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들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했을 때 고양이가 점프하는 멋진 순간을 만나는 건 그저 행운일 뿐이라 여겼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고양이가 카메라 앞에서 몸을 날리지 않는다면 점프샷을 찍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몇 년의 경험 속에서 순간 포착의 우연을 만날 확률을 조금은 높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좋은 카메라? 순간 포착을 위한 순발력? 그런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장비나 테크닉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길고양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었다.
고양이들이 언제 뛰어오를지 모르기에 긴 시간을 함께 하지 않고서 비상의 순간을 만날 수 없다. 함께 있는 동안 고양이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지켜봐야 한다. 주로 움직이는 동선은 어디인지, 날아오르기 전 걷는 모양새는 어떤지, 도약을 위해 얼마나 오래 움츠리는지. 이 모든 것들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도통 환희의 순간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오랜 친구가 좋은 이유는 단지 편안해서만은 아니다. 시간을 관통하여 다양한 모습을 보아왔기에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고, 바로 그 이유로 그 친구가 진정 아름다운 순간 또한 놓치지 않게 된다. 성공의 여부가 아니라 살아온 삶의 궤적에 비추어 비상의 순간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속적 기준이 아니라 삶을 통해 누군가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사람들 -- 그게 바로 친구 아닐까?
아름다운 순간과의 조우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작다. 어떤 일을 이루려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필요하다고들 하지만 ‘진인사’의 비중은 미미한 것이다. 하지만 부단히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 아름다움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함께 있는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 아름다울 수 있을까.
*원문 출처: 김성우 지음, 『어머니와 나』, 쇤하이트, 2018.
성찰과 소통, 성장의 언어 교육을 꿈꾸는 리터러시 연구자로 사회문화이론과 인지언어학을 통해 영어교육을 새롭게 정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