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앞의 촛불 여행업계, 태풍의 눈 찾는 여행 스타트업
태풍 앞의 촛불 여행업계, 태풍의 눈 찾는 여행 스타트업
2020.07.07 13:15 by 이지섭

“올해 내 버킷리스트는 세계일주였어…” 

친구 A가 마시던 맥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는 작년, 돌연 휴학계를 내고 아르바이트에 몰두했다. 지금 아니면 평생 못 갈 세계여행을 위해 돈을 모으겠다는 이유였다. A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그는 스페인에서 산페르민 축제를 즐기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A의 찬란한 계획은 백지화됐다. 그는 내내 꿈꿨던 스페인을 휴대폰 화면 속에 겨우 만나고 있다. 방에 틀어박혀 넷플릭스로 ‘종이의 집’을 보면서 말이다. 

 

코로나가 앗아간 산페르민 축제(사진:Unsplash)
코로나가 앗아간 산페르민 축제(사진:Unsplash)

| 여행산업, 근본부터 흔들린다
비단 A만의 일이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각국이 해외입국자를 제한하는 봉쇄령을 시행하면서 여행자들의 발이 꽁꽁 묶였다. 병세의 확산이 가장 심하던 때는 한국 발 입국자를 제한한 국가가 180개에 달했다. 이에 따라 작년 4월 224만6417명이었던 출국자 수는 올해 같은 기간 3만1425명으로 감소했다. 98.6% 줄어든 수치. 방한하는 외국인의 수도 98.2% 감소해 전체 여행객의 수는 작년 대비 1% 수준에 불과했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여행업계에서 100개의 파이를 어떻게 분배할지 경쟁했다면 이제는 1개를 두고 싸워야 하는 실정이다. 

하늘길이 닫히면서 항공사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대한항공에서 운행하는 국제선 수는 작년 대비 5분의 1로 줄었고 여객매출은 제로에 수렴한다. 작년 1분기 2300억원의 흑자를 냈던 영업이익은 올 1분기 827억 적자로 돌아섰다. 아시아나 항공도 국제선 여객이 85% 이상 감소했고 티웨이,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저비용항공사들은 모두 국제선 운항을 중단했다. 코로나로 인해 국내 항공업계가 마주하게 될 매출 피해는 약 5조원으로 예상된다. 

 

코로나로 인해 국내 항공사 여객수가 급감했다.
코로나로 인해 국내 항공사 여객수가 급감했다.

여행사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패키지상품 매출이 가장 크게 상승하는 2분기 여행 예약이 없다시피 하면서 업계 1·2위를 다투는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매출하락을 겪고 있다. 하나투어는 지난 1분기 매출액이 작년대비 50% 감소했으며 275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지난 6월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임직원 무급휴직을 시행하기도 했다. 모두투어도 지난 1분기 매출이 작년대비 52%감소했다. 중소여행업체들은 줄도산을 면치 못했다. 국내 확진자가 발생한 1월 20일 이후 한 달 만에 폐업한 여행사의 개수는 110개에 달했다. 

 

여행업은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더욱 막심하다.
여행업은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더욱 막심하다.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성장한 스타트업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다. 로컬 기반 여행커머스 플랫폼 ‘마이리얼트립’은 코로나의 확산세로 인해 예약돼 있던 상품들의 환불요청이 폭주했다. 지난 스타트업 페어 ‘넥스트라이즈2020’행사에 참석한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는 “우리도 코로나로 인해 최대 피해를 입은 업체 중 하나”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외에도 와그트래블, 트리플 등 국내 여행업계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스타트업들도 코로나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라는 태풍은 여행 산업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큰 규모의 기업들은 넘어지면서 크게 다쳤고, 작은 업체들은 얕은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 나가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누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 태풍의 눈을 찾아 전진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은 태생적으로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발 빠르게 대처한다. 상황에 적응하고, 스스로의 성장을 증명해야 하는 이들은 코로나 사태에서도 특유의 적응력을 발휘하고 있다. 

‘크리에이트립’이 대표적이다. 2015년부터 꾸준히 아시아권의 인바운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던 크리에이트립은 현재 월 170만 유저를 확보한 아시아권의 대형 한국여행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한국어로만 유통되는 정보를 고객들의 언어로 최적화하며 여행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인바운드 여행의 질을 높이고 있다.

 

해외 인바운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진짜 현지의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돕는 콘텐츠기반 여행 커머스플랫폼 ‘크리에이트립’(사진:크리에이트립)
해외 인바운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진짜 현지의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돕는 콘텐츠기반 여행 커머스플랫폼 ‘크리에이트립’(사진:크리에이트립)

크리에이트립은 코로나로 인해 위축된 여행수요를 상쇄하기 위해 지난 3월, ‘해외직구대행’ 서비스를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구매하고 싶은 한국제품을 크리에이트립에 문의하면 크리에이트립이 상품의 검수-배송까지 책임지는 형태다. 이전부터 물품을 재구매하고자 하는 여행객들의 수요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빠르게 도입될 수 있었던 서비스다. 크리에이트립은 고객들이 선호하는 한국의 패션잡화 등 상품을 선정해 국내업체와 제휴를 맺는 식으로 서비스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여행 스타트업 ‘마이리얼트립’의 대응도 눈여겨 볼만하다. 아웃바운드 여행객들을 주 고객으로 여행상품 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마이리얼트립은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이 국내여행으로 시선을 돌린다는 점을 포착했고, 사업역량을 ‘국내여행시장’에 집중했다. 현재는 국내여행수요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여행지 및 지자체와 제휴관계를 맺으며 각종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온라인에서 로컬가이드들과 실시간으로 의사소통하며 투어를 진행하는 ‘진짜 랜선투어’ 서비스를 도입하며 ‘여행의 디지털화’에 앞장서고 있다. 

 

마이리얼트립은 사업역량을 국내에 집중시켰다. (사진:마이리얼트립 홈페이지)
마이리얼트립은 사업역량을 국내에 집중시켰다. (사진:마이리얼트립 홈페이지)

| 쭉정이는 떨어지고 알맹이만 남는다 
코로나로 인한 여행 산업의 위기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사회적 거리두리가 시행됐고 하늘길이 막혔다. 여행시장은 쪼그라들었고, 회복세는 여전히 예측불가능한 상태다. 아울러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여행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해외여행 계획을 취소하고 국내로 시선을 돌린다. 대면생활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사람이 덜 붐비는 명소를 여행지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또한 ‘안전’이라는 키워드가 대두되면서, 이제는 여행상품을 고려할 때 ‘최저가’라는 키워드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저가의 패키지여행보다는 특색있고 차별화된 소규모 그룹 여행을 선호하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분위기는 여행업계의 판도가 크게 바뀔 것을 시사한다. 출혈적 가격경쟁으로 패키지여행을 저렴하게 내놓은 뒤 쇼핑을 필수적으로 포함시키는 형태의 패키지투어, 아웃바운드 여행객을 대상으로 최저가만을 강조하는 부실화된 항공편, 실질적인 정보가 아닌 광고와 상품이 난립하는 플랫폼 등은 이번 사태로 인해 어려움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여행업계에 불어 닥친 강풍은 그간 여행업계에 쌓여있는 거품을 걷어내고 있다. 이는 ‘변화를 추구하라’는 울림이다. 변화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은 여행이라는 본질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지금의 여행자들이 원하는 여행이 무엇인지 재정의하고, 그들의 여행경험을 더욱 풍성하게 하거나 과거의 여행경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전략을 설계하고, 추진해 나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강풍이 그친 뒤, 여행업계에 살아남은 기업들은 진짜 알맹이들일 것이고, 소비자들은 그 알맹이 속에 있는 ‘여행의 참맛’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이지섭

배우며 쓰고 쓰면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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