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에서 구로디지털로
신경숙 '외딴방'을 읽고(上)
구로공단에서 구로디지털로
2018.04.11 12:08 by 김사원

 

동남전기주식회사는 구로 1공단에 있다. (신경숙 <외딴방> 中)

구로공단은 이제 구디(구로디지털단지)나 가디(가산디지털단지)라고 불린다. 생김새가 비슷한 빌딩이 잔뜩 늘어서 있는 동네다. 빌딩 이름에는 으레 테크노, 디지털, 비즈, 벤처, IT, 타워, 밸리 따위가 들어간다. 무슨무슨디지털타워1차가 있으면 어딘가에 2차가 있고 그렇게 십몇 차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빌딩 이름과 위치 사이에는 연관성이 없어서 건물 이름만 보고 길을 찾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이 동네를 보고 '개미굴 같다'고 말했다.

검색해보니 동남전기주식회사가 있던 자리에는 에이스테크노타워2차라는 빌딩이 들어서 있다. '나'의 외딴방에서 창문을 열면 보이던 전철역은 지금의 가산디지털단지역이리라. 수원행 국철을 타고 갈 때 지나치는 서울의 마지막 지하철역이라고 해서 지금의 금천구청역이 아닐까 했는데, 1979년 서울의 경계선은 지금과 달랐나 보다. 에이스테크노타워2차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까지 가는 길에는 이제 대형 쇼핑몰이 몰려 있다. '나'는 퇴근길에 그 길을 지나갔을까?

에이스테크노타워2차는 김 사원이 다니던 회사와 한 골목 거리였다. 그 전에는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회사에 다녔고, 그 중간에 있는 쇼핑몰에도 종종 갔었다. 스물 몇 살의 김 사원이 출퇴근하며 일상을 만들어가던 그 거리거리.

1978년, 열여섯, 외딴방에 살던 '나'를 생각한다.

그때는 이런 일이 있었구나.

저임금에 시달리던 공장 노동자들, 노동법에 있는 유급휴가를 무급처리하는 회사, 일 분이라도 지각하면 한 시간 치 임금을 제외하는 부당함, 이 문제들을 이야기하며 노조 가입서를 내밀던 미스 리를 생각한다.

훗날 '넌 우리와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영등포여고 산업체 특별학급 동기생 하계숙을 생각하고, 헤겔을 읽던 미서를 생각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문학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학생운동을 하며 도망 다녔던 셋째 오빠를 생각한다.

'나'가 태어나기 일 년 전에 이미 대통령이 되어 십팔 년 동안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생각한다.

한밤중에 군홧발 소리와 함께 끌려가 끝내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가겟집 남자를 생각한다.

그리고 희재 언니를 생각한다.

최저시급을 못 받는 일이 익숙했던 대학 시절을 생각한다.

월급 100만원을 받던 드라마 편집 보조 일을 도망치듯 그만두었던 일을 생각한다.

야근 수당을 주는 회사를 아직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음을 생각한다.

일이 많으면 주말 근무쯤은 당연하게 여기는 높으신 분들을, 아무런 보상 없이 주말 당직이며 이런저런 행사에 동원하는 회사를, 그 회사가 내건 비전이 존경, 상식, 배려 따위라는 사실을 생각한다.

진도 앞바다, 용산, 광화문 광장을 생각한다.

다시 1978년, 열여섯, 외딴방에 살던 '나'를 생각한다.

그때는 아니 어쩌면 그때도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필자소개
김사원

10년 차쯤 되면 출근이 조금 담담하게 느껴진다던데요. 저에게도 10년 차가 되는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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