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대는 창업교육…교육도 혁신은 필요하니까
국내 스타트업 창업교육 긴급진단
삐걱대는 창업교육…교육도 혁신은 필요하니까
2021.10.12 18:04 by 최태욱

“결국은 사람이죠.” 

스타트업씬에선 늘 ‘옥석가리기’가 이뤄진다. 싹수가 보이는 팀을 고르고 골라 육성하고, 투자하며 아예 인수하기도 한다. 그런 일을 업으로 삼는 액셀러레이터나 벤처캐피탈에게 ‘기준’을 물으면 백이면 백 비슷한 이야길 한다. “사람을 본다”는 것이다. 사업 아이템은 얼마든지 꺾일 수 있지만, 전문성과 진정성, 여기에 열정까지 갖춘 인재는 몇 번을 꺾이든 언젠가는 빛을 낸다는 게 그들의 경험적 확신이다. 

가장 중요한 게 사람이니 만큼, 인재를 키우는 교육의 비중과 중요도가 상당하다. 5년 새 3배나 늘어난 창업지원 예산(1조5179억원) 중 절반 이상은 창업교육 관련 예산이며, 전국 주요 15개 대학의 창업 강좌 수는 평균 100개에 달한다. 민‧관‧학,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창업관련 교육이 넘쳐나니, 적어도 ‘못 배워서’ 창업 못했다는 소리는 듣기 힘든 시대다. 

문제는 그 실효성이다. 창업교육은 흔히 생각하는 ‘학습’의 영역과 결이 다소 다르다. 새로운 기회나 가치의 발견, 협동과 협업의 마인드, 어려움을 극복하는 태도 등을 통해 자신만의 비전을 펼치는 창업활동의 속성은 지식‧정보‧기술을 넘어 비즈니스 이상의 가르침을 요구한다. 소위 ‘기업가정신’의 함양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창업교육과 관련해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더퍼스트미디어>에서 우리나라 창업교육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창업교육은 창업의 첫 관문이자 첫 단추다.
창업교육은 창업의 첫 관문이자 첫 단추다.

| 창업교육 봇물…교육효과는 고인물?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눈부신 성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오명도 옛말, 이제는 명실상부 세계가 주목하는 시장으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이 투자 유치한 금액은 총 4조3045억원으로 5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거듭된 검증은 투자와 지원을 부채질한다. 자연스레 첫 관문이자 첫 단추인 창업교육에 대한 열기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웬만한 정부 부처나 지자체에서는 여지없이 자체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신사업창업사관학교‧실전창업교육(중소벤처기업부), 학생창업유망팀300(교육부), 공공기술기반시장연계창업탐색지원(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서울창업카페(서울시), 창의인재육성특성화사업(대전시)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 현대, CJ, 롯데 등 대기업이 ‘스타트업 사관학교’를 표방하기 시작한 것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대학들은 아예 존재의 이유마저 바꾸려는 모양새다. 대학교육의 실질적인 목표가 취업에서 창업으로 옮겨가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경향이 아닌 세계적인 흐름이다. 

민‧관‧학의 자원을 쏙쏙 빨아들이고 있지만 파급력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한 전문가는 “창업교육 시장은 양적 성장의 속도를 질적 성장이 따라잡지 못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라며 “내실을 다지고 결실을 만들기 위해 깊은 고민과 세부적인 연구가 절실하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창업자는 물론이고 교육자, 심지어 운영기관조차 우리나라 창업교육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지난해 ‘글로벌 기업가정신 연구협회’가 발표한 ‘2020 글로벌 기업가정신 모니터’의 결과는 현장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창업교육 부문 순위는 전체 44개국 중 뒤에서 세 번째였다. 시장의 역동성과 정부의 지원정책 부문이 각각 1, 2위에 올랐다는 희소식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유다. 

 

국내 창업교육의 실효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내 창업교육의 실효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창업, 사실 그게 뭐 배운다고 잘 되겠습니까?”

모 대학에서 3년째 창업역량강화 수업을 맡고 있는 A교수는 이론과 스킬셋 중심의 창업교육에 점점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그가 자신의 창업경험을 토대로 한 멘토링에 무게중심을 더해 가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다. 초창기 실리콘밸리 혁신을 견인한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의 철학도 이와 비슷하다. 그들은 스타트업들을 교육의 대상으로만 치부하지 않는다. 자신의 네트워크와 자원만 공유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독려한다. 

위의 사례는 창업교육이 가진 독특한 특성을 잘 보여준다. 학습의 영역을 넘어 태도와 마인드를 변화시키는 동력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면에서 그렇다. 이에 대해 <창업 교육이 창업 기회 탐색 및 창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종오, 2020)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창업교육은 창업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 외에, 성공한 창업가와 같은 역할적 모델을 제시해 심적 안정감을 더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부정적 인식이나 불안한 마음, 불확실성 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도구이며, 비즈니스 기회 창출의 도구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창업교육은 창업을 위해 기업가가 직면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훈련이다.” 

결국 창업교육의 참 의미는 창업에 대한 ‘부효과’는 최소화하고 ‘정효과’는 극대화하여 창업자의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귀결된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요구되는 이유이자, 현장의 창업가와 기존 창업교육 사이에 엇박자가 발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창업교육은 기업가가 직면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훈련이 수반되어야 한다.
창업교육은 기업가가 직면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훈련이 수반되어야 한다.

 

| 시대착오‧함량미달‧구색 맞추기…창업가 외면 받는 창업교육
그렇다면 현재 국내의 창업교육이 가지고 있는 허점들은 무엇일까. 창업교육을 1회 이상 받은 창업자들의 의견을 청취하여 종합한 결과, 크게 교육 콘텐츠와 강사진의 문제로 모아졌다. 

콘텐츠의 측면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획일적이며 단편적인 범위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의 창업지원 정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원도 다양하고 돈도 많이 쓴다. 그러다보니 초기 창업의 교육 콘텐츠가 정부 정책의 수혜를 받기 위한 쪽으로 지나치게 쏠려 있다. 자신의 비즈니스 가치보다 정부의 각종 지원사업의 틀을 먼저 생각하는 ‘족집게 식 교육’이 성행하다보니, 시장의 요구에 집중해야 할 창업자들이 지원사업 심사위원의 요구에 더 집중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한다. 

창업 3년차인 김유민(가명)씨는 “조직운영과 관련된 기본적인 소양을 제대로 갖추기도 전에 사업계획서 작성법부터 먼저 배우게 되더라”면서 “이후 몇 군데 지원 프로그램을 거쳤지만 똑같은 형태의 교육이 지루하게 반복될 뿐, 진득하게 기업가정신을 심어주는 교육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스타트업 두 곳을 직접 론칭한 경험이 있는 7년차 창업자 이성민(가명)씨는 “스타트업은 생애주기나 업 특성, 시장 트렌드 등에 따라 필요한 교육과 지원이 천차만별인데, 특정 단계의 빈틈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 실정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내용과 영양가 없는 교육을 몇 번 경험하다보니 교육에 대한 기대치가 점점 줄어들게 되더라”고 덧붙였다. 

 

많은 창업가들은 국내 창업교육이 다소 획일적이며 단편적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창업가들은 국내 창업교육이 다소 획일적이며 단편적이라고 지적했다.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좋은 학습의 선결과제다. 하지만 많은 창업교육 경험자들은 이 부분에서도 아쉬움을 드러낸다. 플랫폼 서비스를 운영하는 창업 5년차의 구민호(가명)씨는 “시시각각 변하는 최신 기술 트렌드가 업의 핵심이지만, 일부 멘토들은 마치 2~3년 전에 시계가 멈춰버린 것 같았다”면서 “기존에 관계 맺었던 적당한 인사가 구색 맞추기 식으로 참여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귀띔했다. 

모든 피교육자가 가장 원하는 교육자는 현업에서 유의미한 성취를 경험한 선배 창업자 혹은 실무 전문가다. 이러한 기대는 창업경험이 전무한 전업 멘토를 만나면서 눈독 듯 사라진다. 이성민 씨는 “창업 관련 경험이 전혀 없는 경우나 약력만으론 어떤 부분에 특화된 전문가인지 감을 잡기 어려운 멘토들을 많이 만났다”면서 “설령 ‘핏’이 맞는 멘토를 만났다고 해도 시간적 제약 탓에 관계와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끌탕했다. 

지금의 창업교육은 우리네 교육이 안고 있던 고질적이며 전통적인 문제와 여러 부분 닮아있다. 주입식 교육 일변도인 것도 그렇고, 족집게 식 교육이 성행한다는 것도 그렇다. 지원사업의 혜택을 쟁취하기 위한 교육이란 측면에서,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도 떠올리게 한다. 속도와 효율 면에선 탁월함을 보이는 방식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창의성의 말살이다. 가장 창의적이어야 하는 스타트업 분야의 인재를 키우는 교육이 창의력을 저해하는 방식을 차용하는 아이러니다. 창업교육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기 위한 진지한 논의가 하루빨리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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