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인생이 뭔지, 누가 결정하지?”
“의미 있는 인생이 뭔지, 누가 결정하지?”
2018.01.03 16:56 by 류승연

활동보조인이 아들을 때린 사건이 발생한 이후 내 머릿속을 맴도는 두 글자는 ‘인권’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날 아침, 전날 종일 밖에 나가 놀고 왔더니 집에 먹을 게 없다. 나는 가족의 먹거리를 책임진 ‘주부’로서의 권력을 이용해 “오늘 아침은 짜장 라면!”이라고 외쳤다. 남편과 나와 딸은 짜장 라면을 먹고, 라면을 먹을 줄 모르는 아들은 식빵을 구워주기로 했다.

그런데 주부의 절대 권력에 도전하려는 반역의 무리가 꿈틀거린다. 남편은 아침부터 밀가루가 먹기 싫다며 과일을 깎아 달란다. 딸은 우유와 시리얼로 아침을 먹겠단다. 사실 나도 짜장 라면이 내키지 않는다. 면발이 통통한 라면으로 종목을 바꿔 후루룩 먹었다.

그렇게 말을 할 줄 아는 셋은 각자의 요구대로 원하는 아침상을 쟁취했다. 그러다 문득 아들을 바라보니 퍽퍽한 식빵을 꾸역꾸역 먹고 있다. “아차” 싶었다.

얼마 전 활동보조인이 아들을 때렸다. 딸이 같은 상황에 처했어도 분노했을 테지만 아들의 경우에서 더 화가 난 건 이 아이가 말을 할 줄 모르는 발달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말을 할 줄 모르는 불쌍한 아이가 그 때문에 더더욱 인간 대접을 못 받았다고 느낀 지점에서 분노가 폭발했던 것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아들의 인권이 침범당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날 아침, 나는 처음으로 부모인 나조차도 내 아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말을 할 줄 아는 다른 가족들은 그들의 욕구를 존중해 주면서, 말을 할 줄 모르는 아들은 나 편한 대로 아침상을 차려줬던 것이다.

인권이 뭐냐고? 인권이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를 말한다. 그런데 요즘은 인권이라는 말보다 ‘인권감수성’이라는 말을 더 자주 보게 된다. 인권이면 인권이고, 감수성이면 감수성이지 ‘인권감수성’은 또 뭘까?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다양한 자극이나 사건에 대해 매우 작은 요소에도 인권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적용하면서 인권을 고려하는 것을 말한단다.

아하! 그러면 크리스마스 날 아침 식빵을 먹는 아들을 보며 말할 줄 모르는 아들의 선택권, 자기 결정권을 생각한 난 생애 처음으로 ‘인권감수성’이란 것을 경험한 순간이었나 보다.

허허. 살다 보니 온다. 이런 날도. 사실 인권이란, 인권감수성이란 내 인생에서 쓰이지 않을 단어일 줄 알았다. 인권은 말이다. 인권이란 단어는 인권을 침해당해본 자들이 사용하는 단어다. 인권을 침해하는 쪽은 평소에 인권이란 단어를 쓸 필요성이 없다.

가끔 남편과 함께 이런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만약 아들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우린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남편과 나는 신이 나서 떠들어 댄다. 남편도 나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고, 아마도 내 연봉이 남편보다 높았을 것이다.

어쩌다 뉴스에서 발달장애인법을 개정하라며 삭발을 하는 장애인 부모들의 소식을 접하기라도 하면 쓱 한 번 쳐다보고는 곧바로 잊고 딴 일을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아주 콧대가 높은, 재수 없는 여자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신혼 때 일이다. 퇴근 후 남편과 모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저 멀리 남편의 모습이 보이자 나는 손을 한 번 흔든 뒤 남편에게 다가갔다. 만나자마자 남편이 꺼낸 첫마디는 “와~ 어쩜 그렇게 재수 없게 걸을 수가 있어?”였다.

배어있었던 것이다. 콧대 높고, 당당하고, 자신감으로 충만한 자아가 살짝 들어 올린 고개에, 힘찬 발걸음에 알알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로 계속 살아왔다면 마흔이 넘어간 지금의 나는 웬만한 남자도 상대하기 힘든 대찬 여자가 되어있을 터였다. 좋게 말해서 대차다는 것이지 나쁘게 말하면 재수 없음의 극치였을 거라는 게 남편의 말이다.

그랬던 내가 변했다. 이제 사람들은 나를 만나면 내가 내뿜는 도도한 기보다 몸을 낮춘 애교와 친밀함을 먼저 본다. 물론 사람이란 완전히 변할 수는 없어서 가끔씩은 나도 모르게 재수 없었을 그 때의 나 자신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전 같지는 않다. 스스로가 느낄 정도니까.

무교신자인 내가 아들 덕분에 구원받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장애가 있는 아들은 엄마를 변화시켰다. 나만 잘난 줄 알고 나만 생각했을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작고 약하고 힘없는 고개 숙인 죄인이 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세상의 모든 작고 약하고 힘없는 것들을 비로소 돌아볼 줄 알게 되었고 급기야 인권이라는 것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의 이러한 변화는 아들에게 장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장애인인 아들은 엄마를 구원하기 위해 누군가가 내려준 선물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아들이 인권을 침해당했다. 말을 할 줄 모르기에 더 쉽게, 더 죄책감 없이 침범했을 것이다. 이건 효율성만 따지는 세상의 논리와도 맞닿아 있다. 아마 이 시간에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장애인들의 인권은 수시로 침범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권을 침해하는 쪽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큰 죄책감을 갖지 않을 것이다. 효율성의 시각에서 보면 발달장애인은 영 가치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활동보조인 사건이 터진 후 놀랐던 사실이 하나 있다. 많은 이들이 이번 사건에 분노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가까운 관계에 있는 몇몇 이들이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그들은 활동보조인을 교체하지 말고 그대로 현상 유지하기를 권했다. 내 새끼도 키우다 보면 손이 갈 수 있는데 남의 새끼한테 손이 갈 수 있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더군다나 말도 잘 못 알아듣고 보호자를 힘들게 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활동보조인이 때려도 어쩔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이유였다.

장애인이니까 맞아도 어쩔 수가 없다는 논리엔 인간의 가치를 효율성으로만 따지려는 세상의 시각이 잔뜩 배어 있다. 과거의 나처럼, 효율성만 고려하고 스펙으로만 개인의 존재가치를 따지던 과거의 나처럼 말이다.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 싶다. 어쨌든 이 영화는 오웬이라는 자폐증 청년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대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회적 사고력 평가관(Social thinking evaluator)’이라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직업을 갖고 있는 여자가 오웬의 어머니에게 묻는다. 자폐증인 오웬이 지역사회와 가족에게 기여하는 바가 무엇이라 생각하냐고.

오웬의 어머니는 오웬이 형이 꺼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의미 있는 인생이란 게 무엇인지, 누가 결정하지요?”

(사진:영화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스틸)

지적장애인인 내 아들은 이미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인권을 침해당하는 경험을 해봤고, 아마 앞으로도 이 아이는 수시로 인권을 침해당하며 살게 될 것이다. 말을 못 하니 누군가에게 이를 수도 없고, 뚜껑이 열려서 경찰에 고발하겠다며 노발대발하지도 못할 테니까 말이다.

인권을 침해하는 쪽은 큰 죄책감을 갖지 않을 것이다. 효율성의 측면에서 보면 인간적인 가치가 현저히 낮은 발달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취급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때가 오면 나 역시 묻고 싶다. “내 아들의 가치는, 발달장애인의 가치는 누가 결정하는 건가요?”라고. 오웬의 엄마처럼, 오웬의 형처럼.

가치 있는 인생? 의미 있는 삶? 남들이 보기에 멋있어 보이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많다. 하지만 그들 중 자신의 존재 자체로 단 한 명의 타인이라도 변화시키고 구원해 본 경험을 한 이는 몇이나 될까? 내 아들과 그들 중 누구의 삶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가? 그걸 누가 정할 수 있는가?

자.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으면 이젠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잘난 우리들이 정당하게 누리고 사는 모든 인권적 요소를 장애인인 내 아들도 똑같이 누리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내 아들의 인간적인 가치는 ‘맞아도 어쩔 수 없는 장애인’이 아니다.

오히려 나보다도 반짝반짝 빛나는 가치 있는 존재다. 나는 살면서 그 누구도 변화시켜 본 경험이 없지만 내 아들은 이미 나를 변화시켰고 어쩌면 아빠와 누나도 변화시킬 것이다. 존재함, 그 자체로 말이다. 나와 동등한 개인으로서 내 아들의, 발달장애인의 인권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다.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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