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팜이요? 우린 아직도 쟁기 들어요.”
“스마트 팜이요? 우린 아직도 쟁기 들어요.”
“스마트 팜이요? 우린 아직도 쟁기 들어요.”
2017.03.16 17:21 by 스타트業캠퍼스

“어르신, 무슨 일 보시려고요?”

지난 달 말 서울 강동구의 A은행, 안내원이 한 노인에게 말을 건넨다. 손에 번호표를 꼭 쥐고 하릴없이 서있던 게 벌써 20분 째. 바쁜 월말의 은행 창구는 좀처럼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아들내미가 돈을 부쳤다고 해서, 그놈을 좀 찾으려고…”

간단한 입‧출금 업무. 온라인은 물론 사용하는 휴대폰에 터치 몇 번만으로도, 안방에서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 됐지만, 백발 노구에겐 여전히 번거로운 일이다.

“(모바일 뱅킹을) 알기는 해. 근데 뭐 당최 믿을 수가 있어야지. 사용법도 헷갈리고….”

(사진:Sergey Nivens/shutterstock.com)

바야흐로 ‘테크(Tech)’의 시대다. 정보통신기술(ICT), 자동화(Automation), 빅데이터(Big Data), 인공지능(AI), 가상‧증강 현실(VR‧AR), 사물인터넷(IOT) 등의 개발과 확산이 우리 일상의 지형도를 확 바꾸어버렸다. 돈 쓰는 문제엔 ‘핀테크(fintech)’, 먹는 일은 ‘푸드테크(FoodTech), 배움에 있어선 에듀테크(Edutech) 등 이미 삶의 곳곳에 다양하게 접목되고 있다.

일상의 편리함과 효율성을 위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최첨단 기술들. 그런데 이 화려한 열매의 단맛을 우리 모두가 만끽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필요한 사람 손에 쥐어지지 않는 하이테크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편집자

◆농업테크 열풍, 농민 무릎 통풍

“스마트팜? 뜬구름 잡는 얘기지.”

류영길(가명‧61) 이장(충남 천안시 동남구 봉답리)님이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좋은 거 누가 몰라? 스마트팜 그런 거 해 놓으면 사람은 구경만 해도 된다며? 근데 현실성이 전혀 없다고. 시설이며 장비며 이런 건 뭘로 마련해. 빚내서 하라고? 그 돈 있으면 비닐하우스 몇 개 늘리는 게 농가엔 더 이익이야.”

인력은 늙어지고 경작지는 작아지는 현실에서,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스마트팜이 어불성설이란 얘기다. 실제 봉답리의 농가는 32가구, 평균연령은 60세에 육박한다. 마을의 유일한 젊은 피인 김철종(가명‧33)씨는 “여러 외부 환경에 의해 들쑥날쑥한 게 농민의 수입”이라면서 “빚을 내서 시스템을 들여도, 한 해만 삐끗해도 이자조차 감당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혀를 찼다. 김씨는 이어 “정부에서도 ‘좋은 것’이라고만 하지 말고, 실제 농민이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스마트팜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는데… 지난 7년간 스마트팜 검색량 추이조사(출처:네이버 데이터랩)

농업 테크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팜에 대한 관심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인구 고령화, 농업인력 및 농업지 감소, 생산 감소 등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올해 초 농림부는 2017년 말까지 시설원예 4000헥타르(ha), 축산농가 700호, 과수 농가 600호에 스마트팜을 보급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관련 예산도 2015년 246억원에서 지난해 454억원까지 높아진 상태. 기업들도 힘을 보탠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대형이동통신기업들이 스마트팜 시장에 사물인터넷 구축, 전용솔루션 공급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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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농민이 실제 사용하는 농기구. 스마트라고요?

하지만 농민들의 현실은 정부‧기업의 포부완 거리가 멀다. 개인용 스마트 기기조차 낯선 고령의 농업인들이 대다수인 농촌은 70년대 방식 그대로 농사를 짓고 있으며, 필요성을 인식한 일부 농민들조차 고비용의 스마트팜 시스템엔 투자를 꺼린다.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현재의 농업환경에서 높은 투자비용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기 때문이다.

김철종씨는 “공무원들이 얘기하는 건 몇 번 들었지만 이는 정책적인 제스츄어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며 “관련부처가 업적을 내고 싶단 인상을 느낀 적도 있다”고 했다. 농업분야의 전문가들은 “현재 농촌이 마주한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기술보다 유통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농림부 역시 aT 사이버거래소, 로컬푸드 통합관리 시스템 등을 유통망을 운영하고 있지만 현장 활용도는 낮은 상황이다.

◆제3의 눈 열화상, 소방관의 눈엔 언제쯤?

“정말 들어가기 싫더라고요…”

소방관 김진우(가명‧32)씨의 목소리가 엷게 떨렸다. 그날의 상황이 새록새록 떠오른 탓이다. 김씨는 지난해 가을을 잊지 못한다.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은 결코 풀 수 없는 미로와 같았다.

“지하였는데, 검은 연기가 자욱해서 한 치 앞도 분간이 안 됐어요. 발화점은 물론 생존자 유무도 파악하기 어려웠죠. 사람이 있었다는 제보를 이미 받았기에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21세기를 사는 소방관들이 장비는 대부분 20세기에 보급된 것들이다.(사진:오마이뉴스)

순간 김씨의 뇌리를 스친 장비는 ‘열화상 카메라’(적외선으로 온도 분포를 확인하는 장비.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로 쓰인다). 하지만 본부에 하나 밖에 없는 고가 장비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이날 어둠 속에서 생존자를 찾던 김씨 팀은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미처 바닥의 맨홀을 발견하지 못한 동료 한 명이 추락하는 사고를 당한 것. 착용하고 있던 무거운 장비들이 추락 시 동료의 몸을 짓눌러 척추 압박골절이란 중상까지 당했다. ‘조금 더 좋은 장비들만 있었더라면…’이란 후회를 곱씹을 수 밖에 없는 기억이다.

눈으로 보는 현장(左)과 열화상 카메라로 보는 현장(友)의 차이(사진: 삼성 투모로우 솔루션)

AR, VR, 로보틱스(robotics‧로봇 공학) 등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 하지만 정작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재난재해 구조 현장의 장비는 20세기의 그것에 그친다. 실제로 17년째 현장에서 뛰고 있는 한 구조대원은 “안전 장비가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나, 흔히 생각하는 디지털 첨단 장비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급박한 구조 상황에서 믿을 건 여전히 자신들의 촉과 용기뿐이다.

현실적인 제약이 가장 큰 문제다. 대표적인 게 높은 비용. 열화상 장비의 경우 최소 200만원에서 최대 2000만원에 이르는 고가 장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각 서에 상징적으로 하나 정도씩 구비해 놓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소방 공무원이 착용하는 장비의 기본 무게는 20kg을 훌쩍 넘는다. 최근 5년간 현장에서 상해를 입은 사람은 2000명에 육박할 정도. 안전을 담보해주는 첨단 기술의 혜택이 우선적으로 주어줘야 하는 이유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15년부터 열화상 포착, 증강현실, 소음 제거 기능을 탑재한 ‘C-thru’ 헬멧을 보급하는 추세다.

◆‘집나간 기술’ 이젠 제 자리 찾아줘야 할 때

미국의 뉴스사이트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은 70%에 육박한다. OECD 평균 보급률(17.9%)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로, OECD 국가 중 2위에 해당한다.(1위는 일본)

이런 화려한 수치 뒤에 가려진 건 이른 바 ‘테크의 사각지대’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일반국민 대비 취약계층 스마트정보화역량수준’에 대한 통계자료는 “취약계층(장애인, 농어민, 저소득층, 장노년층)의 정보화 수준은 일반인 대비 평균 5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혈압이나 심박, 혈당량을 체크하는 ‘웨어러블(wearable‧착용할 수 있는)’ 기기가 젊은 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고혈압 때문에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한다는 김한이(가명‧89‧경남 마산시)씨는 “(혈압 측정기기에 대해)들어본 적은 있지만, 어디서 구하는지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 없다”며 “그저 한 달에 한 번 병원 가서 확인하는 게 속 편하다”고 했다.

올해 초 미래창조과학부는 업무보고를 통해, 기가(Giga) 인터넷 전국 확산 및 세계 최초 IoT 전용 전국망 구축, 세계 최초 Pre-5G 및 시범 서비스 실시, 세계최초 지상파 UHD방송 도입 등의 기술적 성과를 자랑스레 홍보했다. 관련 학계 전문가 역시 “기술수준 자체만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상위권”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하이테크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열광도 좋지만, 그 기술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가치있게 쓰이는 문제 역시 개발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 아닐까?

(사진:Willyam Bradberry/shutterstock.com)

/글: 유승규‧차동욱‧송지혁

/사진: 유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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