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동체육관에 애국가가 흘러나오는 순간, 시상대 맨 꼭대기에 오른 김준엽 선수의 가슴속엔 생전 늘 자신에게 용기를 주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 선수는 어머니 덕분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며, 담담한 어투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마지막 날인 지난 24일 오전,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보치아 혼성 개인 BC3 결승전에서 우리 대표팀의 김준엽(44, 울산시장애인보치아연맹) 선수와 정호원(28) 선수가 맞붙었다. 22년 경력, 관록의 김준엽 선수와 6년 연속 세계랭킹 1위에 빛나는 정호원 선수의 대결답게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결과는 4대 3. 마지막 4엔드에만 3점을 획득한 김준엽 선수의 극적인 역전승으로 막을 내렸다.
같은 종목에서 김한수(22, 서울장애인체육회) 선수도 동메달을 획득해 우리 선수 세 명이 나란히 시상대에 올랐다. 패럴림픽에서 7회 연속 금메달 신화를 일궈 낸 보치아 강국의 면모를 홈 팬들 앞에서 유감없이 드러냈다. 지난 20일 열린 복식 경기에서도 이 세 선수가 금메달을 합작해 김준엽 선수는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2관왕에 올랐다.
“꿈인가 싶어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국가대표로 발탁됐을 땐 그냥 후보 선수로만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상기된 표정으로 김준엽 선수가 입을 열었다. “개인전은 메달권 정도로만 예상했지 금메달까진 아니었다”며 16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와 나흘 전 복식에서 금메달을 딴 것만으로도 만족하던 그였다. 99년 국가대표로 처음 출전한 태국 방콕 아‧태장애인경기대회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보치아 도입기였던 92년, 한국뇌성마비복지회의 초청으로 보치아를 처음 접한 김 선수는 이듬해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99년 아‧태장애인대회를 앞두고 BC3 등급에 국가대표가 신설되었을 때는 곧바로 발탁돼 태극마크를 달며, BC3 최초의 대한민국 국가대표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번에 박 코치님과는 4개월 합을 맞춰서 우승까지 왔어요. 보치아 역사상 아마 이런 적이 없었을 걸요?”
탁월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공백기가 이렇게 길었던 것은 그간 김 선수의 어려움이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경기를 함께 해줄 코치 겸 보조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많이 먹었다. 그는 “어떤 때는 한 시간 만에 맞춰서 대회에 참가한 적도 있다”며 “보조자를 구하냐 못 구하냐에 따라 경기 출전 여부가 결정되던 적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번 대회에 함께한 박정우(33) 코치는 대한장애인보치아연맹의 소개로 만날 수 있었다.
보치아는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을 위한 스포츠다. BC3 등급에는 그 중에서도 장애 정도가 심해 직접 손으로 공을 굴리거나 발로 찰 수 없는 선수들이 포함된다. 공을 굴리는 반원형의 경사로인 ‘홈통’을 사용하는 특징이 있고, 선수의 지시에 따라 이를 조작하는 보조자가 함께 플레이한다. 훈련을 하다 보면 움직임이 불편한 선수의 생활면까지 돌봐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보조자나 코치보다는 사실 ‘동반자’에 가깝다.
대표팀의 정호원 선수는 지금의 권철현 코치와 10년 째 호흡을 맞추고 있으며, 김한수 선수는 그의 어머니인 윤추자 씨가 함께하고 있다. 이번 대회 개인전을 두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두 선수의 우세를 점쳤던 이유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컸다. 기초수급생활자인 김준엽 선수에겐 훈련과 경기 출전을 위한 이동비용마저도 큰 부담이었다. 특히 거주지인 경북 경주와 그가 속한 연맹이 있는 울산지역에는 장애인 콜택시 시스템이 미비해 부담이 가중됐다. 김 선수는 “지방에도 실업팀이 생긴다면 경제적으로 안정된 선수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진심어린 바람을 전했다. 현재 국내 보치아 장애인 실업팀은 지난해 8월 창단한 충남도청이 유일하다.
“보치아는 이제 그 자체로 제 삶처럼 느껴져요. 운동하면서 좌절할 때도 있었고, 또 이렇게 큰 보람을 느낄 때도 있으니까요. 이제 또 다른 삶의 목표를 세워야죠. 기회가 된다면 올림픽에 꼭 나가고 싶어요.”
이번 장애인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김준엽 선수에게 확고한 목표가 생겼다. 바로 패럴림픽이다. 하지만 다시 선수로서 일어서는데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려서인지, 꼭 2016년 리우 대회를 두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2년 뒤든 6년 뒤든 올림픽은 계속 열린다”며, “꾸준하게 대비해서 언젠간 기회를 잡고 싶다”는 각오를 내비췄다.
김준엽 선수는 운동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늦깎이 대학생으로 대구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이면서, 바로 얼마 전인 10월 초에는 직접 쓴 시 ‘파도를 베개 삼아’로 장애인 계간 문예지 <솟대문학>에서 수여하는 구상솟대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자신의 속마음을 글에 담아 더욱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언젠가 선수를 은퇴한 이후에는 장애인 선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활동에도 앞장서고 싶다는 또 다른 목표들도 이미 세워두었다.
짧은 인터뷰를 마치며 김준엽 선수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저는 장애를 가진 분들께 꿈과 목표를 가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막상 불가능할 것 같아도, 자기 자신이 얼마나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그 목표에 진짜로 도달할 수도 있으니까요.”
| 보치아 종목 소개 보치아는 뇌성마비 중증장애인과 운동성장애를 가진 사람을 위한 스포츠로, 경기방식은 동계스포츠인 컬링과 유사하다. 먼저 흰색 표적구를 던진 후 양 선수가 적색공, 청색공을 각각 6번(제한시간 6분) 던지면 한 엔드(end)가 끝난다. 표적구를 맞춰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컬링과 다른 점이다. 상대보다 표적구와 가까운 공의 개수만큼 점수가 부여된다. 개인전은 4엔드, 복식은 6엔드로 진행된다.
BC1에서 BC4등급까지 있으며 손과 발, 보조 장치 등을 이용해 어떤 식으로든 공을 지정된 위치에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BC1에는 상‧하지를 사용할 수 있는 선수, BC2에는 상지를 사용할 수 있는 선수, BC3에는 ‘홈통’이라는 보조 장치를 사용해야 하는 선수가 포함된다. BC3 등급의 경우 홈통을 조작할 보조자가 함께 경기를 치르며, 보조자는 항상 경기장을 등지고 있어야 한다. 선수는 홈통의 조작을 지시하고, 보조자가 홈통에 공을 올리면 마우스 스틱을 이용해 공을 굴린다. BC4 등급에는 운동성장애를 가진 선수가 포함된다. 성 구분이 없어 남성 선수와 여성 선수가 한 코트 위에서 경기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 패럴림픽부터 2012 런던 패럴림픽까지 7개 대회 보치아 종목에서 적어도 1개 이상의 금메달을 꾸준히 획득한 보치아 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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