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좀 하는 사내 셋이 뭉치면
한국형 AR게임의 미래 그리다, ㈜올포펀
게임 좀 하는 사내 셋이 뭉치면
2017.11.24 16:33 by 최태욱

비오는 저녁, 창신동은 스산했다. 인적 없는 골목은 스릴러 영화의 배경 같았고, 좁고 꾸불대는 골목은 끝 모를 미로를 연상케 했다. 문득 ‘이런 분위기에 어울리는 AR게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 봤던 ‘포켓몬Go’ 열풍 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우린 철 지난 외국만화에 아직도 열광할까. 이런 동네의 사연과 특유의 분위기를 담은 게임은 어떨까? 지난해 가을, ㈜올포펀의 밑그림이 그려진 순간이었다.

㈜올포펀의 팀원들, 왼쪽부터 민예슬 원화가, 조근제 개발자, 최다현 UI디자인, 이진희 기획총괄, 이복연 대표, 백민수 기획. 가운데 합성된 인물은 최근 새로 합류한 장하늘 마케팅 담당자.

 

| [FIRST trigger] 방 탈출게임을 방에서만 하란 법 있어?

㈜올포펀은 추리와 액션, 스포츠가 결합된 증강현실(이하 AR) 게임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구상 단계를 거쳐, 올해 3월 법인 등록을 마쳤다. ‘실외에서 즐길만한 놀이 콘텐츠가 없다’는 것에 주목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AR게임’을 선택했다. 지난해 큰 관심을 모았던 ‘포켓몬Go’를 떠올리면 편하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뭐해요? 술마시며 수다떨거나, 영화관으로 몰려가는 게 고작이죠. 함께 할 수 있는 놀이 문화가 부족한 거예요. 도시 소외 지역은 더 열악하고요. 세대 사이에 공감대를 가질만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죠.”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복연(44) 대표의 말이다. 오픈멤버는 소위 ‘게임 좀 하는 사내’들이다. 한국IBM, 삼성SDI, 롯데미래전략센터 등에서 시장분석과 신사업 기획업무를 담당했던 이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게임광이자 추리소설 마니아. 여기에 게임 기획자 출신 이진희(37·마케팅/운영 담당) 기획총괄과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 챔피언을 지냈던 전직 프로게이머 백민수(26·개발/디자인) 기획자가 함께한다.

초기엔 크고 작은 부침이 잇따랐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게임제작의 문턱은 높았고, 투자비용은 점점 불어났다. ‘원하던 방향이 아니다’라며 떠나는 멤버도 있었다.

표류하던 아이디어를 확신으로 바꿔 준 건 ‘방 탈출 게임’의 선전 소식이었다. 지난 2015년 시작된 방 탈출 게임은 대학가 등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며 전국으로 확산됐다. 현재 전국 500개가 넘는 곳이 성업 중이며, 월 평균 30만명 정도가 찾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복연 대표는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놀거리를 갈구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라며 “방 탈출 게임의 무대를 야외로 옮겨보자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 [FIRST trouble] ‘한 땀 한 땀’ 산고의 고통으로 뽑는 스토리 

게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니 자연스레 국내게임 생태계의 아쉬움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아쉬움은 고스란히 ㈜올포펀의 토대가 됐다.

“쏟아져 나오는 게임 보면 다들 비슷비슷하잖아요. 대규모 사용자를 대상으로 수익성을 담보하는 게임들만 개발하니까요. AR게임의 경우는 스토리의 독창성이 떨어지죠. 사실 포켓몬Go같은 게임을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아요. ‘MBC무한도전’에서 바로 비슷한 게임을 만들어 ‘무도리특집’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죠. 관건은 오리지널 스토리, 즉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를 구축하는 것입니다.”(이복연 대표)

㈜올포펀이 가장 차별화하려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 독특한 지역성을 투사시킨 탄탄한 (게임) 스토리다. 현재 창신동, 문래동, 경복궁, 세운상가, 백사마을(노원구), 화랑대역, 선유도 등 6~7곳을 대상으로 막바지 스토리 작업이 진행 중이다. 각각의 에피소드에 해당 지역의 사연과 분위기를 게임 스토리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벽 황량함을 지닌 문래동 철공소 골목에선 영화 ‘추격자’의 주인공이, 역사적 뒷이야기를 간직한 경복궁에선 ‘인디애나 존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식이다. 백민수 기획자는 “AR게임의 매력은 본인이 주인공이 되어 현실에서 직접 플레이하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라며 “우리 게임을 통해 플레이어들이 영화 속 탐정이 되어 직접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창신동의 밤거리가 올포펀의 AR게임 에피소드 I의 배경이다

문제는 스토리 작업이 만만치 않다는 것. 20년 경력의 분석가인 이복연 대표가 “너무 쉽게 봤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직접 현장을 찾아야 하는 AR게임 특성상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 모을 명분이 있어야 하고, 이 과정에 지역성도 담아내야 한다. 이진희 기획총괄은 “추리소설처럼 너무 세세하게 갈리면 플레이어가 금세 실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플레이와 스토리의 균형점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게임으로서의 ‘재미’도 확실히 챙겨야 한다.

내년 초 계획했던 ‘에피소드 I’ 출시가 6개월이나 밀린 것도 그래서다. 이복연 대표는 “아무래도 초반엔 시행착오도 겪고, 조직답게 다듬어지는 시간도 필요했다”면서 “다행히 이젠 모든 팀원이 ‘올인’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됐다”고 했다.

 

| [FIRST join] 스무살 차 동업자의 ‘쿵짝쿵짝’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여러 사람이 들고 났지만, ㈜올포펀의 굳건한 주축은 이복연·이진희·백민수 등 3명의 주주다. 그런데 이들의 만남과 결성이 조금 특이하다. 멘토와 멘티의 관계였다는 것이 그렇다.

이복연 대표는 지난 2016년 가을부터 ‘판교 스타트업캠퍼스’(경기도 판교 위치)의 비즈니스 코치로 활약 중이다. 대기업 기획자부터 경영컨설팅사 대표까지 역임했던 경력을 살려, 예비 창업자에게 소위 ‘장사가 되는’ 비즈니스 모델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진희·백민수 두 멤버는 이곳의 1기 시그니처 코스 참가자들이다. 맏형과 막내의 나이차는 무려 18살. 이복연 대표는 (상대적으로) 어린 창업동지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아직은 경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편이죠. 하지만 그건 내가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에요. 진희의 경우, 게임기획 경험이 풍부하다는 게 강점이죠. 그가 없으면 게임 만드는 건 꿈도 못 꿉니다. 민수는 게임으로 세계 탑을 찍어봤잖아요. 우리 중에 가장 ‘게임에 목숨 거는 친구’입니다. 게임은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는 투철한 신념이 빛을 발휘할 때가 많죠.(웃음)”(이복연 대표)

나이와 경험의 차이가 적지 않지만 호흡에는 문제가 없다. 준비기간 동안 지역 현장답사를 수차례 진행했는데, 현장에선 각자 상상 속의 스토리를 풀어내느라 밤이 지새는 줄도 모른단다. 백민수 기획자는 “모두 머리를 맞대 쿵짝쿵짝 스토리를 짜고, 함정이나 트릭 같은 걸 구상할 땐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게임 속 경복궁에는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 [FIRST outcome] 내년 3월 베타버전, 국내 AR게임의 새 길 열 것

㈜올포펀은 내년 상반기 안에 시장에서 승부를 본다는 방침이다. 정식 론칭에 앞선 3월에는 베타버전도 출시된다. 그렇다면 올 한 해 동안 이들이 얻는 성과는 무엇일까? 이진희 기획총괄은 ‘자신감’이 가장 큰 성과라고 했다.

“처음에는 회의적인 반응도 많았어요. 위험요소가 많다는 지적도 들었고요. 하지만 직접 부딪치며 깨우치다보니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감이 잡힙니다.”(이진희 기획총괄)

세 명의 게임광이 꿈꾸는 미래는 ‘돈 잘 버는 회사’가 아니다. ‘AR게임을 제대로 만드는 스타트업’이라는 정체성이 먼저다. 이 기획총괄은 “실제 현실과 가상의 스토리를 잘 믹스하는 게임 제작사라는 인지도가 쌓이면, 확장할 수 있는 영역은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 지자체 도시재생 사업에 게임을 적용하는 식의 프로젝트도 가능하다. 글로벌 진출에 대한 야망도 감추지 않았다.

“영국 사람들이 셜록홈즈의 고장, ‘베이커 스트리트(Baker street)’에서 우리 게임을 하며 돌아다닌다고 상상해보세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분명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믿습니다.”(이복연 대표)

 

/사진: ㈜올포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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