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마을을 바꾸다
미술로 마을을 바꾸다
미술로 마을을 바꾸다
2014.10.02 08:30 by 더퍼스트미디어
 

전남 화순 미술마을프로젝트 현장  

예술가들이 주민들을 위해 특별히 그린 사과 그림이 성안 마을 입구부터 눈길을 끈다(사진_채슬병)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벽면 가득 그려진 알록달록한 마을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주택, 창고 벽면마다 마을의 역사를 담은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문 옆에는 주민들이 직접 만든 문패가 붙어있었다. 찰흙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린 문패에는 집주인만의 개성이 묻어났다. 마을중앙에는 ‘꼬마동물원’이란 이름의 놀이터가 마련돼 있었다. 새, 닭 등 작은 동물들이 방과 후 놀러 올 어린이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놀이터 담장엔 동물 그림이, 놀이기구는 다양한 동물 모양으로 만들어져 마을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난 7월 25일 방문한 전남 화순 성안마을은 커다란 갤러리 같았다. 마을 구석구석이 예술 작품으로 가득했다.

“3년 전만 해도, 이 자리엔 폐가뿐이었죠. 최근 우리는 예술의 힘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마을회관에 모인 성안마을 주민들이 입을 모았다. 화순읍 성안마을 이장 장광수(69) 씨는 “마을이 깨끗하고 보기에도 좋아진 데다가, 주민들이 미술프로젝트를 계기로 주민회관에 더 자주 모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 주말마다 관광객 100여 명이 찾아옵니다. 다른 마을에서 이사를 오려고 해도, 성안마을에서 나가려는 주민이 없어 이사를 못 올 정도죠.” 성안마을을 소개하는 장씨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생활공간을 공공미술로 가꾸는 사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마을미술프로젝트 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사업으로, 2009년 예술 뉴딜 정책 일환으로 시작됐다. 작가들에게 활발히 작업할 길을 열어주고, 일상 공간 및 문화 소외지역에 이르기까지 예술을 토대로 지역 재생 및 경제 활성화의 길을 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 5년간, 마을 미술프로젝트에는 총 69곳이 참여했다. 산책로와 공터 등 일상 공간을 비롯해 폐교, 탄광촌, 산간마을, 재래시장, 사용하지 않는 기차역 등 취약지역이 마을 프로젝트의 주 대상이었다.

최진영 마을미술프로젝트 사무국 팀장은 “전남 화순은 과거와 현재 모습이 달라진 대표적 지역”이라면서 “주민, 작가, 행정가 세 주체가 서로 협력해 2011~2013년 3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한 곳”이라며 전남 화순을 모범 사례로 꼽았다.

  | 마을 미술의 주인은 ‘주민’이다  

화순 5일시장의 우시장에 대한 향수를 되살리는 김용안 작가의 작품 <소많소>. (사진_채슬병)


“오메, 왔어? 언능 들어와.”

마을 회관에서 까만 손으로 마늘을 다듬던 할머니들이 마을 미술 프로젝트의 대표 작가 이재길(46・조각가) 씨를 미소로 맞았다. 이 씨가 주민들의 환영을 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폐가로 이뤄져있던 마을을 예술 문화 명물 마을로 탈바꿈한 인물이기 때문.

이 씨가 성안마을에 발을 디딘 건 2011년. 정병수 전 화순 읍장이 ‘마을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면서 광주 시화문화마을조형연구소(대표 이재길)의 문을 두드린 직후의 일이다. 지자체, 작가, 마을 주민이 함께 머리를 맞댔다. 마을 미술 프로젝트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다.

예상 기간만 최소 3년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 구상이었다. 화가, 조각가, 사진작가, 스토리텔링 작가 등 10여 명의 예술가들은 3개월에 걸쳐 마을 스토리 연구 작업에 들어갔다. 수시로 마을을 찾아 주민들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마을의 작품’이 돼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행정 전문가 6명과 주민 대표 7명으로 구성된 마을 미술 추진위원회(이하 마을 추진위)는 옛 문헌을 발췌해 작품 소재 구성에 들어갔다. 이장, 읍장 등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정보 수집, 행정, 디자인 등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공감대 형성을 위해 주민설명회뿐만 아니라 지역기관, 사회단체들과의 간담회도 분기별로 실시했다.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화 짓기를 진행하고, 아이들을 대상으로는 미술 대회도 열었다. 주민들의 열성적인 참여에 지자체도 적극 동참했다. 1억 규모의 사업에 8000만 원의 예산을 추가 지원한 것. 이는 성안마을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시드머니가 됐다.

주민들과 예술 작가들의 화합이 항상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이재길씨는 “마을 주민들의 삶을 작품에 반영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2012년 주민들로부터 수집한 시화를 도자기 타일 형태로 구워 골목에 부착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니 선생님이 알아서 좋은 말로 써달라’며 참여를 꺼리셔서 애를 먹었죠(웃음).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온 분들이니 시를 쓴다는 게 부담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봤죠.”

작가들은 마을 주민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시작했다. 만남을 지속하도록 주민들은 자녀들에게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 둘 털어놓기 시작했다. 작가들의 진정성에 마음의 문을 연 것. 이에 성안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다채로운 삶이 인터뷰에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주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시화를 완성했다. 마을 어귀에 붙어있는 ‘아들아, 내 딸들아!’란 제목의 시화 역시 주민들이 자주 쓰는 고유어에서 비롯됐다.

 

(좌)사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한 이재길 작가의 작품 <일편단심>, (우)마을 안내판 기능을 겸한 이성웅 작가의 상징 조형물<생명의 샘> (사진_채슬병)


 

주민들의 마음을 얻자 마을 미술 프로젝트의 진행 또한 한결 수월해졌다.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가치를 알게 된 주민들이 주민 자치위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마을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다과 등 간식을 전해주는 등 격려와 화합이 장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자신들의 생활공간을 내어 전시 작품을 만들라는 주민들도 생겨났다. 제안 해 온 주민의 공간은 ‘삶 자체가 박물관이다’란 제목의 조형물로 재탄생했다. 마을 곳곳에 자리잡은 작품들에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가치관이 담겨있는 이유였다.

  | 성안마을의 내일을 고민하다  

프로젝트 기간 3년 동안 성안마을에는 미술 작품이 총 23개 생겨났다. 마을에 있던 폐가가 예술 거리로 재탄생됐고, 마을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도 늘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아직 만족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개발한 작품들을 유지 및 발전시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화순읍 마을미술프로젝트 대표작가 이재길 씨는 “부산 감천마을에 비하면 성안마을은 시작 단계”라면서 “작품 이미지를 활용해 화순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한다”고 했다. 부산의 미술 마을로 유명한 감천마을은 마을기업과 협동조합을 활용해 마을미술프로젝트와 지역개발을 함께 진행했다.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상인들이 머물면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서 2~3년간 꾸준히 지원한 덕분이었다. 이씨는 “화순읍 성안마을에도 미술 작품과 지역 시장을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안마을만의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가 필요하단 의견도 있었다. 화순읍사무소 총무 담당 배상호(57) 씨는 “미술 작품 등 볼거리에 덧붙여 즐길 거리, 살 거리가 필요하다”면서 “특산물인 국화차를 상품으로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춰 사회적 기업 및 마을 기업을 만들어갈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최영탁(59) 씨는 “문화 콘텐츠와 화순 시장을엮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화순읍 임대아파트에는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는 만큼, 자치 센터를 거점으로 삼아 더 많은 주민 참여를 이끌어내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다짐을 보였다. “마을 이야기를 관광객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홍보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주민들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든 성안마을이 어느덧 예술 작품을 통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기에 이른 것.

 

마을 중앙의 쓰레기 장으로 쓰이던 공간을 재생해 아이들 관점에서 구상한 박형규 작가의 작품 <꼬마 동물원> (사진_채슬병)


 

오랫동안 마을을 지킨 팽나무가 바람에 흔들거렸다. 대표작가 이 씨는 “성안마을에 아직도 발굴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볼거리, 즐길 거리 등 마을의 발전을 고민하는 예술작가, 주민들의 모습 속에서 성안 마을의 더 나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성안마을의 전성기는 이제 막 열리고 있었다.

 



글/이예림
이예림
소셜에디터스쿨 청년세상을 담다 1기 마을을 취재하면서 공공미술과 공공디자인의 심미적 기능도 중요하지만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의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점에서 그 존재가치와 의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청세담을 통해 공익 분야와 독자 간에 작은 다리를 놓을 힘을 조금은 얻었다고 감히 얘기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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