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별리고’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한자 그대로 ‘사랑(愛)하는 사람과 이별(別)해서 멀어지는(離) 고통(苦)’이란 뜻입니다. 굉장히 서정적이고 처연한 감정이 드는 단어죠. 그래서인지 ‘애별리고’라는 말은 노래와 영화, 소설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 편입니다. 심지어 불경에는 ‘사람이 살면서 겪는 가장 대표적인 8가지 고통 중에 하나’라고 나와있죠. 뭔가 직접 겪은 경험이나 고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실제로 애별리고는 초기경전인 아함경과 니까야에서부터 종종 언급됩니다. 붓다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쭉 이별이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불교 경전에서 애별리고를 말할 때에는 세트로 언급되는 괴로움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이별의 고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통은 바로 ‘만남의 고통’, ‘원증회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아주 당연하게 고통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미워하고(怨) 증오하는(憎) 사람과 함께 있는(會) 괴로움(苦)’은 상상이 조금 필요합니다. 가장 직접적인 경우로는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 있을 때의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세월호의 유가족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허망하게 잃어버린 사고는 그분들께 대단히 깊은 애별리고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사고 후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반드시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마치 다른 세상에서 일어난 일을 대하는 양 행동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 대한 공격 무기로 삼으려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분들께 깊은 고통을 준 가해자들이 뻔뻔한 얼굴로 내뱉는 공격적인 말들을 듣고만 있어야 하는 괴로움, 그리고 그 가해자들과 같은 세상, 같은 사회에 있을 수밖에 없는 괴로움이야말로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원증회고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또 하나의 큰 고통, ‘구부득고’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갈구하는 것(具)을 얻을 수 없는(不得) 괴로움(苦)’은 그 구하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아무래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납득하기 힘든 과정으로 허망하게 가족을 잃었을 때, 그 이유에 대한 진실을 구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큰 괴로움을 가져올까요? 상상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들은 책임과 자격을 갖춘 사람의 진심을 담은 사과와 그분들이 살아가는 세상, 소속된 사회의 따뜻한 위로조차 온전히 얻지 못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쉽게 언급할 수 있고, 짧은 공감 뒤에 금세 지울 수 있는 것은 타인의 고통이기 때문일 겁니다. 세월호 사건과 그 유가족들이 겪어온 일은 우리가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구나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된 이후로 가장 큰 괴로움의 감정을 세상에 가져왔습니다. 붓다가 당장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고 해도 이토록 거대한 고통을 어떻게 감당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만 가득합니다.
불교의 8가지 대표적인 괴로움 중에 현대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감정적인 괴로움은 지금까지 설명한 3가지.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입니다. 나머지 5가지 괴로움에 대해서는 좀 복잡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사실은 앞의 3가지 감정적인 괴로움들도 더 많은 설명이 있어야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지만요.
이 8가지 괴로움에 대해 잘 설명해 놓은 책이 있는데, 바로 캐시미어 염소들이 뛰어노는 카슈미르 고산 지대에서 심오한 철학 연구에 집중하던 학파인 ‘설일체유부(Sarvāstivāda)’가 남긴 불교용어 백과사전 <대비바사론(Mahāvibhāṣaśāstra)>입니다.
우선 불교에서 말하는 8가지 괴로움이 무엇인지 나열하면, ①태어남, ②늙음, ③병(病), ④죽음, ⑤좋아하지 않는 대상과 만나는 괴로움, ⑥좋아하는 대상과 떨어지는 괴로움, ⑦구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는 괴로움, ⑧오취온 자체가 괴로움으로, 몇 가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몇 가지는 설명을 들어도 그게 왜 괴로움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비바사론은 매우 철학적으로 쓰여진 것인데, 이 책에 의하면 괴로움은 우리 앞에 나타나는 현상과 우리가 좋아할 만한 대상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괴로움인 태어남은 세상에 태어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태어남이 괴로움인 이유는 바로 ‘괴로움의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일단 태어났기 때문에 괴로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 논리적으로 첫 번째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괴로움인 늙음은 원래의 상태와 자꾸만 달라지는 현상에 의해 나타나고, 늙음이 괴로움인 이유는 좋아할 만한 대상이 쇠하고 변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괴로움인 병(病)은 핍박하고 괴롭히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좋아할 만한 대상이 줄어들고 허물어지기 때문에 괴로움입니다.
네 번째 괴로움인 죽음은 소멸하는 현상으로 인해 나타나고, 좋아할 만한 대상이 끊어지고 없어지기 때문에 괴롭습니다.
여기까지 4가지 괴로움은 인간의 근본적인 고통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서 그 원인으로 등장하는 ‘좋아할 만한 대상’으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섯 번째 괴로움은 앞에서 설명한 ‘원증회고’, 좋아하지 않는 대상과 만나는 괴로움입니다. 좋아하지 않는 대상과 만나는 현상에 의해 나타나고, 좋아할 수 없는 대상과 만남이 괴로움의 이유입니다. 여섯 번째 괴로움은 바로 ‘애별리고’, 좋아하는 대상과 떨어지는 괴로움입니다. 좋아하는 대상과 떨어지는 현상에 의해 나타나고, 좋아할 만한 대상이 멀어짐이 괴로움의 이유입니다. 일곱 번째 괴로움은 ‘구부득고’, 구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는 괴로움입니다. 스스로 있지 않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현상에 의해 나타나고, 뜻에 맞는 일에 결과가 따르지 않음이 괴로움의 이유입니다.
이 3가지 괴로움은 앞에서 서정적인 느낌으로 설명한 것과는 달리 사실은 건조하고, 철학적인 개념들입니다. 물론 ‘사랑’과 같은 감정을 포함해서 포괄적인 ‘애착’을 의미하기에 앞에서의 서정적인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생, 로, 병, 사’ 네 가지 괴로움과는 달리 ‘좋아할 만한 대상’은 주로 자기 자신이 아닌 대상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괴로움을 포괄하는 괴로움, 마지막 여덟 번째 괴로움이 바로 오취온 자체가 괴로움이라고 하는 ‘오취온고’입니다. 대비바사론에서도 이 마지막 괴로움에 대해서는 현상이나 원인을 설명하지 않고, ‘모든 괴로움은 모두 유루의 취온에 속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오취온’은 번뇌를 가진 오온을 말하는데, 오온은 불교에서 사람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그렇다면 8가지 괴로움 중 마지막은 ‘번뇌하는 인간의 괴로움’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비바사론에서는 이 ‘번뇌하는 인간의 괴로움’에 대해서 “번뇌하는 인간에게는 괴로움이 극도로 다양하고 많아서 일일이 설명하자면 듣는 사람이 참을 수가 없으므로, 그냥 간단하게 번뇌하는 인간은 괴롭다고 말한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상이 불교에서 말하는 사람이 겪는 대표적인 괴로움 8가지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왜 불교에서는 괴로움만 이야기하고 즐거움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걸까?’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즐거움과 괴로움 사이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