단계별로 채점되는데, 답이 틀려도 과정이 맞으면 부분점수가 부여된다.

수학문제에 담겨있는 나눔과 공평함의 의미 (사진: Syda Productions/shutterstock.com)

숫자가 갖는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대학교 시험문제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수학과 통계시험 문제에서 결과로 나온 숫자의 의미를 반드시 적어 주어야 만점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수학은 계산이 목적이 아니라, 숫자 속에서 의미를 읽어나가는 것임을 그들은 어릴 때부터 익혀 나간다.

   

시골교사_2_이모저모

독일교육 이모저모

‘논리적인 태도를 만드는 독일의 가정교육’

독일에선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좋고 나쁨에 대한 의사를 분명하게 보입니다. 자기표현이 확실하죠. 부모도 그런 아이의 태도를 존중하고요. 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시나브로 이뤄지는 가정교육으로부터 기인합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의 사소한 의견을 경청해주고, 자기의사를 분명하게 밝히도록 교육하는데, 그게 무조건 아이의 편을 들어 주어 아이를 응석받이로 만드는 걸 의미하진 않습니다. 잘못되고 아닌 것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구분하여 가르치는 것이죠. 또한 충분한 설명과 설득을 통한 대화와 타협방식을 부모로부터 배우고 익히기 때문에 밖에 나와 떼를 쓰거나 억지를 부리지 않고, 함부로 대들면서 권위에 도전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정서와 문화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이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감정적으로 흥분해서 싸우려고 덤비지 않고, 조곤조곤 논리적으로 상대에게 자신의 의사를 설명해 나갑니다. 그래서 어른이나 아이가 소리소리 지르거나, 흥분하여 다투는 일을 보는 게 이곳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사진: Cherries/shutterstock.com)

 

다음이야기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나라가 전설 속에나 있다고 믿는 독일의 아이들. 그들의 방과 후 일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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