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학생 염색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다문화 학생 염색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다문화 학생 염색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2014.05.26 13:54 by 권보람
사회적기업 몽땅, 문화 활동으로 인식 개선  

“염색해 오세요”

얼마 전 중학생이 된 세영(가명)양에게 뜻밖의 미션이 주어졌다. 교칙은 염색을 금지하고 있지만, 세영 양은 중학교에 다니는 3년 내내 머리가 자랄 때마다 계속해서 염색을 해야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세영 양의 머리카락은 선천적으로 밝은 갈색이다. 학교는 짙은 갈색으로 염색한 다른 아이들에게는 검은 염색을 강요하지 않았다.

세계시민사회를 말하는 시대에 이 같은 지도가 과연 정당한 교육일까. 지난 21일 다국적 노래단 몽땅의 회의실에서 만난 한진 사업팀장은 “얼마 전 몽땅 단원의 딸이 실제로 겪은 이야기”라며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자식을 가진 어머니로서 속이 터진다”고 가슴을 쳤다.

"현장에서 만난 다문화는 우리의 편견과는 달라요. 삶에 대한 애착과 튼튼한 생활력으로 전혀 다른 문화에 뿌리를 내리는 분들이죠." 한진 사업팀장은 4년째 몽땅과 함께하며 공연사업, 교육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조철희 기자 cherhy@


 

“만약 금발의 백인 혼혈 학생이 있었다면 그 아이에게도 염색을 강요했을까’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용모에 대한 교칙을 준수하려는 선생님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만, 아이의 불편과 상처는 누가 보상할 수 있을까요. 몽땅의 활동은 이 같은 인식의 간극을 좁혀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우리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지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중간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죠.”

몽땅은 사회적 기업 노리단과 사단법인 씨즈가 손잡은 다국적 노래단으로 2011년 인천공항공사에서 주최한 ‘다문화 합창단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에 당선되며 첫 걸음을 시작했다. 같은 해 4월 구성된 다문화합창단 추진단은 가장 먼저 이주노동자센터, 종교기관, 국가별 커뮤니티 등 문화다양성 전문가와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다.

'다르지만 같은 노래'를 캐치프레이즈로 활동하는 몽땅은 9개 국가(한국, 모로코, 몽골, 미국, 미얀마, 인도네시아, 중국, 티벳, 필리핀)에서 온 이주민과 선주민으로 구성돼있다. /사진=몽땅 제공


 

이들은 몽땅에 수익구조 형성을 제 1과제로 제시했다. 아무리 좋은 취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몽땅이 사회적 ‘기업’으로서 자생하려면 구성원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수익사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몽땅은 공연 수준에 맞는 합리적인 개런티를 제시했다. “좋은 일 한다면서요?”라는 말로 자선공연을 요구하거나 식사제공 등으로 공연료를 대신하려는 이들도 있었지만 몽땅은 전문적인 직업 예술인들이 소속된 기업으로서 이들의 인식을 바꿔갔다. 후원사인 인천공항공사와도 신입 직원 강의, 정식 공연 계약 등을 통해 사업적 동반자로서 관계를 구축했다.

회사 유지를 위한 행정 작업도 이어졌다. 이주노동자, 유학생 단원들의 비자를 모두 연예흥행비자(E6)로 교체해 준 것이다.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이는 단원들이 직업 예술인으로서 몽땅의 일원으로 편입되는데 가장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다. 단원 비자 재발급을 포함해 몽땅이 완전한 사회적 기업으로서 모습을 갖추는 데는 꼬박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다국적 노래단이라는 이유로 한국인 단원들이 소외되거나 역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뒤따랐다. 몽땅의 해답은 ‘사람’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추진단은 8개 나라에서 출신의 이주민 단원들을 비롯해 사무를 담당하는 한국인 직원까지 모든 구성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현재 몽땅의 사업팀은 1년에 한 번, 일주일에 걸친 포럼을 개최해 단원들과 모든 경영 시스템을 공유하고 있다. ‘목적을 위해 사람을 소모하지 않는다’는 원칙아래 구성원 모두가 주인이 되는 회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 3년간 몽땅은 부지런히 달렸다. SBS ‘스타킹’, EBS ‘집중기획’ 등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고 환경·평화·연대의 의미를 담은 자작곡을 만들어 공연 사업에 뛰어들었다. ‘찾아가는 독서스쿨’, 청소년 음악 창작 워크숍 ‘소리배낭 여행’ 등 교육 사업을 통해 다음 세대 아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다문화 축제를 비롯한 각종 국제 행사에서는 문화 다양성 존중에 대한 필요성을 노래와 감동으로 전했다.

이들의 자주적 활동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다문화로 분류되던 이들을 지나치게 시혜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한 팀장은 “전혀 다른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들의 생활력과 삶에 대한 의지는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면서 “필요한 것은 다르지 않은 시선뿐”이라고 말했다.

 

◇우리들의 재현이를 위하여

몽땅에서 ‘이화’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중인 김명화(34)씨는 중국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2005년 한국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노래를 잘해 학교 가창대회가 열리면 어김없이 대표로 뽑힐 만큼 활발한 대외활동을 해온 그였지만 한국 생활은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이주 후 첫 4년 동안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회사 일과 육아가 전부였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남편과의 나이차이, 가정생활 등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느껴야 했던 편견어린 시선은 그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몽땅'을 통해 자신감 있는 어머니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김명화씨/사진=조철희 기자 cherhy@


 

초등학생인 아들 재현 군의 선생님과 면담을 위해 학교를 찾았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왜 다문화 가정이라고 말하지 않았냐’면서 미리 알았다면 좀 더 신경 썼을 거라고 이야기 하시더군요. 하지만 재현이는 한국말도 서툴지 않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특별대우를 받을 이유도 없어요. 선생님이 이해가 가는 한편,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더군요. 제가 겪었던 편견들이 없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명화씨의 자녀가 학교에 미리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알려야 할 만큼 특별한 존재일까. 우리 사회는 지금부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한 팀장은 “일반적으로 우리보다 강대국이라고 여겨지는 영미권 국가의 이주민에게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진정한 다문화 사회란 단어 하나에도 무의식의 편견이 깃들어 있음을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함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다문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문화 다양성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한다. 안전행정부가 발표한 결혼이민자 및 인지·귀화자는 28만여 명에 이르지만 실제 이들과 접촉하며 더불어 사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다문화 가정으로 분류되는 이주민들은 공존과 상생을 위해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경험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더 많은 부대낌이 필요한 지금, 몽땅은 사람의 몸과 소리로서 그 일을 하고 있다. 가장 원초적인 매체로 전하는 진심과 감동은 작지만 분명한 울림을 낳고 있다.

59_64_344


“지난해 공연했던 강화를 다시 찾게 됐는데 어르신들께서 저희를 기억하시더라고요. 노래 잘 들었다, 언제 또 오느냐며 땅콩 한 줌, 반찬 하나 더 챙겨주실 때 어찌나 감사하고 기쁘던지요. 젊은 세대보다 저희를 받아들이기 더 어려우실 텐데도 경계심을 풀고 외부인이 아닌 자식처럼 대해주시는 모습에서 노래하는 보람을 느꼈습니다.”

명화씨의 이 같은 활약은 아들 재현 군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재현 군은 동네 어르신을 뵐 때도, 택시를 탈 때도 “우리 엄마는 중국에서 왔는데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가수”라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쉬는 날이면 엄마의 일터에서 세계 각국의 예술가 누나, 형들을 만나 그들의 문화를 배운다.

명화씨의 노래가 하는 일은 간단하다. 재현 군이 명화씨와 몽땅 단원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다른 문화와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배웠듯, 아이들이 노래를 통한 자연스러운 접촉으로 다른 문화권을 가진 사람들을 편견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사회의 초석을 닦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몽땅의 단원으로 활동하며 힘든 순간도 많았어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서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었죠. 하지만 몽땅과 뜻을 같이하기에 모든 단원 들이 함께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몽땅이 저를 필요로 하는 한 이 안에서 계속 노래하고 싶어요.”

김명화(사진 왼쪽에서 7번째)씨와 노래단 몽땅의 다국적 단원들/사진=몽땅 제공


 

◇사회적 기업 몽땅, 자립 원년을 맞다

인천공항공사와의 후원협약이 마무리된 올해는 몽땅의 자립 원년이 된다. 이 순간을 위해 뼈를 깎아온 몽땅은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우선 단원들의 자작곡이 담긴 첫 실물 음반을 제작한다. 비매품으로 제작되지만, 몽땅의 작품과 활동을 보다 체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추후에는 온라인 음원 유포 등을 보다 많은 사람이 몽땅의 노래를 접할 수 있는 창구도 마련할 예정이다.

인천문화재단과 함께 ‘이야기 더하기’를 전개하며 아이들과의 교감 창구도 넓힌다. ‘이야기 더하기’는 인천지역 도서관과 아동센터, 학교 등 15개 기관을 대상으로 티벳의 구전 설화와 미국의 신화, 몽골의 전래동화와 노래를 소개함으로써 문화적 차이의 이해를 돕는 토크콘서트다. 이 밖에도 1박 2일 다문화 가정 캠프 등 다양한 교육 사업이 진행 중이다.

노래를 통해 접촉을 넓히고자 하는 몽땅의 움직임은 실제로 우리 사회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여성가족부가 2012년 발표한 '청소년 다문화 수용성 조사'에 따르면 일주일 2회 이상 대중매체 등을 통해 다문화를 접한 청소년(62.29점/100점 만점)의 다문화 수용성은 그렇지 않은 이들(59.77점)에 비해 2.52점p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 간 다문화 활동 참여 경험이 있는 경우(62.26점)도 그렇지 않은 경우(59.97점)보다 높은 수용성을 나타냈다. 문화, 공연예술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활동이 우리의 2세대에게 필요한 이유다.

59_63_344


“몽땅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를 위해 씨를 뿌리는 중입니다. 이 씨앗이 어떤 땅에서 어떻게 자랄지는 모르지만 우리 아이들이 더불어 살아갈 세상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목표로 뛰는 중입니다. 먼 훗날 고국으로 돌아간 우리 단원들이 몽땅처럼 세상을 노래하는 회사를 각 나라에 창업한다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요?”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자본과 인력, 인지도 부족으로 애를 먹는 스타트업에게 기업공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단숨에 대규모 자본과 주목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파트너와 고객은 물론, 내부 이...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현시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타트업 30개 사는 어디일까?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