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때로는 날선
낯선, 때로는 날선
2016.06.30 17:43 by 시골교사

“수업시간 내내 안경 쓴 사람 수만 세다가 나왔어.”

유학생 동료가 첫 학기, 첫 수업 시간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사실 처음 들었을 땐 코웃음을 쳤었다. 첫 학기 내내, 수업 종료 종소리와 함께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주섬주섬 책가방을 싸는 내 모습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종 울리네, 집에...가자...(사진:michaeljung/shutterstock.com)

 

| 독일 대학의 신학기 선물

“0월 0일 0시, 신입생을 위해 선물 꾸러미를 나눠줍니다.”

학기 초가 되면, 학교 식당 문에 이런 안내문이 붙는다. 신학기 처음 접한 생소함이다. ‘유치원도 아니고, 대학교에서 뭔 선물?’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공짜라면 기대감부터 드는 게 인지상정. 꾸러미 안에 어떤 것이 들어 있을까?하는 설렘와 함께 디데이를 손꼽아 기다린다.

약속한 날짜가 되면, 학교식당 중앙에 선물 진열대가 마련되고, 상품샘플이 든 선물 꾸러미들이 놓여진다. 학생들은 식사 후 그것을 들고 갈 수 있다. 사실 이는 기업들이 학생들에게 신상품을 광고하기 위한 홍보 전략의 하나다. 잡지, 면도기, 맥주, 음료수, 초콜릿, 샴푸, 스프, 커피, 향수, 여기에 콘돔까지… 꾸러미 안에는 그 때 그 때 다양한 샘플들로 가득하다.

면도기, 샴푸, 향수, 콘돔… 응? 콘돔??(사진:Andrii Gorulko/shutterstock.com)

독일유학 초년병 시절에는 ‘뭐 이런 걸 다 주냐’하고 겸연쩍은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가난한 유학생에게 체면이나 자존심이 대수일까. 해가 갈수록 낯이 두꺼워져 창피한줄 모르고 양손에 두 개씩도, 때로는 몇 번씩도 왔다갔다 하며 물건을 챙기기도 했다.(이 모습에 가장 눈살을 찌푸리던 남편조차 어느 순간 나만큼이나 꾸러미를 챙겨왔다.)

하지만 그런 잠깐의 민망함은 가족 모두를 즐겁게 했다. 남편은 새로 나온 커피를 즐기고, 아이들은 여느 때와 달리 선뜻 내주는 초콜릿을 얻어먹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우린 새 학기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 첫 학기에 마주한 ‘낯섦과의 싸움’

항상 그렇듯 처음은 기대 반, 긴장 반이다. 그런 마음을 품고 들어간 첫 수업은 ‘대수학’ 시간이었다. 주제는 수학의 ‘명제’. 어렴풋이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이 다뤄지는 듯했다. 반가움 마음일랑 애써 감추고, 짐짓 허세도 부려봤다. 아니 독일 대학교 수학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 돼?

하지만 착각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업 내용은 난해해지고, 집중력은 깨졌다. 흩어진 마음을 다 잡아보려고 머리를 흔들다 보면, 어느새 수업종이 ‘땡땡’.

배웠다고 생각했던 것도 그럴 진데, 생소한 주제는 더 심하다. 대표적인 게 ‘부기과목(Buchfuehrung)’. 지금까지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던 걸 독일어로 처음 접하니 말 그대로 ‘감감’하다. 어느 순간에는 수업시간에 앉아 있는 것이 오히려 시간낭비라는 생각마저 든다.

여긴 어디, 난 누구?(사진:Creativa Images/shutterstock.com)

‘나만 이렇게 못 알아듣나?’싶어 중국 친구들을 곁눈질 해보니, 그들 역시 시선만 교수에게로 고정해 놓고 있을 뿐, 딱 봐도 영혼은 가출상태다. 그럴 땐 얼마나 감사하던지... 이 시간에 나 혼자만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은 의외로 큰 위로가 된다.

그 와중에 전공을 경제학으로 정한 건 신의 한수다. 차후에라도 숫자를 보며 어느 정도 흐름을 파악할 순 있으니 말이다. ‘말 많은’ 인문 과목을 택했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물론 제일 자신만만했던 미시경제조차 가까스로 합격하긴 했지만)

 

| 전공 단어와의 전쟁

사실 유학 첫 학기는 전공과목 혹은 책과의 싸움이라기 보단 전공단어와의 싸움이다. 책 한 장을 이해하는 데 족히 1시간 정도가 걸리고, 전공 책은 거의 단어장이 되어 버린다. 교재 하나 제대로 볼 만큼의 실력도 안 되고, 그럴 시간도 없으니 새로운 공부전략이 필요했다. 그 중 두 가지는 실제로 학습에 큰 도움이 되었다.

두 개의 연습시간, ‘위붕(Uebung)’과 ‘토토리움(Tutorium)’이다.

위붕(Uebung)은 일종의 내용정리다. 담당교수 밑의 박사과정 조교들이 교수가 한 주간 진행한 강의내용을 요약하여 설명해 준다. 토토리움(Tutorium)은 문제 풀이 시간이다. 과목 성적 우수자들이 시간당 보수를 받고 진행한다. 한 과목에 대해 많게는 서너 명이 진행하고, ‘잘 가르친다’고 입소문난 선배에겐 학생들이 몰리기도 한다. 그렇게 지식은 선·후배 사이의 가르침과 배움으로 이어져, 참여하는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 독일 대학에는 OO이 없다

독일 대학엔 (우리와 비교해) 없는 것들이 꽤 있다. 지난 회에 언급한 수강신청 같은 게 대표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아이러니한 두 가지가 ‘출석체크’와 ‘땡땡이’다.

독일 대학은 강의 시간에 출석 체크를 따로 하지 않는다. 강의를 듣고 안 듣고는 100% 자율이다. 하지만 시험은 그렇지 않다. 시험을 보려면 정해진 시험응시 등록기간에 신청을 해야 한다. 학교에선 인터넷상으로 접수된 시험응시 신청을 토대로, 시험당일 벽보나 인터넷상에 강의실과 시험 볼 자리를 지정해 준다. 그리고 시험시작과 함께 학생증을 통해 본인 여부를 확인한 뒤 시험에 응하게 한다.

독일대학의 강의 모습(사진: 시골교사)

재밌는 건 출석 체크가 없는 것에 비하면, '땡땡이'도 거의 없다는 점이다. 사실 땡땡이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돌이켜보면 대학시절 누군가 교수님을 졸라 야외 수업을 종용하거나, 그만 끝내달라고 용기 있게 말해 주거나, 혹은 시험범위를 줄여 달라고 조르는 행위에, 우린 쌍수를 들어 환영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곳 교수와 학생들에게 그런 모습은 일체 없다. 수업 중에 학생들의 잡담 내지는, 딴 짓도 없다. 행여 잡담이 일면 (교수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없이 수업진행을 한참동안 멈추거나, 대놓고 망신을 주기도 한다. 수업이 진행되면 쉬는 시간 없이 두 시간 끝날 때까지 그렇게 서로 군말 없이, 물 흐르듯 진행하고 참여한다.

 

germany

미친 전세? 독일엔 없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흔한 주거형태는 4층 정도의 연립주택입니다. 고층 아파트는 거의 없죠. 굳이 찾자면 도시 외곽의 양 끝에 외국인이 주로 모여 사는 아파트 두 단지가 고작입니다. 단독 주택도 별로 없는데, 도심에서 버스로 2~ 30분 떨어진 곳에선 간간히 모습을 볼 수 있기는 합니다. 아이 키우는 집이라면 단독 주택이 편하긴 하죠. 연립에서 독일 사람들과 어우러져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거든요.

이곳에는 전세의 개념이 없습니다. 자가 주택 아니면 월세를 내는 임대주택, 두 가지만 존재합니다. 월세 가격은 천차만별이죠. 평수에 따라 다르지만 방 두개를 기준으로 최저 20만원에서 최고 100만원이 넘는 것도 있습니다. 전세가 없다보니, 복덕방도 따로 없습니다. 대도시에 가면 있다고는 하는데,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는 보질 못했어요. 그래서 집을 구할 때는 보통 지역정보지를 많이 활용합니다.

방이 구해지면 처음 3개월 치의 월세를 보증금으로 내고 들어가고, 이사할 때 그대로 돌려받습니다. 월세 계약기간이 따로 없기 때문에, 이사 가기 3개월 전에 (주택)관리회사에 해약통보를 하면 원하는 날짜에 바로 이사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세입자가 구해졌든, 그렇지 않든 말이죠. 그것은 회사의 문제이지 세입자의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사할 때 3개월 치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의 여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으려면 살던 집에 하자가 없어야 하고, 정돈상태가 이사 오기 전처럼 아주 잘 되어 있어야 하죠. 그래서 “이사할 때보다 이사 나갈 때가 더 어렵다”고 합니다. 남을 위한 배려인지, 내가 쓴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갈 때 벽지 위에 페인트칠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은 필수항목입니다.(참고로 이곳은 페인트 문화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벽지는 많이 쓰지 않아요. 그래서 집집마다 페인트 도구를 필수아이템으로 갖고 있습니다.) 유리창도 반짝 반짝 닦아야 하고, 전기스토브의 묵은 때며, 부엌과 화장실 구석구석의 때도 말끔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회사 측에서 하자가 있다고 판단하면 해당 액수만큼 제하고 보증금을 돌려줍니다. 경험자의 말에 따르면 청소 중에서도 유리창 청소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네요. 유리창이 거울처럼 반짝 반짝 닦여만 있어도 50점 이상은 먹고 간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청소 검사받는 날의 날씨도 중요합니다. 선호하는 건 우중충하고, 흐린 날이죠. 날이 아주 좋으면 생각지도 못한 곳의 더러운 부분이 드러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은 모두 운일 뿐입니다.

(사진:Monkey Business Images/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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