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중심으로 모여든 혁신, 스타트업 성지로 거듭나려는 서울
한강을 중심으로 모여든 혁신, 스타트업 성지로 거듭나려는 서울
2020.07.21 14:33 by 이창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시 서울이 스타트업의 허브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에 들어섰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한강을 중심으로 창업 공간이 줄지어 들어서고 네트워크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갖춰야 할 것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이에 해외 유수의 스타트업 ‘성지’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어떻게 성장했고 거기에 무엇이 필요했는지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 허브를 꿈꾸는 서울.
스타트업 허브를 꿈꾸는 서울.

|대학생의, 대학생에 의한, 대학생을 위한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지만, 스타트업 창업 분야만큼은 2030세대가 주축을 이룬다. 최근에는 시니어를 위한 맞춤형 창업 프로그램도 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는 여전히 젊은 세대가 보다 활발히 참여한다. 단순히 열정 때문만은 아니다. 갈수록 빨라지는 시대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관련 교육의 수준이 높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이는 창업 시장에서의 분명한 경쟁력으로 꼽힌다.

자타공인 ‘스타트업 1번지’로 꼽히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실리콘밸리 인근에는 스탠포드대, UC 버클리, UC 샌프란시스코 등 세계 최고의 대학들이 입지해 있고 이 대학들은 해마다 우수한 인재를 끊임없이 배출한다. 이들 상당수는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을 하거나 지역 스타트업에 입사한다. 해당 대학들은 전 세계 인재들을 경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양질을 교육을 통해 실리콘밸리가 원하는 인재로 키워내는 선순환 구조가 안착돼 있다.

자연히 고급 인력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하고, 이를 발판으로 첨단지식산업이 발달할 수 있다. 모든 혁신 기술과 아이디어는 이들에게서 나온다.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인구 중 미국 내 타 지역에서 유입된 경우의 72%, 외국에서 유입된 경우의 약 57%가 대졸 이상의 학력을 소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는 성인 전체로 확대해도 대졸 이상의 학력 소지자 비율은 46%로 캘리포니아(31%), 미국 전체(29%)에 비해 월등히 높다.

 

매년 배출되는 대학생들은 실리콘밸리 인적자원의 근간이다.
매년 배출되는 대학생들은 실리콘밸리 인적자원의 근간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중관춘(中关村) 역시 다르지 않다. ‘중국의 MIT’로 불리는 중국 최고의 공대 칭화대와 베이징대, 인민대 등 유수의 명문대를 포함, 68개 대학·대학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배출되는 졸업생들만 연간 수십만 명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가 창업에 뛰어든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과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 도처에 널려있다. 제품·서비스 출시 단계 직전 시제품 제작도 값싼 비용으로 가능하다. 창업에 수차례 실패하더라도 얼마든지 재도전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다.

이 같은 토대 위에서 이들은 이성적인 사고와 담대한 창의력, 그리고 두려움 없는 용기와 결단력을 갖추며 성장한다. 이들이 쌓아올린 성공 위에 새로운 인력들이 끊임없이 유입되면서 중관춘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타트업 중심지로 올라설 수 있었다.

 

|돈 심은 곳에 돈 난다
혁신 역량을 가진 인력과 넘쳐나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결국 이를 뒷받침하는 건 자본이다. 하지만 자본의 규모가 무조건 크다고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실리콘밸리와 중관춘을 만든 건 시기와 방식에 따른 적절하고도 충분한 자본 투입이다.

2018년 기준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이뤄진 벤처캐피탈(VC) 투자는 190억 달러에 달했다. 같은 권역인 샌프란시스코까지 확대하면 500억 달러를 뛰어넘는다. 이는 미국 전역에서 이뤄진 투자 규모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 해에 실리콘밸리에서는 1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의미하는 ‘메가딜’이 44건 기록돼 2017년의 23건을 뛰어넘었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37건의 메가딜이 이뤄졌다.

이 많은 자금 투입이 효과적인 이유는 창업 초기부터 주식시장 상장까지 단계별로 투자자본이 풍부하게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투자를 발판으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또한 새롭게 각광받는 신산업이 뜨면 자본이 이를 뒤따르며 지원하는 경향도 뚜렷하다.

 

베이징 중관춘은 엄청난 자본력에 힘입어 성장했다.
베이징 중관춘은 엄청난 자본력에 힘입어 성장했다.

실리콘밸리와 달리 중관춘은 정부 주도로 더욱 적극적인 자본 투입이 이뤄지고 있다. 공산당 1당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은 서구 국가들에 비해 정책적 의사 결정이 훨씬 빠르다. 정부의 진두지휘 아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이를 바탕으로 대기업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은 다시금 투자를 위해 곳간을 여는 선순환이 안착됐다.

중관춘의 청년 창업가들에게 정부가 직접 무상으로 창업 자금을 지원하거나 인근에 소재한 다양한 창업자금지원센터를 통해 민간 투자자를 연결시켜 주는 프로그램도 활성화돼 있다. 투자와 육성뿐만 아니라 기술력을 가진 이들을 선정해 아파트를 지원하고 육아를 위한 유치원까지 제공한다. 여기에 등록 자본금 최소 요건을 폐지하고 출자 방식도 자율화함으로써 단돈 1위안만 있어도 창업을 하고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영국 런던의 ‘테크시티’도 좋은 예다. 영국 정부는 런던 외곽에 부지를 마련해 창업 지대를 조성하고 최대 2만5000파운드의 자금을 연 6%의 고정 이자율로 지원했다. 1000만 파운드(약 145억원)의 이익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세금을 10%로 제한했고, 일반 법인세율보다 대폭 낮은 세율을 적용해 창업 의욕을 불어넣었다. 동시에 런던 공동 투자 펀드를 통해 런던의 유망 스타트업을 선발해 기초 투자금을 지원했다. 이를 발판으로 테크시티는 오늘날 세계 모든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선망하는 공간이 됐다.

 

|스타트업 밸리 꿈꾸는 서울의 숙제
최근 서울에는 스타트업을 위한 공간이 계속해서 확충되고 있다. 최근 개관한 ‘서울창업허브 성수’를 비롯해 세계 최대 규모의 인큐베이팅 센터 ‘프론트원’, 제조업과 문화콘텐츠 생산에 특화된 ‘을지유니크팩토리’, 여성 창업가들을 위한 ‘스페이스 살림’, AI(인공지능)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빅데이터 캠퍼스’ 등이 올 하반기에 문을 연다. 이들은 한강을 가운데 두고 서울 곳곳에 포진해 창업 열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 예정이다.

그러나 서울이 스타트업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조건이 요구된다. 미국 스타트업 리서치 업체 스타트업 지놈(Startup Genome)이 올 초 발표한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에 따르면 서울은 상위 30위 안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러한 평가는 성과·자금·시장조사·네트워크·인재·경험·지식 등 7가지 기준에 따른 것으로, 정부 주도의 막대한 예산 투입과 정책적 지원에도 아직은 서울이 스타트업 도시로서의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분석되는 대목이다.

 

서울 강남구에 조성된 창업가거리.(사진: starstruck2049/shutterstock)
서울 강남구에 조성된 창업가거리.(사진: starstruck2049/shutterstock)

서울이 실리콘밸리나 중관춘과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는 많은 변화가 필요하지만, 가장 첫손에 꼽히는 것은 주거 및 업무 환경의 개선이다. 서울의 높은 집값과 임대료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 이런 환경에서는 인재들이 모여들기도 스타트업이 성장하기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서울 성수동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스타트업 대표는 “매출이 오르는 만큼 임대료가 따라 오르기 때문에 고민이 적지 않다”면서도 “인프라와 네트워크가 서울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쉽게 떠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서울시 차원에서 창업가를 위해 공간을 마련하고 바우처를 지급하는 등 주거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치솟는 수요를 감당하기에 공급은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같은 공간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해외의 인적 자원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지 않은 데다 출산율도 매년 떨어지고 있다. 창업 열기가 아무리 뜨거워도 이를 수행할 이들의 절대적인 수가 부족한 것이다.

JF고디어 스타트업지놈 대표는 지난해 한국을 찾은 자리에서 “특정 지역이 성공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나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형성이 필요하다”며 “지속적으로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망이 형성돼야 세계에서 인재들이 몰려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국내의 한 엑셀러레이터 관계자도 “서울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타트업 허브로 도약하려면 전 세계의 우수 인재를 흡수해 글로벌 다양성을 확충해야 한다”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환경 구축에 꾸준히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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