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커플은 어느 나라 말로 싸우냐고요?
국제커플은 어느 나라 말로 싸우냐고요?
2018.05.02 10:50 by 김은성

 

프랑스 남자와 서울 마포구에서 살고 있습니다. 네, 저희는 국제부부입니다. ‘남편이 한국인이 아니다’라고 말할 때마다 질문을 굉장히 다양하게 받아왔어요. 어떻게 대답했었는지 되짚어 글을 한 편씩 써보려 합니다. “불어 잘하세요?”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었어요. 불행히도 저는 몇 년째 불어로 ‘나는 한국사람입니다. 나는 학생이 아닙니다’ 챕터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탓에, 영어로 소통합니다. 어쨌든 언어 장벽 때문에 정말 다채로운 문제가 생겨납니다. 저도 연애만 할 땐 사실 잘 몰랐어요!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영어가 잘 안 된다 싶으면 집으로 가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도망 갈 제 집이 없어요. 집에는 외국인이 살고. 우리 집인데 한국말이 안 통한다니.

케세라세라(que sera sera·어떻게든 되겠지)

‘진짜 사랑에는 언어가 필요 없다’는 러시아 속담도 있지만(사실 제가 방금 만들었어요) 그거야 사이좋을 때 얘기인 거, 다들 아시잖아요? 눈빛과 몸짓과 마음만으로도 충만한 세계. 국적이 다른 연인과 사랑에 빠지기 전에 반.드.시 알아두셔야 해요. 외국어로 논쟁해 상대방을 쓰러뜨려 본 적이 있나요? 평화협정을 맺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면 진지하게 숙고해 보셔야 합니다, 연애 자체를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잘 싸우는 것’이잖아요. 사랑을 잘 해 나가기 위해서 싸움을 회피하면 절대로 안 되잖아요. 그런데 저는 자꾸 자꾸 회피하게 됩니다. ‘하하하! 싸울 정도로 중요하고 긴급한 이슈는 아닌 걸!’ 하면서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국제커플에게는 사소한 감정싸움부터 집안대소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언쟁이 스피치 시험이 됩니다. 외국어 실력과 사전, 그리고 사전을 뒤지는 내 모습에 스스로 웃지 않을 안간힘이 요구되는 거죠.

 

남편이 그린 ‘부부 싸움’ 장면. “은성 씨는 화가 나면 예쁜 트럼프 같아요. 영어로 말 아주 많이 하는데, 조금 웃기고 무섭습니다.”

| 두루마리 휴지는 엉덩이에만 사용하시오

싸울 일은 쌔고 쌨어요. 문화적 차이는 아주 아주 문제가 됩니다. 지난 주 일입니다.

“화장실 휴지가, 왜, 저기, 있지?”

“왜? 내가 뒀으니까!”

그가 인공지능 소피아처럼 또박또박 말하기에 저도 이글이글. 한국에서는 두루마리 화장지로 밥 먹다 입가도 닦고 생선가시도 발라 놓고 물에 씻은 상추 담은 소쿠리 밑에 받치고 만병통치약처럼 쓰는데, 유럽에서는 ‘화장실 용품’이라고 여겨요. 우리가 휴지를 쓸 일들에 프랑스 사람들은 보통 면으로 만든 키친 클로스로 닦고 물에 빨아쓰더라고요. 굉장히 ‘킨포크’스럽다고 보시면 돼요. 우리가 자취 팁으로 애용하는 물티슈도 보기 힘들어요. 물론 환경보호에는 몹시 이롭습니다.

 

프렌치 스타일 키친 클로스. 프랑스 가정집에서는 두루마리휴지나 물티슈는 잘 안 써요.

그런 환경에서 나고 자랐으니, 남편은 식탁이나 침실에 두루마리 휴지가 있으면 오만상을 찌푸리고 치웁니다. 결국 욱하는 마음이 앞선 어느 날 문화적 차이려니 하고 참아온 것들을 모두 쏟아내버렸어요. “나도 느이들 빵가루 사방팔방 날리면서 바게트랑 크로아상 먹는 거 엄청 놀랬는데 적응했거든? 머리 매일 안 감는 거 당황스럽거든? 옷은 왜 자주 안 빠니? 비 오는데 우산은 왜 안 써? 참, 식탁에서 코 좀 풀지 말아줄래?” 물론 속으로만. 영어로 말하기 너무 귀찮은 날이었거든요. 이렇듯 때로는 게으름 앞에 전의를 상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편이 그린 그림. “왜 망치로 때리는 사람이 나야?”라고 물으니, 자기는 한번도 ‘이건 문화적 차이야!’라고 우긴 적이 없다네요. 이런 동상이몽이????

| 기면 기라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기

화법의 차이도 싸움을 유발합니다. 요즘 유튜버 ‘영국남자’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프랑스남자’ 만들어 보라는 이야기를 정말이지 아흔 일곱 번쯤 들은 것 같아요. 딸깍발이 같은 남편 성격 알지만 그래도 조심스레 물어봤죠.

“혹시 유튜브 콘텐츠 만드는 것에 관심 있어?”

“N0!”

‘No’ 다음에 이유를 말할 줄 알고 한참 기다렸는데요. 고개 돌려 자기 할 일 하더군요. 컴퓨터 전원 선을 확 뽑아주고 싶었습니다... 직장인분들 간혹 외국바이어와 전화나 미팅하다보면 “대화가 왜 이렇게 굴러가지?”싶어 당황스러울 적이 많잖아요? 국제부부 라이프는 그것의 심화 버전이라 보시면 됩니다.

상대의 제안에 흥미가 없어도 우리는 바로 거절하는 경우가 드물잖아요? 다양한 간접화법을 사용하지요. ‘생각해 볼게’, 아니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여서 상대가 의중을 눈치 채도록 유도합니다. ‘좋게 좋게’ 돌려 말하는 거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해요. “왜 대화에 ‘눈치’가 필요하지? 생각을 정확한 단어로 표현해서 상대와 소통하는 게 대화의 목적인데?” 이 ‘눈치’라는 게 한국식 눈치잖아요. 남편은 당연히 그런 거 없습니다. “척하면 척!” “에이~ 꼭 말로 해야 아냐?” 이런 거 하나도 안 통합니다.

(모든 유럽인이 그런 건 아니겠으되) 적어도 프랑스는 ‘단호박 형’이 대세입니다. 다수 의견에 맞춰 ‘네, 네, 네’ 연발하는 예스맨, 자기 견해를 자신 있게 말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매력이 하나도 없다고 여깁니다. “쟤는 왜 자기 주장이 없어? 뇌가 없나?” 그럽디다.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야, 야. 살아 봐. 그짓말 하는 놈보다는 참말을 얄밉게 하는 사람이 살기 편하다. 가뜩이나 너 눈치도 없는데, 돌려 말하면 알아듣겠니? 둘이 아주 잘 만났네!” 부부경력 많으신 분들 이거 진짠가요? 살아봐야 알 일이겠죠.

 

| 프린터 고르다 냉전

어젯밤엔 함께 프린터를 고르다가 욱해서 맥주 대짜로 2병 해치우고 잔 후에도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아, 아침까지 묵언 수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품 무한잉크 복합기’를 정품, 무한잉크, 복합기 세 단어로 나누어 네이버 영어사전에 하나하나 찾아보는데 지하철 옆자리에서 제 폰을 훔쳐 보던 남편이 웃음이 터진 겁니다. 그냥 대충 화해했죠. 저도 웃음을 못 참았어요.

 

‘무한’ 잉크의 ‘무한’은 정말 무한하다는 뜻이 아니잖아요? 흑백으로 7000매 정도잖아요... ‘블랙 앤 화이트 프린트 세븐 싸우전드...’라고 번역하는 나.
참고서에 안 나오는 생활 영단어 외우기엔 국제결혼이 최고여... 권해 드려요

언어와 문화가 다른 두 사람이 같이 쓸 전자제품 하나 고르는 것도 녹록치가 않습니다. 제가 몇 시간 들여 엄선한 E사의 모델들은 영어나 불어로 리뷰가 하나도 없었어요. “프랑스에선 E사는 유명하지도 않고 고장도 잘 난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니, 한국에선 E사가 대세인데! 게다가 프랑스에선 아직 정품 무한잉크 개념이 없다더군요.

이럴 땐 정말 힘이 쭉 빠집니다. 이번 건 좀 쉽게 넘어가겠지 싶은 사소한 것이 빨리 진행이 안 되면 지쳐요. “일정이 착착! 좀 쉽게 쉽게? 스뭇-쓰하게 일해나가는 맛, 알잖아?”에 익숙한 한국인이라서요. 그럴 때는 ‘프린터 용지 걸림’ 기분이 됩니다. 턱, 턱. 돌아보면 남편도 어느새 잉크가 번진 종이 같은 표정이 되어 있어요. 30년 넘게 습득한 생존 기술이 모조리 쓸모없어져 타인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서글플지. 이럴 때 그는 기운 없이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고 말하고는 해요. 그러면 저는 더 슬퍼집니다.

 

|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

결혼만 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하루하루 ‘국제부부 살기 워크숍 1일차’인 기분이에요. 부부싸움을 하다 내 입에서 원래 의도치 않았던 엉뚱한 말이 흘러나올 때마다 너무 당황스럽고요. “내가 아는 영단어를 연결해서 이상한 말을 하고 있어!” 싶고요. 서로의 화법이나 뉘앙스도 이해가 되질 않고요. “나도! 한국에선 말 잘하는 사람이야!” 외치고 나서 스스로 부끄러워지고는 합니다. ‘영어는 도구다. 도구에 쩔쩔매지 말자!’라고 마인드 콘트롤을 해보다가 너무 이기고 싶어서 갑자기 확, 허그를 한 적도 있고요. 물론 안 통하더라고요. 너무나 차가웠던 너! 그래도 애교나 삐지기 같은 사짜기술 절대로 안 통하는 바칼로레아의 민족과 열심히 싸우다 보니 덩달아 논리력이 탄탄해진 느낌이 드는 건 뿌듯하네요.

 

우리,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있겠죠? 우리에겐 100살까지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있으니까! 다음 회를 기대해 주세요. 또 열심히 살아보고 올게요!

 

/사진: 김은성, 그림: 바티스트 튈리에

 

필자소개
김은성

프랑스어 모르는 한국여자, 한국어 배우는 프랑스 남자 바티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나라 말로 부르건 들은 척 안하는 고양이 미코와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살고 있습니다. 국제부부의 생생한 삶을 담은 '다큐적 접근'적 에세이를 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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