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불쌍하니까 도와야 한다?
장애인은 불쌍하니까 도와야 한다?
2018.04.19 15:43 by 류승연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아마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에서는 오늘 내일을 전후해 장애이해교육을 이미 실시했거나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교사들의 무지로, 심지어 특수교육을 전공한 교사들조차 잘못된 장애 인식으로 엉뚱한 방향의 장애이해교육이 행해지고 있는 걸 보고 뜨악하게 된다. 문제는 그에 대해 뭐라고 반발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그들의 마음은 선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대체 어째야 할까? 시대가 이렇게나 변했음에도 내가 어릴 때 장애인을 바라보던 시각과 달라진 것 없는 현실에 한숨이 푹푹 난다.

어제 저녁 알고 지내는 한 엄마가 학교에서 딸이 받아왔다며 가정통신문을 내민다. 장애인의 날 특집으로 발송된 가정통신문엔 “장애인은 어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니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 쓰여 있다.

자. 여기서 질문. 이 문장에서 잘못된 곳은 어디일까요? 그래. 맞다. ‘도와야 한다’는 말이 잘못됐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불쌍히 여겨 도와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존재여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장애이해교육이고, 그렇게 되어야 진정한 사회통합이 된다. 통합교육을 하는 의미도 거기에 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을 도와야만 하는 ‘불쌍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선의에서 우러나온 그런 마음을 스스로 뿌듯해하며 ‘불쌍한 장애인’을 성심성의껏 돕는다. 이때의 마음은 측은지심이 우러나 거리의 노숙인에게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미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음이다.

장애인은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맞다. 도움 없이 스스로 자립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장애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은 제도와 시스템, 전문 인력과 최첨단 기술로 도울 일이다.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 장애인을 도와야 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순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시작된다. ‘장애’라는 두 글자에 낙인이 찍힌다. ‘사회적 약자’, ‘우리와는 다른 사람’, 자라나는 새싹들의 마음에 이런 인식이 스며든다.

장애이해교육을 백날 하면 뭐 하노. 장애이해교육을 못 받고 자란 우리 세대와 다를 바 없는 인식을 지닌 어른으로 성장할 거면 학교에서의 교육이란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장애인을 도와야만 하는 불쌍한 존재로 바라보면 이런 일도 생긴다. 일반학교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기도 한데, 일반 학급의 담임선생님이 장애 아이를 위하는 마음에 툭하면 반 전체 아이들이 모두 하는 일에서 열외를 시킨다.

“너는 청소 당번도 하지 마. 줄서기도 하지 마. 피구 경기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의도는 선하다. 장애를 가진 학생을 배려하기 위해 한 행동들이다.

하지만 그 덕에 일반 학생들은 장애를 가진 친구와 자신 사이에 ‘장애’라는 벽이 놓여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된다. 다른 특성을 지닌 같은 반 친구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이 생겨버린다. 경험을 통해 무의식에 그렇게 입력이 되어버린다.

장애가 있으니까 청소당번에서 열외는 시키는 대신 서툰 걸레질을 하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함께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손끝이 야무지지 못해서 미처 못 닦고 지나치는 곳이 있으면 그럴 때 옆의 친구가 ‘소근육 발달이 더딘 특성을 지닌’ 친구를 위해 도와주어도 될 텐데. 그러면 그 때의 도움은 장애인이라 불쌍해서 돕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돕는 차원이 될 것이다. 까불이 남학생이 미처 놓치고 쓸어 담지 못한 지우개 가루를 꼼꼼한 뒷자리의 여학생이 마저 치워주는 것처럼 말이다.

 

선의에서 우러나온 안타까운 실수는 주변에서도 흔하게 일어난다.

딸이 다니는 태권도장의 관장님은 좋은 분이다. 지난 주말 관장님과 긴 대화를 할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그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관장님은 우리 가정의 사정을 잘 알고 배려하려 애쓰는 분이다. 그런데 그 배려심이 너무 강해서 그만 과하게 되어버렸다.

딸이 도장에서 동생 얘기를 할 때 장애인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나 보다. 관장님이 그 얘기를 듣곤 놀라서 딸을 불러 말을 정정해 주었단다. 앞으론 장애인이라 하지 말고 동생이 아프다고 하라고.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널리 알려주셨단다.

“수인이는 동생이 아파서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많을 테니까 너희들도 수인이는 건드리지 마!”라고.

아~ 관장님~~~!!! 선하고 배려심 많고 우리 딸을 위해주는 고마운 관장님. 그런데 그러시면 안 돼요.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게 뭐 어때서요? 왜 장애인 당사자를 넘어 그 가족까지도 특별한 취급을 받게 하셨단 말입니까? 그건 ‘장애’를 특별한 것으로 보고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쳐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답니다.

나는 관장님에게 부탁을 했다. 앞으로는 아픈 아이라며 숨기려 하지 말고 동생이 장애인이라는 걸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내가 딸에게 물려주고 떠나야 할 유산이 있다면, 그건 바로 동생이 장애인인 현실에 당당하게 맞서는 정면대결의 태도라고. 그러한 삶의 방식이라고.

‘장애’가 불쌍하거나 특별한 것이 되어버리니 장애인이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힘이 든다. 장애인과 실질적으로 부딪히기도 전에 마음속에 내려진 차단의 벽을 먼저 허무는 데 큰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면, 장애인을 대하는 눈빛이 바뀌면 생략해도 될 과정이다.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각 학교에서 장애이해교육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교사들의 무지에 의해, 때로는 교사들의 과한 선의에 의해, 때로는 교사들의 잘못된 장애 인식으로 인해 오히려 장애와 비장애 사이의 경계가 더 공고해져 버리기도 한다.

장애를 치료해야 할 병으로 인식하면 ‘아픈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아픈 사람은 불쌍하니까 무조건적으로, 심지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조차 쉬게 하고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장애를 ‘개인의 특성’으로 이해하면 장애인도 같은 반 친구가 될 수 있다. 다만 ‘장애의 특성’으로 인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나와 다를 뿐이다.

장애이해교육,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할지 이제 선택은 이 글을 읽은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내년 장애인의 날, 조금은 다른 내용의 가정통신문이 여기저기서 많이 보이길 나는 살짝 바라본다.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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