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사회 부적응 청년들, 세상으로 나오다
은둔형 외톨이·사회 부적응 청년들, 세상으로 나오다
은둔형 외톨이·사회 부적응 청년들, 세상으로 나오다
2014.12.11 15:30 by 조철희

 “저는 일본에서 중학교도 못 마쳤어요. 그때는 학교에 가는 것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요. 하지만 K2에 들어와 내 요리를 먹고 ‘맛있다’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는 게 있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요리가 즐거웠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유난히 추위가 빨리 찾아왔던 11월 말의 늦가을 저녁. 일본식 전골요리인 나베가 보글보글 끓어갈 때 쯤 코보리 모토무(31) 씨가 말을 꺼냈다. 서툰 우리말에 일본어를 섞어가며 용케 대화를 끌어나가는 그는 K2인터내셔널(이하 K2) 코리아의 총괄책임자다. 이날은 서울 합정동의 K2 코리아에서 매주 진행하는 일본영화 상영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에 앞서 K2 코리아의 스태프, 자원봉사자와 프로그램 참가자 등 10명 남짓이 모여 저녁식사를 가졌다.

코보리 씨의 말에 “이때까지 나도 집에만 있었다”고 입을 뗀 형수(25·가명) 씨, 그는 이번이 K2에 두 번째 참가다. 나베 요리는 사토 쇼(23) 씨가 담당했다. 4년 전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호주 연수를 거쳐 1년 반째 우리나라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이제 우리말도 수준급이다. 평일엔 인근의 홍대 어학당에서 우리말을 공부하고, 주말에는 공덕동 늘장에서 타코야끼를 팔고 있다. “아직 한국에 더 머물고 싶다”고 말하는 사토 씨에게 코보리 씨를 비롯해 함께 생활하는 K2의 스태프와 자원봉사자들은 가족 같은 존재다.  

평일 점심, 일본 가정식 백반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K2 코리아 하우스. 사진은 카라아게 덮밥(좌)과 탄탄면(우).
 히키코모리 자립 지원 26년…“환경의 변화가 곧 변화의 시작”

1989년 설립된 K2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뜻의 ‘히키코모리’와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가리키는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등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 청년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일본의 사회적기업이다. 현지에서 지자체와 연계한 상담소 및 쉼터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공동생활 및 취업훈련을 통한 청년들의 자립지원에 주력한다. 본사가 있는 일본 요코하마에 12개 기숙사가 있고, 평균 120~150명 선의 연수생이 공동생활을 한다. 사회복지사, 상담사, 간호사, 생활지도원으로 구성된 퍼스널 서포트팀이 이들의 직업훈련 및 생활전반을 체계적으로 지원한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에 소속감을 심어주고, 포기하더라도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쏟는다.

취업훈련은 K2의 자체사업장인 식당·카페(7개소)와 농장 및 외부 기업과의 인턴십 연계 등을 통해 이뤄진다. 취업‘훈련’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자체사업장의 정직원 중 약 80퍼센트가 K2 연수생 출신이다. 관련 상담 이용자는 연간 3000여명에 이른다.

K2는 뉴질랜드와 호주, 우리나라에 해외지부도 두고 있다. 이 같은 K2의 해외사업장은 일본 청년들의 해외연수의 장으로 활용된다. 해외연수생은 평균적으로 25~30명 선을 유지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변화의 속도나 깊이가 다르다.

“해외 연수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환경, 네트워크 속에 놓이게 된다는 거예요. ‘리셋’할 수 있는 계기가 되죠. 저도 중학생 때 뉴질랜드에 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같은 경험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함께 학교에 다니고, 외국어도 배웠죠.”

K2 코리아의 코보리 씨도 한때는 세상으로 나오기가 두려웠던 히키코모리였다. 하지만 15년 전 뉴질랜드로 건너가 K2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10년간 뉴질랜드, 호주지부에서 지냈고 호주에선 대학까지 마쳤다. 2009년에 K2의 정사원이 됐다. 한국지부가 설립되면서 우리나라와도 연을 맺었다. 2012년 합정동에 문을 연 K2 코리아는 연수생들이 만드는 일본 가정식 백반과 타코야끼를 판매한다.  

사진 : K2인터내셔널코리아 제공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과 일할 수 없는 것은 다르다

 “18~19세까지의 지원은 있어도, 그 이상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에는 인색하다는 인상입니다. 한국에서는 취업을 못하면 ‘게으르다’, ‘능력이 없다’고 말해요. 다들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혼자서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죠.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나 ‘니트족’을 지원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돼 있어요.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입니다.”

코보리 씨는 2년간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15~20년 전의 일본과 비슷한 양상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전개되고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은둔형 외톨이나 니트족 문제가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 2005년 청소년위원회에서 은둔형 외톨이 위험군 고교생을 전체의 2.3%인 4만3000명으로 추산했던 적이 있을 뿐, 이후 제대로 된 통계조사조차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니트족에 대해서는 취업난 등 사회적 문제와 결부시키고 개인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좀처럼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하루는 30세의 딸을 둔 어머니께서 찾아오셨어요. 따님은 대인기피증이 있어 사람들을 대하는 게 어려운 분이었고, 직업은커녕 아르바이트도 오래 지속할 수 없는 분이었어요. 어머니는 답답한 마음을 친척이나 친구들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고,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 곳도 마땅치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하셨죠.”

26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K2 코리아는 한국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찾아가는 중이다. 이미 2012년부터 ‘한일청년포럼’을 여섯 차례 열었다. 지난 6월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니트 문제를 다룬 ‘한일청년 니트 비교포럼’을 개최하고 이를 관련 단체들과 ‘한일 니트 지원자 네트워크’로 이어가고 있다. K2 코리아와 더불어 함께일하는재단, 유자살롱, 소풍가는고양이 등이 같은 고민을 나눈다. 내년에는 니트 성향의 자녀를 둔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한 공동설명회와 국내 활동가 육성을 위한 일본의 니트 지원 프로그램 견습 투어 등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한편, 올해 8월부터 지난달까지 성북문화재단과 국내 청년들의 자립지원 프로그램인 ‘트라이(TRY)’도 진행했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의 일환이다. 일본요리교실, 일본영화 상영회, 옥상파티 등 참가자가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사업이 종료된 이달부터는 K2 코리아가 자체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성북문화재단의 김진만 정책협력팀 대리는 “K2 코리아가 언어의 장벽이나 네트워크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이어가 은둔형 외톨이, 니트족 등 청년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길 바랐다.

“우리나라에선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쉽게 공론화되지 않습니다. 당사자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고, 부모들도 쉬쉬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현재 마포구에서 2명의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을 어렵게 찾았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굴해 K2의 자립프로그램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려 합니다. 이들의 경험을 사례화해 유통시킨다면 부모와 사회의 인식을 바꿔나가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현재 K2 코리아에 있는 일본인 연수생은 사토 씨 한 사람 뿐이다. 줄곧 4~5명 선을 유지하던 연수생 수도 연말을 맞아 많이 줄었다. 그 자리는 한국인들이 대신 메우고 있다. 한일청년포럼에서 K2 코리아를 접한 한국인 자원봉사자 한 명이 상주하고 있고, 정기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한국인 참가자가 세 명가량 된다. 일본인 연수생 중심으로 돌아가는 다른 해외지사들과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다.

 

  ‘나쁜 기분 보증’…누구든지 일할 수 있도록

합정동에 위치한 K2 코리아 하우스의 한쪽 벽면에는 ‘나쁜 기분 보증’이라는 말이 사훈이자 가훈처럼 걸려 있다. 코보리 씨는 “언제나 웃으며 일 할 순 없지 않느냐”며 “무리해서 자기감정을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일은 티 나게 한다’, ‘웃으면 즐거워진다’ 등 K2의 이념을 담은 문구들이 벽면 곳곳을 채우고 있다. 일을 지속하기 힘든 이들을 위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이자, K2 코리아를 찾는 손님들의 이해를 돕는 장치다.

K2 코리아는 지난달 17일 사람마중과 소셜프랜차이즈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활동의 지평을 넓혔다. 사람마중은 위기청소년, 범죄경력자, 노숙인 등 취약계층에 고용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2011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이들은 내년 3월 ‘콜로타코(COLOTAKO)’ 안테나샵 런칭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소셜프랜차이즈 사업에 나선다. K2 코리아는 타코야끼 등 일본요리 조리기술 및 교육을 담당한다.

“우리가 맡은 교육이란 결국 살아가는 법에 대한 것입니다. 보통은 기술이 있는 사람, 수완이 좋은 사람이 사업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하죠.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한국에서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 누구든지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K2인터내셔널 코리아 |

k2-09
합정역 7번출구에서 도보 5분. 성산중학교 뒷편의 골목길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다.(마포구 합정동 363-30) 일본 가정식 요리와 타코야끼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히키코모리, 니트 등 청년 문제를 한일교류를 통해 풀고자 한다. 매주 '보리's 키친'(일본요리교실), 일본영화의 밤, 한일언어교환, 옥상파티 등의 프로그램 진행. 한국인 자원봉사자와 연수생도 수시 모집한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K2inter2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K2InterKorea 

필자소개
조철희

늘 가장 첫번째(The First) 전하는 이가 된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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