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것
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것
2017.12.21 18:08 by 류승연

지적장애 2급의 아홉 살 아들. 요 귀여운 어린이는 아침 7시가 되면 일어나 학교에 갈 준비를 한다. 여유 있는 날은 계란비빔밥에 김을 싸서 먹고 가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식빵을 먹고 나간다.

빵을 먹을 때는 반드시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우유식빵이어야만 한다. 옥수수식빵이나 버터식빵 등은 귀신처럼 맛을 알아채고 먹질 않는다. 딸기잼을 발라서 주면 쨈이 안 발라진 식빵 겉의 표면만 얇게 뜯어 먹는다.

세 살부터 다섯 살까지 무려 천 끼가 먹는 식사를 오로지 흰 밥에 김치, 또는 김치전으로만 먹었던 녀석이다. 그만큼 미각의 민감성이 남다르다. 발달장애 아이들의 감각이 남다르단 얘기는 여러 차례 한 적이 있는데 아들의 경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다행히 유치원 시절 설리번 선생님 같은 특수교사를 만나 김치만 먹던 민감성이 둔화됐지만 여전히 과일이나 디저트는 입에도 안 대고, 음료도 우유와 두유 말고는 먹질 않는다.

어쨌든 밥을 먹고 나면 옷을 입는데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다. 엄마인 내가 할 일이 많다.

스쿨버스를 타는 한 시간 동안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말을 할 수 없기에 기저귀를 채워 보낸다. 아들은 쉬가 마려우면 바지를 내리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것이 자신의 의사 전달 방법이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어른이 그 작은 행동을 알아채지 못할 경우 옷을 입은 채로 실례를 해 버릴 수도 있다. 스쿨버스에선 옆에 어른이 앉아 있지도 않고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기에 기저귀를 채워 등교시켜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혼자 옷 입을 줄을 모르는 아홉 살 아이에게 끙끙대며 옷을 다 입히고 나면 나는 아들의 윗옷을 홀라당 걷어 올린다. 반으로 자른 수건을 등 전체에 평평히 댄 후 다시 옷을 내린다. 아들은 차를 타면 등에만 땀이 나는 특이체질이라 등이 흠뻑 젖곤 한다. 한 시간이나 차를 타면 가재수건으론 감당이 안 돼서 수건을 반으로 잘라 대기에 이른 것이다.

내복 위에는 얇은 윗옷만 하나 입고 잠바를 입는다. 두꺼운 옷을 겹쳐서 입히지 못하는 건 스쿨버스 안이 더워서 땀이 나도 스스로 목도리를 풀 수가 없고 잠바의 자크도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히터가 나오는 스쿨버스 안에서 땀으로 탈진할까 봐 옷을 얇게 입혀 보낸다. 대신 학교에 도착하면 교실에서 덧입을 수 있도록 언제나 가디건을 한 벌 준비해서 보낸다.

스쿨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은 8시 5분. 집에서 정류장까지는 어른걸음으로 1~2분 거리지만 아들과 함께 가면 매일이 다르다. 협조적인 어떤 날은 2분 만에 도착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날은 10분 이상을 거리에서 씨름한다.

빌라 계단을 내려가는 것부터 일이다. 계단 손잡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기도 하고, 무슨 심보가 꼬였는지 2층 즈음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당최 내려올 생각을 안 할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아침부터 복도가 울리게 노래를 불러대며 아들의 비위를 맞춘다. 간지러움도 태우고, 두세 칸 정도는 안고도 내려오고, 힘으로 잡아끌기도 한다. 그동안에도 노래를 계속해서 불러야 한다.

자. 드디어 밖으로 나왔다. 나는 얼른 손에 들고 있던 빨간색 망토를 입힌다. 빨간 망토는 원래 내 옷인데 얇게 입힌 옷에 감기라도 걸릴까 봐 스쿨버스를 타기 전까지 입혀 둔다. 키도 큰 사내아이가 빨간 망토를 두르고 헤헤거리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귀여워서 뽀뽀를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하지만 버스는 귀엽다고 해서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는 마음이 급해 죽겠는데 아들은 몇 걸음 잘 걷다 말고 또 무슨 감각이 파고든 건지 “우우우” 그러며 멈춰 선다. 손을 들어 눈앞에서 파닥이며 한참동안을 제자리에 서 있는다.

갑자기 파고든 감각이 지나가도록 기다려줘야 하는데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안절부절. 결국 어떤 날은 감각이 어쩌건 말건 팔을 잡고 뛰어버리기도 한다. 버스가 오면 급하게 망토를 벗겨서 차에 올려보낸다.

그동안 비장애인 딸은 모든 것을 혼자서 척척 해낸다. 7시에 일어나면 혼자서 화장실로 가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차려준 밥이나 빵을 먹고, 본인이 알아서 입고 싶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러다 8시 30분이 되면 앞집에 사는 할머니를 만나 함께 등교를 한다.

평범한 초등학교 2학년의 아침 일상은 이렇다. 엄마인 내가 손이 갈 일이 없다. 딱 하나 머리 묶는 것만 내가 해 준다. 하나에서 열까지 엄마의 손이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아들과는 천지차이다.

이렇게 아들은 나를 힘들게 한다. 내 몸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몸이 힘든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마음이 힘든 것에 비하면.

오늘 아침의 일이다. 빵을 먹던 아들이 노래를 불러달란다. 내 팔을 잡고 위아래로 흔드는 게 노래를 부르라는 뜻이다. 아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자 앉은 상태에서 몸을 들썩이며 박자를 맞춘다. 흥이 오르는지 박자에 맞춰 고개도 양옆으로 돌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남편과 나는 웃겨 죽는다.

“너 때문에 웃고 산다. 너 아니면 이 세상에 웃을 일이 어딨냐”

남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 얼굴에서 아무 가식 없는 순수한 미소가 지어지는 유일한 순간이 아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다. 세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고뇌가, 피곤이, 아들의 웃음 한 번에 날아간다.

낮은 인지와 남다른 신경회로 덕분에 아들이 유지하고 있는 순수함이 이미 세속의 때로 찌들어 있는 부모에게 평안한 안식을 준다. 어쩔 땐 아들로 인해 구원받는다는 느낌조차 든다.

지난주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한 주였다. 지하철에서 부정적인 시선과 행동을 보인 아가씨에게 “너도 이다음에 결혼하면 장애 아이를 낳아라”는 말을 한 남편과, 그 말에 속 시원함을 느꼈던 내가 돌을 맞았던 것이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고.

처음엔 나도 발끈하는 마음이 생겼다. 왜 나는, 우리는 항상 당하는 입장이어야만 해? 나는 세상에 빚진 게 없는데 왜 언제나 세상에 고개 숙이고 미안해하기만 해야 해?

세상은 나에게, 우리에게 마음껏 ‘시선의 폭력’을 던지면서 나는, 우리는 그저 자식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 모든 ‘시선의 폭력’을 당연한 듯 받기만 해야 해? 처음이었는데…. 이렇게 한 번이라도 대응해 보면 안 되는 거야? 대체 왜? 그리고 언제까지?

하지만 시간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해서는 안 될 말이 맞았다. 우리 부부가 실수한 것이었다. 인정한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만났던 아가씨에게 이 자리를 빌려 사과의 말을 전한다.

사과를 하는 이유는 그 말이 오해의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의 의미는 장애가 있는 후손을 낳으라는 말이 아니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아 우리에게 던진 그 시선을 꼭 똑같이 받아보라는 뜻이었다. 그러면 그때 알게 될 것이란 뜻이었다. 지금 스스로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는지.

‘출산’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니라 출산으로 인한 ‘시선’에 방점이 찍힌 말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 문장만 가지고는 얼마든지 오해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욕’ ‘그런 폭언’이라는 반응을 보고 나서야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 말이 ‘욕’이 되거나 ‘폭언’이 되려면 ‘장애 아이’ 자체가 ‘나쁜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 ‘나쁜 것’을 낳으라는 말이 비로소 ‘욕’이나 ‘폭언’으로 성립될 수 있다.

물론 장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어디 가서 자랑할 만큼 기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행하거나 안 좋은 일도 아니다. 앞서 아들의 아침 일과를 세세히 써내려간 건 그런 이유에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다. 아들의 장애로 인해 엄마인 내가 몸이 힘들어졌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아들로 인해 내 정신은, 내 마음은 오히려 더 기쁘고 행복하다. 무교신자인 내가 ‘구원’이라는 느낌조차 받을 정도라면 설명이 될까? 이런 내 아이가 ‘나쁜 것’일까? 낳아 키우면 큰일이라도 나는 ‘욕’이나 ‘폭언’의 대상일까?

장애가 없는 딸은 딸대로 예쁘다. 정상적인 발달속도로 자라가는 이 아이는 그 나이에 맞는 기쁨을 부모에게 선사해준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아들은 장애가 있어서 더 예쁘다. 늦은 속도로 자라가는 아이만이 줄 수 있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기쁨을 매일 매 순간 선물해 준다. 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런 것이다.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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