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태종대는 거기 있었다
여전히 태종대는 거기 있었다
2016.12.15 17:08 by 이한나

영도에 살았던 어린 시절, 마을버스를 운전했던 할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우리 집까지 차를 몰고 오셨다. 그리고는 나와 동생을 태우고 드라이브를 나가셨다. 멀리도 아니고 딱 태종대까지. 학교에서 소풍이 있을 때마다 가곤 했던 곳이지만 할아버지의 능숙한 운전과 함께 하는 태종대는 뭔가 다른 맛이 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와 함께 가는 태종대는 하나도 지겹거나 힘들지 않았다.

영도로 들어오는 입구 쪽에는 지난 회에서 소개한 흰여울문화마을이 있다면 영도의 안쪽 깊숙한 곳, 최남단에는 바로 이 태종대가 있다. 부산 사람에게는 이미 익숙한 지명이지만, 도대체 태종대가 어딘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태종대는 해수욕장을 제외하면 부산의 해안을 가장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유원지로서, 대한해협이 한 눈에 들어오는 명소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영도의 원조 명소, 태종대를 더욱 맛있게 즐기는 방법들

과거에는 할아버지의 차를 타고 한 바퀴를 돌아도 괜찮았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 차량의 진입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하긴, 이전의 그 많았던 차들을 생각하면 지금이 훨씬 쾌적하고 걷기도 좋다. 다행히 입구 쪽 주차장은 한산하고, 자리도 많았다. 여유롭게 차를 대고 태종대 산책에 나섰다. 소형 기준 24시간 1500원이니 참고할 것. (또, 주차 요금은 무조건 ‘선 카드결제’라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태종대 유원지 자체는 딱히 입장료랄 게 없다. 혹시 걷기 힘들거나 싫거나 귀찮거나… 아무튼 도보 외의 다른 방법은 없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다누비열차’라는 앙증맞은 순환 열차를 추천한다. 오전 9시 20분부터 저녁 6시까지 운행하는 이 열차는 성인 기준 2000원만 내면 태종대를 편안하게 한 바퀴 돌 수 있다. 정상에 있는 전망대를 비롯해 두세 군데 정도의 정류장이 있는데 대체로 전망대에서 한 번 내린 후 다음 열차를 타고 처음 장소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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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필자는 워낙 오랜만이라 좀 더 구석구석 걸어보고 싶었고, 안이 그리 넓지 않았던 것 같아 도보를 택했다. 결론. 생각보다 코스가 꽤 길고 오르막이 중간중간 등장하기 때문에 힘든 길이었다. 웬만하면 다누비열차를 이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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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길의 시작은 평탄했다. 입구를 지나 조금 걸어 들어가니 본격적인 산책로와 함께 유람선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이 등장한다. 산책로를 잠시 뒤로 하고 유람선 타러 가는 곳이 있는 곤포로 발길을 돌렸다.

날이 좋으면 일본의 대마도가 보일 정도로 대한해협의 멋진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태종대의 매력인데, 태종대 유람선은 이를 120퍼센트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된다. 감지해변, 곤포의 집, 태원 자갈마당, 등대 자갈마당 등 태종대에 총 네 군데의 선착장이 있다. 어디서 출발하든 조도와 태종대 일대를 도는 40분 정도의 코스는 변하지 않는다. 이용료는 대인 10,000원이며, 승선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므로 신분증은 필수.

유람선 승선장의 모습.

 

| 잘 쉬어야 다시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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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의 자갈은 옛날부터 유명했다. 동글동글, 파도에 잘 깎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예쁘장한 외형에 사람들이 많이 가져가기도 해 한때 자갈 채집 금지령(?)까지 내려지기도 했다. 아름다운 자갈들이 모여 있는 한적한 해변, 그 위를 걷고 있는 사이좋은 모녀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 풍경 덕분에 돌아가시기 전 할아버지와 이곳에서 쌓았던 많은 추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특정한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 앞에서 우리는 종종 삶의 희비(喜悲)를 경험하곤 한다.

해변에서의 작은 시간을 뒤로한 채 다시 산책길에 나섰다. 걷다 보니 난생 처음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태종대는 왜 ‘태종대’지? 그 유래를 찾아봤다. 신라 제29대 왕이었던 태종무열왕이 ‘삼국통일’이라는 큰 업적을 이룬 후 전국의 명승지를 탐방하다 이곳에 들렀단다. 그는 궁인들과 함께 이곳의 울창한 수림과 수려한 해안절경에 심취되어 잠시 소일하며 활을 쏘았고, 이 인연으로 ‘태종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걸을수록 그의 심정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왼쪽엔 숲, 오른쪽엔 바다. 걸을수록 체력은 고갈되었지만 마음만은 부자가 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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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벌써 전망대인가 싶게 만드는 조망대가 하나 보이기 시작한다. ‘남항 조망대’. 그 이름에 걸맞게 남항대교와 다대포, 해운대 등 부산의 반가운 명소들을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다. 망원경을 통해 바라보는 바다는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벤치에 앉아 지친 다리도 쉬게 하고, 멋진 겨울 바다도 감상할 수 있는 곳. 여기서 쉬어 주어야 남은 여정이 덜 힘들다.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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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유난히 눈에 띄는 섬 하나가 있다. '생도'라는 섬인데, 해운대 방향에서 보면 주전자 같이 생겼다고 해서 '주전자섬'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귀엽고 앙증맞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 섬에 관한 무시무시한 전설들이 있었다. 이 생도에서 불을 취급하거나 용변을 보면 큰 화를 당하고, 남녀가 정을 통하면 급살을 맞는단다. 하지만 우럭, 감성돔 등 이름만 대면 입이 벌어지는 고급 어종이 잡혀서 유명 낚시터이기도 하다고.

 

| 예전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지만

옛날 험한 지형 탓에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던 ‘자살바위’가 있던 자리에는 정상 전망대가 생겼다. 남항조망대에서 그곳까지 아름답지만 조금 힘든 오르막이 시작된다. 아쉽게도 매점 등 편의시설은 현재 운영하고 있지 않다. 입구 쪽 다누비열차 승차장에 있는 가게들이 태종대 편의시설의 거의 전부인 셈. 다행히 내년에 재정비한 각종 시설들이 생긴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어찌됐건 지금은 조금 휑한 것이 사실이다. 오롯이 자연의 상쾌함만을 느끼는 시간이다.

드디어, 진짜 전망대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아쉽게도 ‘재정비’의 내용 안에는 정상 전망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건물을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고, 자살을 방지하고자 만들어졌던 모자상도 공사로 인해 가림막이 쳐져 있는 상태였다. 다가오는 2017년에는 보다 완벽한 태종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야외 전망대만은 그대로 살아 있어 태종대에서만 볼 수 있는 웅장한 바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날이 맑아 저 멀리 일본 대마도의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가까우니 과거에 그렇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나 보다. 이 전망대가 생기기 전에는 개방되어 있던 ‘자살바위’의 위용도 어렴풋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는 절경은, 역시 직접 보는 것이 가장 좋다. 왼쪽, 오른쪽 할 것 없이 장대하게 펼쳐진 바다 앞에 서면 언제나 조금 위축되면서도 마음이 탁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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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다시 올라갔다 내려가는 길, 태종대 내의 절 태종사 스님들로 보이는 분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등산복 차림의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많았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길이 잘 닦인 등산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만큼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상당한 코스였다. 역시 다누비열차를 타는 것이 좋겠다는 장난스런 교훈과 함께, 편하게 할아버지 차로 이곳을 다녔던 어린 시절이 다시 떠올랐다. 내년에는 리모델링과 더불어 야간 차량개방을 검토 중이라던데, 그 때는 나도 할아버지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태워서 드라이브를 시켜 줘야겠다.

 

/사진: 이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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