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뜀박질도 데이터를 만나면 인기스포츠가 된다
김태완 피지알디(PGRD) 대표 인터뷰
지루한 뜀박질도 데이터를 만나면 인기스포츠가 된다
2021.10.19 11:56 by 이창희

달리기는 장비와 장소의 구애가 없는 편리한 운동이지만 지루함이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함께 달리는 이들이 있고 각종 데이터가 반영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 같이 즐기는 ‘크루’ 문화와 기록을 통한 경쟁 및 목표 달성 등의 요소는 달리기를 박진감 있고 흥미로운 스포츠로 만든다. 2016년 서울마라톤에서 30%에 불과했던 2030 참가자 수가 올해 64%로 2배 이상 증가한 것은 ‘스마트한 달리기’에 MZ세대가 열광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주목한 스타트업이 있다. 러너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문가들의 실시간 코칭까지 접목해 즐거움과 운동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은 ‘피지알디(PGRD)’다. 운동은 땀과 고통으로만 해야 한다는 인식은 스마트 시대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철학이다.

 

김태완(사진) 피지알디 대표.
김태완(사진) 피지알디 대표.

|반골 기질의 엘리트가 주목한 스포츠산업의 미래
김태완(26) 피지알디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다소 삐딱한 구석이 있었다. 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까지 지냈음에도 남들이 가는 뻔한 길은 그에게 별 매력이 없었다. 동기들은 명문대 인문사회계열로 진학해 각종 ‘고시’를 준비하거나 로스쿨에 입학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디지털 시대의 생동감 넘치는 미래에 주목했고, 추상적이나마 스포츠 분야에서의 데이터 활용이라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2015년 김 대표는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진학했다. 교원이 목표였던 것이 아니라 스포츠 전반에 대한 대학의 연구 수준과 자신이 공부할 수 있는 부분을 기준으로 판단한 진로였다. 김태완 대표는 “인문계에서 이공계열 공부를 따로 했을 정도로 고된 과정을 거치면서 이뤄냈던 결과”라며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성인의 문턱에서 큰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그가 그렸던 청사진은 주효했다. 대학교 1·2학년 동안 수강한 과목들을 통해 스포츠 분야에 데이터가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나아가 앞으로 기술이 발전할수록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고 이에 대응해 스포츠 분야가 고도화될 것이란 확신도 얻었다.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2019년 초 전역한 김 대표는 뜻이 맞는 동기들과 학회를 결성했다. 이론 공부와 별개로 실제 스포츠산업 분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했고, 기업들의 현장 프로젝트에 직접 참가해 살펴보는 방법을 구상했다.

 

학회 동지들과 함께했던 2019년.
학회 동지들과 함께했던 2019년.

복수의 기업을 대상으로 타진한 결과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광고대행사인 ‘이노션’과 첫 협업의 기회를 잡았다. 이노션 스포츠사업부에 보조연구원 자격으로 들어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주관하는 유소년 육성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연구했다. 이어 동계스포츠 패션브랜드로 유명한 ‘스파이더’와 온라인에서 커머스 UX를 개선하는 방법에 관한 연구, K리그와는 리그 붐업을 위한 온라인 뉴미디어 이용에 대한 연구, ‘스포츠투아이’와는 독점 데이터 활용 연구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소화했다.

“이 기간 동안 배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필요한 자료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터득하게 된 갖가지 스킬, 정보의 중요성을 판별하는 방법, 해외와 국내의 다양한 사례와 차이점까지 그야말로 살아있는 공부를 한 셈이죠. 자연스럽게 그 속에서 국내 스포츠산업의 어떤 부분이 개선을 요하는지도 깨닫게 됐습니다.”

|시행착오를 넘어 잠재력 있는 플랫폼으로
쉬지 않고 달려온 1년간의 시간 동안 김 대표는 스스로 많이 성장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사이 쌓인 갈증 또한 없지 않았다. 한정된 범위에서 연구를 수행하다보니 그가 맡은 건 부분적인 역할을 벗어나지 못했다. 스포츠 분야에서 전체적인 사업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그 시작과 끝이 못내 궁금했다.

고민 끝에 김 대표는 직접 창업에 뛰어들어보기로 결심했다. 그가 평소 스포츠산업에서 풀어야 할 문제로 생각했던 것이 바로 대다수 선수들의 은퇴 후 삶이 불안정하다는 점이었다. 운동에 관한 노하우는 뛰어나지만 이를 활용해 스스로 수익을 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사용자가 앱을 통해 자신의 운동 영상을 업로드하면 국가대표 출신 선수가 댓글로 코칭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계획했다. 첫 종목은 수영으로 선택했다. 수영이 초중고 의무교육으로 지정되면서 수요는 충분했고 은퇴선수 풀(pool) 구축을 통한 공급도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아이템은 창업경진대회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생각지도 못한 벽에 맞닥뜨린 것. 현장을 깊이 연구하지 않고 머리만 앞선 탓이었다.

“코칭을 받기 위해서는 영상을 업로드해야 하는데, 자신의 몸을 촬영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용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영장에서 생각 없이 촬영하다가 법적인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죠.”

김 대표는 곧바로 종목을 바꿔 다시 도전했다. 누구든 참여가 쉬우면서 데이터 측정과 코칭이 어렵지 않은 종목. 바로 달리기였다. 그는 먼저 온라인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하나 둘 모았다. 각자 사용하는 달리기 앱을 이용해 소요시간과 거리가 담긴 결과물을 캡처해서 업로드하면, 김 대표는 밤마다 이를 엑셀 표로 정리했다. 기록상 상위 10%에게는 기념 티셔츠를 보내줬다.

그렇게 첫 달 30명에 불과했던 사용자 수는 다음 달 80명, 그 다음 달에는 150명을 넘어섰다.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모여들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김 대표는 이곳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전용 앱 개발의 필요성을 느꼈고, 고도화를 거쳐 그해 9월에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됐다. 그리고 스포츠산업 특화 창업지원을 통해 올해 3월 ‘프로그라운드’라는 이름으로 앱을 런칭했다.

 

프로그라운드 앱.
프로그라운드 앱.

|데이터를 밑천 삼은 끝없는 도전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시중에 나와 있던 러닝앱들과 비교해 차별화된 무기가 필요했다. 이때 착안한 것이 바로 음성을 통한 전문가 코칭이었다.

물론 오디오 코칭 기능을 가진 앱은 이미 존재했다. 한빛소프트의 ‘런데이’라는 앱으로, 전문 성우가 커리큘럼별로 녹음해둔 러닝 클래스를 제공한다. 사용자들은 이를 매일매일 들으며 달리기를 한다. 안내에 따라 달리기만 하면 되는 셈이라 국내 인기 러닝앱 지위를 굳건히 하고 있다.

“개선과 보완이 필요한 점을 찾아내 파고 들어야 했어요. 다른 앱들은 음원파일이 통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남녀노소·컨디션·환경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 전문성에 기반한 맞춤형 코칭이 부재하다는 점이 저희의 공략지점이었습니다.”

김 대표는 추가적인 앱 개발을 통해 앱내 GPS와 가속도 센서, 현재 페이스, 1분당 걸음 수, 최근 7일간의 운동 기록을 종합해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코칭 및 동기부여 메시지를 음성 형태로 송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육상 국가대표 출신이자 서울마라톤 언택트 레이스 훈련 프로그램을 설계한 장호준 코치를 전격 영입해 코칭 녹음을 만들었다. 러너가 처한 경우의 수 별로 다양한 녹음을 마련해 뒀다가 러너의 상황을 알고리즘이 파악해 제공해주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1km를 6분에 뛰는 미션을 부여한 뒤 성공하면 축하 메시지를, 실패하면 격려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어 조정된 단계의 미션을 다시금 부여한다.

 

프로그라운드 앱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러너들의 후기.
프로그라운드 앱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러너들의 후기.

그는 더 나아가 실시간 코칭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코치가 스튜디오에 머물며 앱을 통해 전달되는 러너의 기록을 확인한 뒤 그에 맞는 코칭을 제공하고, 러너들은 채팅으로 코치와 소통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실시간을 통해 보다 정밀한 코칭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것이 누군가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분위기’에요. ‘XX런’ 같은 단체 달리기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은 이유도 그래서죠.”

김 대표는 향후 프로그라운드 앱을 통해 플랫폼 활성화 단계에 진입하면 커머스와의 연계도 꾀할 생각이다. 이미 러닝 시장에 진입할 계획을 갖고 있는 국내 굴지의 스포츠브랜드 기업과 공동 프로젝트의 협업을 구상 중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자체 앱 개발 대신 피지알디의 고객과 시장 데이터를 이용해 제품 개발이 가능하고, 피지알디는 제품을 협찬 받아 러너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이제 막 첫 구상이 실현되고 있을 뿐이지만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흥분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달리기에서 성공을 거두면 다른 종목을 즐기는 이들에게도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얻게 될 데이터를 활용해 무궁무진한 시도가 가능할 것이란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뜁니다.”

 

/사진: 피지알디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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