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크루아상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크루아상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크루아상의 가벼움
2016.07.07 17:00 by 송나현

빵집마다 자랑으로 내세우는 빵은 따로 있다. 하지만 그 빵집의 진면목을 파악하고 싶다면 크루아상을 먹어봐야 한다. 밀가루 반죽 위에 버터, 반죽, 버터의 반복. 이 단순한 구조의 크루아상은 만들기 쉬워 보이지만 81개의 층이 겹겹이 쌓인 고도의 노력과 노동의 산물이다. 적절한 부풀림과 짠맛과 단맛의 조화로움, 많은 양의 버터 사이에서도 풍기는 담백함. 이 모든 것을 갖춘 크루아상을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크루아상을 먹기 위해선 부지런함과 신속함이 필수다. 크루아상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프랑스 베이커리에도 '아차'하면 식은 크루아상만이 남아있기 일쑤다. 

(사진:Nitr/shutterstock.com)

사실, 불어의 울림을 가진 크루아상의 진짜 고향은 17세기 오스트리아 빈이다.

1683년 오스만 제국은 지하터널을 이용해 빈으로 침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밤을 새워 일하던 제빵사 피터 벤더가 이를 눈치채고 오스트리아군에 알린 덕분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전쟁에서 승리한 당국이 피터 벤더의 공을 기리기 위해 오스만 제국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으로 빵을 구울 특권을 피터에게 부여하며 크루아상이 탄생했다. 이때 이슬람 군인들이 놓고 간 커피 원두를 시작으로 유럽에서도 커피가 유행을 탄 것을 보면 이슬람이 유럽의 식문화에 끼친 공로는 지대하다.

이 초승달 모양의 빵은 1774년 합스부르크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가 루이 16세와 결혼하면서 프랑스에 전해졌다. 프랑스에 전해진 초기의 초승달 모양은 오늘날의 크루아상과 다르며, 지금의 레시피는 1920년대 파리 제빵사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크루아상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파리의 제빵사들이 만들어낸 크루아상처럼 가벼운 빵이 또 있을까? 겹겹이 페이스트리로 쌓인 빵은 묵직할 것 같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벼운 무게를 자랑한다. 하지만 가벼움만이 크루아상의 본질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크루아상의 질감과 향미는 중후하며 무겁다. 무거움 혹은 가벼움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크루아상을 묘사할 순 없다. 크루아상의 맛은 무거워서 매력이 있고, 무게가 가벼운 건 그 만의 장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인공 테레사의 애완견 '카레닌'은 그런 크루아상의 매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무거움에서 도피하려는 프라하의 외과 의사 토마스는 자신의 아들조차 외면한 채 돈 후안처럼 여자들과의 잠자리를 가지며, 수술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기까지 하는 인물이다. 그는 여자들과 관계를 하되 한 침대에서 같이 잠들지는 않는다는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불문율은 시골에서 그를 만나기 위해 갑작스럽게 상경한 테레사에 의해 깨진다. 테레사는 삶을 진지하고 무겁게 본다. 그는 테레사를 바구니에 담겨 떠내려온 아이처럼 여기며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바람기 많은 토마스 곁에서 테레사는 항상 고통을 받으며 토마스도 그 고통을 느낀다. 그래서 테레사를 떠나지 못하며 그가 쓴 글이 왜곡되어 외과 의사의 자리를 위협받을 때 테레사의 안정을 위해 기꺼이 그 자리를 포기하고 시골의 트럭 운전수가 된다

 

프라하에서부터 스위스에서까지 토마스의 연인이었던 사비나는 가벼움의 화신이다. 그녀는 모든 대열과 행진을 증오하며 키치를 혐오하는 화가다. 그녀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조국의 감시와 역사를 벗어나고 싶어한다. 스위스의 교수인 프란츠는 그런 그녀에 가벼움에 매혹되어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이혼을 결심하지만 정작 사비나는 혁명, 변혁, 피 같은 것의 관념에 사로잡힌 그를 거부한다. 프란츠는 사비나와 헤어진 뒤 캄보디아 여행을 하며 혁명 지지 운동을 하다 폭사한다.

 

테레사와 토마스는 시골에서 애견 카레닌과 함께 생활하며 서로를 깊게 이해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토마스와 테레자는 트럭을 타고 가다 사고로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파리에 머물고 있던 사비나는 토마스의 아들로부터 그들의 죽음을 전달받는다.

그녀(암캐인 카네린을 의미)는 토마스와 테레사와 매일같이 나가는 아침 산책에서 항상 크루아상을 얻어 먹는다. 입에 문 크루아상을 자랑스럽게 뽐내며 걸어가고, 주인인 토마스가 행여나 빼앗아가지는 않을지 주위를 경계한다. 카레닌은 매일 아침 5분간 그렇게 주위를 살피고 난 뒤에야 책상 밑으로 들어가 크루아상을 소중히 먹는다.

카레닌은 매일 반복되는 크루아상을 소중히 여기며 한 번도 다른 빵을 탐한 적이 없다. 단순한 삶을 살고 작은 것에 행복해하며, 매일매일 눈을 뜨는 것이 새로운 삶의 시작인 카레닌의 삶은 그녀가 좋아하는 크루아상과 똑 닮았다.

<사진 : barkpost>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

인간의 협소한 시각에서 바라볼 때 개(犬)인 카레닌의 삶은 '가벼워'보인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도 개의 삶을 가볍고 고민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니체의 회귀 사상을 따라 하루하루를 똑같이 살아가는 카레닌의 삶은 '무겁기'도 하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삶이 무한히 반복 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삶의 반복에 정면으로 대응하며 살아가는)의 삶을 살아가는 건 바로 카레닌이다.

그런데,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 상반되는 의미를 내포하는 걸까? 가볍기도 하면서 무거울 수는 없을까?

가벼움과 무거움은 이분법적이지 않다

책의 주인공인 토마스와 사비나는 '가벼움'을 대표하며 테레사와 프란츠는 '무거움'을 대변한다. 그러나 인생을 가볍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토마스와 사비나는 사회적 참여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며 삶의 중요한 부분을 포기하기도 한다.

사비나는 소련군의 프라하 침공에 맞서 싸우다 명망길에 오른다. 토마스는 가볍게만 받아들였던 테레사와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외과의사직을 포기하고 시골의 트럭운전수가 되고 만다.

"토마스, 당신 인생에서 내가 모든 악의 근원이야,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나 때문이야. 더는 내려갈 곳도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당신을 끌어내린 것이 바로 나야."

"테레사,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당신은 모르겠어?"

"당신의 임무는 수술하는 거야!"

"임무라니, 테레사. 그건 다 헛소리야. 내게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토마스와 사비나는 작품 끝까지 인생을 가볍게 대하지만, 그들의 가벼움이 그름이나 나쁨을 나타내는 건 아니다. 그들의 인생은 무거운 인생과 다를 바 없이, 치열함과 고민으로 점철되어 있다.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단 한 번의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모든 것에 긍정하며 끝없이 반복되는 카레닌의 삶 중 어떤 것이 더 나은 것인지 알 수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일생을 살아온 토마스와, 진실함과 진지함을 추구한 프란츠의 삶 중 어느 것이 더 나은지 판단할 수 없듯이.

파르메니데스는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 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고 말했다. 그 둘은 모순이지만 서로 뒤바뀌며, 함께 상존한다.

크루아상은 가볍지만 또한 무겁다. 가벼움과 무거움 중 어느 것이 크로아상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다. 참을 수 없는 크로아상의 가벼움은 여기서 비롯된다. 가볍기만 한 것은 없는데 사람들은 크로아상이 가볍다고만 하니, 무거움을 발견하고 싶은 욕망과 냄새에 이끌려 먹어보고픈 욕망을 '참을 수가 없다'

북앤쿡동화 ‘시골 쥐, 도시 쥐’ 속에 나왔던 지하실. 그곳에 한 가득 쌓인 음식은 봉인됐던 나의 ‘식탐’을 깨웠다. 이후 대하소설 ‘토지’를 보고선 콩나물 국밥을 사먹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곤 마들렌을 처음 접했다. 쿡·먹방 시대를 맞아 음식과 문학의 이유 있는 만남을 주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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