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불의 계절, 천국은 가까이에 있다
지옥불의 계절, 천국은 가까이에 있다
지옥불의 계절, 천국은 가까이에 있다
2016.08.05 17:00 by 황유영

내가 신의 존재를 믿는 이유는 결단코 여름 때문이다. 신이 인간들에게 지옥의 무서움을 경고하기 위해 만든 티저 버전이 악마의 계절, 여름이라고 생각한다. 도무지 식지 않는 땀, 도무지 삭혀지지 않는 짜증, 축축 늘어지는 팔다리. 생각만 해도 불쾌지수가 치솟는 지옥불의 계절, 불지옥의 나날들이 올해도 돌아오고야 말았다.

어느덧, 지옥 타임이 왔다.(사진:fotosvectores/shutterstock.com)

더위라면 누구 못지 않게 타는 내가 에어컨이 없는 자취방에 살고 있다. 상상만 해도 역전 끝내기폭투를 당한 듯한 신경질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그 여름을, 그래도 건강히 나기 위해 하루하루 고단한 피서의 나날들을 보내곤 한다.

휴가를 가면 좋겠지만, 지옥불 아래로는 단 한발짝도 내딛고 싶지 않기에 집순이의 피서는 조금 지루하다. 스타벅스에서 하루 종일 버티고, 쓸데없이 은행을 자주 오가고, 순환선인 2호선에 앉아 사람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루틴에 익숙해질 무렵, 신박한 피서법이 없을까 고민해본다. 중생이여 왜 고민하는가. 인생의 고비마다 지혜를 내려주시던 네x버님께서 내게 새 길을 인도해주셨다. 바로, 한강 수영장. 망원지구는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천국은 가까이에 있었다.

래쉬가드는 인류 3대 발명품에 넣어야 한다.

"너처럼 더위 많이 타면, 운동 삼아 수영을 하지 그래? 시원하고 좋잖아."

이런 소리 한 두번 들은게 아니다. 그래, 시원하고 좋지. 비록 수영은 못하지만. 그러나 성인 여성이 수영장을 꺼리는 이유는 단지 수영을 못해서가 아니라 수영복을 입은 내 모습이 싫을 뿐이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 아빠 졸라 징징대야 겨우 상처럼 받았던 워터파크나 수영장이었지만 머리 좀 크고 나서 가본적은 없는 바로 그곳, 마치 집에 숨겨놓은 황금송아지나 상상속 동물 해태 같은 그곳, 바로 수영장이다. 나처럼 수영 못하는 맥주병에게는 더더욱 금단의 장소였다.

그러나 문명의 발전은 우리에게 편리를 준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래쉬가드라는 신의 선물이 존재하고 있다. 친구들과 바다 여행을 약속하고 작년에 사두었던 래쉬가드. 정작 여행을 가선 입지도 못했던 그 래쉬가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갔다, 수영장에. 혼자.

요즘은 이런 티켓도 줍니다.

우린 지금 발리에 와 있습니다.

전날까지 비가 쏟아졌던 터라 날씨 걱정을 했지만 변덕스러운 날씨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쨍쨍했다. ‘혼자’의 기본은 최대한 빨리, 사람이 하나라도 적을 때 움직이는 것. 개장 시간인 9시 즈음에 맞춰 빨리 출발한다고 서둘렀음에도, 도착해보니 시간은 9시 40분. 망원시장에서 첫 빠로 나온 닭강정을 하나 들고 매표소에 줄을 섰다. 한강 수영장의 경우 3-4인에 하나의 파라솔을 제공한다. 1인은 사용할 수 없다는 정보를 접한 뒤라 돗자리 대신 썬베드를 사용하기로 결정. 사용료와 썬베드 이용료를 지불하고 들어오니 한강수영장은 이미 가족단위 물놀이객으로 바글바글했다.

썬베드 이용권. 숫자 1번은 내가 첫 번째 썬베드 손님이라는 영광의 표시다.
왠지 해외 느낌 나지요? 발리 맞지요?
주린 배를 채워주실 그 곳.
위풍당당한 자태로 진열된 과자, 라면들. 질소과자는 물에 뜬다지만 튜브 대용으로 사용하지 마세요.

그 많은 이용객 중 썬베드 이용자는 단 한명도 없는 외로운 열시. 수영복을 갈아입고 햇빛을 가릴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에 앉아있으려니 온 몸에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조금 눈치를 보다가, 버틸 수 있는 더위의 한계지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물로 달려들어갔다. 헐. 대박. 넘나 시원한 것. 이런 천국을 위해 한여름의 불지옥이 있는 것 아닌가. 갑자기 여름 더위가 사랑스러워 지는 해탈과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다. 불지옥을 잊게 만드는 수영장의 물 천국 한 번으로. 비록, 수영을 못하니 그저 물속에 몸과 얼굴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내적 탄성을 열 댓번을 질렀다. 

물맛을 한 번 보고 나니 맥주도 없이 먹는 닭강정 맛이 그리 좋더라.(안전을 위해 맥주는 반입 금지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썬베드 구역을 채우는 이들중에는 혼자 온 나같은 사람들도 퍽 많다. 괜히 반가운 마음에 그들을 빤히 보고 있는데, 무언가 불안한 기운과 함께 섬칫한 기분이 뒷골을 스친다.

썬베드 구역에는 비키니를 입지 않은 여성이 없고, 근육질이 아닌 남성이 없다. 썬베드 구역은 혼자 유랑자들을 위한 구역이 아니라 종일 타인의 시선을 받으며 썬배드에 유유자적 누워있어도 한 치의 불안함이 없는 금수저 몸매들을 위한 구역이었다. 먹던 닭강정을 내려놓고 다시 물속으로 달려갔다. 머리만 동동 내어놓고 있으니, 그래. 여기가 천국이다. 역시 물 밖은 위험해!!

밖으로는 한강이 보이는 한강수영장의 끝내주는 뷰.
그러나 머리위로는 차가 지나다닙니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feat.양화대교)

혼자레벨 ★★★

혼자옵서예를 연재하면서 느낀바지만, 어디나 늘 혼자 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특히 수영장은 혼자 썬탠이나 수영 자체를 즐기러 오는 분들이 정말 생각보다 많다. 다만 친구, 가족과 함께 한다는 물놀이의 이미지 상 진입장벽은 높다. 그 벽만 넘으면 당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천국. 그래도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면, 스스로를 세뇌하자. 여긴 하와이다. 여긴 발리다. 흔들리는 동공은 선글라스안에 감춰두자.

나의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한강수영장.

혼자 Tip

한강 수영장이라고 얕보지 말자. 수영모, 수영복이 없으면 입수 불가. 혼자 물놀이를 더 즐겁게 즐기려면 수경도 필수. 멀뚱멀뚱 고개 내밀고 서있기 보다는 수경쓰고 물안이라도 구경하는게 좋지 않을까.선글라스, 선크림, 얼린 물과 스포츠 타올을 꼭 준비하자. 이왕이면 아이스 박스에 시원한 수박이라도 미리 준비하면 좋겠지만, 혼자 방랑하는 이들에게 많은 짐은 사치일 뿐. 수영장에 마련된 매점에 커피, 팥빙수, 치킨 등 왠만한 음식도 다 있어서 몸 하나만 가도 재밌게 즐길 수 있다.선탠이 목적이 아니라면 썬배드는 비추다. 신기하게도 얼굴만 수건으로 가려두면 의외로 시원했고, 시원한 물이 눈앞에 있기 때문인지 더위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끝내주는 몸매의 남녀들 사이에서 뻔뻔히 누워있기는 아직 부끄럽다. 차라리 작은 돗자리와 작은 파라솔을 준비해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면 이 여름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사진: 황유영

혼자옵서예 1인 가구가 늘고 있다. 통계청이 집계한 1인 가구 수는 506만. TV에는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평범하지만은 않은 일상이 등장하고, 혼밥, 혼술은 흔한 용어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혼자가 버거운 사람들이 있다. 혼자보다 여럿이 가능한 일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한다. 혼자 먹고, 혼자 놀고, 혼자 즐기는 일을. 선뜻 내지 못했던 용기어린 도전이자, 대리만족이며, 불친절하지만 세심한 가이드다. 그리고 혼자서도 꿋꿋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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