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조각 피자
달과 6조각 피자
달과 6조각 피자
2016.04.19 12:00 by 송나현

보름달을 보면 피자 생각이 난다. 3.1415929……로 시작되는 π를 공유하는 원 모양이기 때문일까. 또띠아, 파전, 계란 후라이, 호빵 등 둥근 모양의 음식은 많고 많은데 왜 하필 피자일까?

달, 달, 둥근달, 피자같이 둥근달(사진: Fotoatelie/shutterstock.com)

둥근 보름달과 둥근 피자

보름달을 보면 피자가 떠오른다. 연상작용이라는 게 결국 개인의 추억에서 비롯되지 않나. 서울에 처음 올라와 향수병을 앓던 나를  한강에 데리고 간 친구가 있었다. 낮은 포근하지만 밤은 약간 쌀쌀한 4월이었다. 그날 보름달은 구름에 살짝 가려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친구는 캔맥주와 함께 피자를 사들고 왔다. 피자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썩 좋아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그날, 서늘한 바람이 부는 한강에 마주 앉아 캔 맥주랑 먹는 피자는 특별했다. 이미 식어버려 쭉 늘어나는 치즈는 없었지만, 통통한 새우와 푸르고 빨간 채소 조각들, 매콤한 소스와 어우러지는 달콤한 토핑. 씁쓸하고 알싸한 캔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그날 달의 영향으로 우울했던 나는 달과 똑 닮은 피자로 향수병을 잠재웠다. 그날 이후  달이 뜨면 늘어지는 나는 늘어나는 피자를 먹는다.

보름달이 떠오르면 왜 우울해지는 걸까. 사실 그 감정은 나만 특별히 겪는 게 아니다. 달이 주는 우울함은 수많은 소설과 시와 희곡에 문학적 장치, 배경을 제공했다. 천문학자인 케플러의 <달의 꿈, 또는 달 천문학>, 에드거 앨런 포의 <한스 파알의 놀라운 모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메리 셸리의 <프랑케슈타인>, 두보의 <월원(月圓)> 등…

Lunatic으로 써내려간 The Moon and Six pence

하지만 달에 의한 광기와 우울함을 문학 속에 잘 잡아낸 작품은 ‘달과 6펜스’다. 예술가들이라면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광기 때문에 가족을 버리고 세상과 등진 남자 ‘폴 고갱’. 그를 소재로 삼은 소설은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을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다.

난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분노’를 느꼈었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에서 증권 중개인 일을 하던 부유한 사십 대 남자다. 그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겨’ 가족과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파리로 떠난다. 그는 파리에서 가난과 병을 안은 채 자족적인 예술가의 삶을 산다. 그는 자기 육체를 비롯한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 그는 자기를 도와준 더크에게 전혀 고마움을 느끼지 않으며, 자기의 그림 모델이 되어 주고 자기를 위해 남편을 버린 더크의 아내 블란치를 자살로 몰아간다. 그는 예전 가족들을 속물로 폄하하며 잊어버린다.

예술 혼이 전부였던 그는 타히티로 떠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나병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에서도 그림을 남긴다.

Galerie Neue Meister,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Foto: Jürgen KarpinskiPaul GauguinParis 1848 – 1903 La DominiqueParau Api. Gibt’s was Neues. 1892Öl auf Leinwand; 67 x 92 cmGalerie Neue Meister, Gal. Nr. 2610Verwendung nur mit Genehmigung und Quellenangabe

도덕적 잣대를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지만, 무책임함은 우리 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는다. 나처럼 ‘분노’를 느끼는 타인이 부담스러워 사람들은 도덕적 기준에 맞춰 살아간다. 그러나 스트릭랜드는 도덕률의 핵심인 ‘보편적인 법칙’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내면의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 관습과 통념을 깡그리 무시할뿐더러 타인의 배려와 희생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은인이나 다름없는 친구 더크 스트로브를 ‘배신’하고 그의 아내 블란치를 죽음으로 몰아갔음에도 죄책감은 전혀 느끼지 않는다.

어쩌면 예술성과 뒤틀린 성격은 운명의 동반자인가 보다.

예술성과 뒤틀림 조합의 대표적 예 Kanye west <사진:Tinseltown/Shutterstock.com>

천재 예술가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주변 인물들은 모두 희생양이 된다. 그들의 희생은 기록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적 통념에 빗대) 비도덕적인 예술가의 작품은 후대에 길이 남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분노’도 가변적인 인습의 허위일 뿐일지 모른다. 그의 불타는 예술성은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받았고, 그의 가학적인 성격은 그 평가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 뿐이었다.

서머싯 몸이 생각하는 옳은 삶이란 무엇일까. 그는 왜 광기에 물든 스트릭랜드의 삶을 창조한 걸까? 실제 모델 폴 고갱이 남긴 달 그림에 영향을 받았을지 모른다.

그가 나처럼 달의 우울함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피자를 떠올릴 때 그는 대작을 창조했다.

하류층 음식에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음식이 되기까지

사실 서머싯 몸이 달과 6펜스를 쓸 시절만 하더라도 피자는 이탈리아 하류층의 간단한 식사였다. 의사, 극작가, 소설가로서 성공 궤도를 달리던 그가 피자를 먹을 일은 거의 없었다.

피자는 18세기경 이탈리아 나폴리의 빈민가에서 탄생했다. 소금을 뿌린 이 얇은 빵은 당시에도 매우 사랑받는 음식이었는데, 가격이 저렴해 가난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도 먹곤 했다. 1734년 피자빵 위에 토마토소스가 처음 올려졌고, 당시 피자가게 이름은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치치치오 엔추오노 카파소 다프에르토'가 바로 그것이다.

이탈리아 남부 주민들이 북부로 이주하면서 피자가 더 많이 알려졌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 주둔했던 군인들이 피자의 세계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또 유럽과 미국으로 이탈리아인들의 이민 행렬이 이어지고, 이탈리아를 찾는 관광객이 늘면서 피자는 그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음식이 세계화된 데에는 미국인들의 비즈니스 정신이 한몫 톡톡히 했다고 한다.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두 가지 음식 트렌드가 있었다. 이국적인 음식 ‘에스닉 푸드(Ethnic Food)’와 편리한 것의 추구였다. 피자는 이 두 가지 흐름을 모두 만족하며 하나로 통합했다. 미국인들은 이탈리아에서 온 피자에 열광했다. 1960년 이후 도미노와 피자헛이 문을 열었다. 그 후 피자는 성공궤도를 달리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어울리는 음식으로 찬미 받는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피자를 먹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21세기 SNS에는 부자들이 애용한다는 피자 가게를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이 올라온다. 피자는 이제 전 계층, 전 나잇대를 어우르는 음식이 되었다.

서머싯 몸이 21세기에 살았다면 피자를 즐겨 먹는 가난한 예술가가 서술하는 소설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북앤쿡동화 ‘시골 쥐, 도시 쥐’ 속에 나왔던 지하실. 그곳에 한 가득 쌓인 음식은 봉인됐던 나의 ‘식탐’을 깨웠다. 이후 대하소설 ‘토지’를 보고선 콩나물 국밥을 사먹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곤 마들렌을 처음 접했다. 쿡·먹방 시대를 맞아 음식과 문학의 이유 있는 만남을 주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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