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가에서 혁신가로…어느 교수님의 ‘자전차왕’ 도전기
김철기 레이시오유한책임회사 대표 인터뷰
애호가에서 혁신가로…어느 교수님의 ‘자전차왕’ 도전기
2021.10.26 16:13 by 최태욱

지지부진하게 구르던 두 바퀴가 급격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지난 5년 간 고전을 거듭하던 자전거 시장 얘기다.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고, 친환경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이뤄낸 반전. 여기에 공유자전거나 전동킥보드 같은 ‘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 시장까지 급부상하면서 자전거 시장 전반에 활력이 넘친다. 이미 13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확보한 자전거 시장이 새로운 성장 동력까지 거머쥔 셈이다. 

기분 좋은 변화의 주역은 전기자전거다. 지난 2018년 ‘전기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개정’을 계기로 매년 30%이상 성장하며 전체 시장을 견인 중이다. “일반 자전거의 3배 속도로 성장하는 게 전기자전거 시장”이라는 분석도 있다. 업계 1위인 삼천리자전거가 올 한 해 새로이 선보인 전기자전거 모델만 십 여 종에 달할 정도다. 

자연스레 관련 시장도 들썩인다. 본격적으로 전기 시대를 열며, 노동에서 기술로 근간이 바뀐 만큼 기술 스타트업의 역할도 기대할만하다. 오늘 소개할 김철기(47) 레이시오유한책임회사(이하 레이시오) 대표 역시 그 역할을 부여받은 혁신가 중 하나다. 그저 자전거를 즐기던 공대 교수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플랫폼 스타트업의 대표로 변모한 그의 이야기 속에는 자전거의 오늘과 내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김철기(사진) 레이시오유한책임회사 대표
김철기(사진) 레이시오유한책임회사 대표

| 자전거 마니아가 느낀 불편…“직접 해결해볼까?”

“소위 ‘자전거 컴퓨터’라는 기기가 있어요. 길도 알려주고 기록도 해주고 운동 효과도 분석해주는 건데, 자전거를 취미 이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많이들 쓰죠. 저도 사용해봤는데, 생각보다 불편하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김철기 대표에게 자전거는 ‘탈 것’ 이상의 존재다. 유학시절 외국의 비싼 교통비 탓에 자전거 두 바퀴에 의지한 채 5년을 살았고, 오래전부터 고생했던 당뇨병도 자전거를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최고의 취미이자 효율적인 이동수단, 좋은 운동기구였던 셈이다. 이런 역할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가끔씩 있는 해외 출장길에도 자전거를 들고 가서, 출장 용무를 마치면 곧장 자전거 여행에 나설 정도다. 그런 그가 가장 불편을 느꼈던 게 바로 자전거 컴퓨터의 완성도였다. 

“자전거로 외국의 낯선 길을 다니면 내비게이션 기능이 생명이잖아요. 그런데 생각만큼 잘 안되더라고요. 휴대폰과의 연동 기능도 떨어지고, 배터리 지속력도 조금 부족하다 싶었어요. 그런 경험이 몇 번 누적되다보니 ‘차라리 직접 만들어볼까?’란 생각이 들게 된 거죠.”

 

김철기 대표는 자전거로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김철기 대표는 자전거로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그런 생각이 가능했던 이유는 스스로 기술과 전문성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전공했고 동 학문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데다, 10년 넘게 자전거를 끼고 살며 자연스레 전문가 수준의 자전거 지식도 득했다. 지금 김 대표가 애용하는 자전거 3대 중 한 대도 본인이 직접 만든 작품이다. 김철기 대표는 “교수의 연구라는 게 실생활에 적용되는 것보다 그렇지 못한 것이 더 많은데, 연구자로서 실험실 밖에서 더 도움이 되는 기술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고 했다. 지난 2017년 3월, 레이시오라는 이름의 스타트업이 돛을 올린 배경이다. 

시작은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저 취미의 연장선 정도로 여기며 평소 아쉬웠던 부분을 곱씹어 내어 제품에 담았다. 관심을 보이는 제자 몇 명도 김 대표의 도전에 동참했다. 1년 여 만에 프로토타입이 완성됐고, 다시 반년이 지나서 유저들을 만났다. 글로벌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킥스타터’가 그 무대였다. 

“기대 이상의 반응이었어요. 10분 만에 10만 유로(한화 약 1억3600만원)가 모였죠. 전혀 예상을 못했던 결과라 제품 배송하는 데만 10개월이 넘게 걸리기도 했어요.(웃음)”

당시 펀딩에 나섰던 제품은 현재 레이시오의 대표모델인 트림원(timmOne)이었다. 지도, 측정, 분석 등 기존 자전거 컴퓨터의 기능을 오롯이 계승하는 동시에, 평소 김 대표가 느꼈던 아쉬움들은 크게 개선된 제품이었다. 얇고 가벼운 데다 배터리 수명이 길고, 특히 내비게이션 기능이 월등하다. 자전거 주행의 특성을 감안해 복잡한 경로를 최대한 쉽고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에 초점을 맞춘 결과다.

 

트림원 서비스 화면
트림원 서비스 화면

라이더가 직접 느낀 불편함을 몸소 해소하려던 김 대표의 노력은 주효했다. 애호가들 사이에서 가성비 좋은 기기로 입소문이 나며 꾸준히 이름값이 높아지고 있다. 굳건한 시장점유율로 대명사화된 브랜드가 버젓이 존재하는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것을 감안하면 더욱 유의미한 성과다. 김철기 대표는 “자전거 마니아들 사이에선 꽤 이름이 알려진 것 같다”면서 “작년에 모 중고거래 플랫폼에 우리 제품이 사기매물이 올라왔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최근 일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마쿠아케’에서 진행한 두 번째 제품 ‘트림원 라이트’의 성공 역시 이 회사가 보유한 희망의 증거다. 

 

| 4년여 시행착오 경험으로 전기자전거 시장 정조준
레이시오의 최대 강점은 보유 특허만 5개에 이르는 기술력이다. 이 회사 제품의 태양광 충전 기능도 국내최초 기술이다. 김 대표는 “연구개발을 하거나 개발인력을 꾸리는 건 가장 쉬운 일에 속한다”고 귀띔했다. 반대로 그 외의 일들은 모두 낯설고 어렵다. 학자가 접한 사업의 세계는 그야말로 험난한 곳이었다. 

“인력관리부터 마케팅‧세일즈까지 모든 게 어렵죠. 해외 협력업체와 조율하는 부분도 쉽지 않았고요. 전부 다 생소하고 힘들지만, 그중 제일은 버티는 것인 것 같습니다.(웃음)”

스타트업으로서 가장 어려운 일은 역시 소비자를 찾고, 그들을 이해하는 일이다. 특히 기존 시장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는 게 만만치 않다. 자전거 컴퓨터를 사용하는 주 고객층은 자전거를 취미‧레저로 인식하는 부류다. 고급 스포츠용품을 구매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접근이다. 하지만 이 시장은 이미 기존 플레이어에 의해 체계가 굳건해진지 오래다. 김 대표는 “아무리 좋은 솔루션도 시장 선도기업이 제공했던 익숙함을 넘어서기 힘들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나도 자전거 마니아지만 레저보단 여행 분야에 가깝기 때문에, 속도를 즐기는 소비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철기 대표(맨 오른쪽)와 팀원들
김철기 대표(맨 오른쪽)와 팀원들

산적한 과제가 기회로 바뀌길 기대하는 순간이 바로 전기자전거 시대의 개막이다. 경량화나 충전효율, 그리고 지도의 강점을 가진 자사의 솔루션은 레저가 아닌 이동수단으로서 최적화된 전기자전거와 만날 때 시너지가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해외는 전기자전거가 열풍 수준으로 팔려나가는 추세”라며 “우리나라도 이런 시대적 흐름에 따르게 될 것이며 그때가 되면 전기자전거가 도심의 주요 이동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 레이시오가 회사의 방향성을 재조정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회사의 모든 역량을 전기자전거에 맞추면서, 고객 세그먼트 역시 마니아층의 고객에서 일반 사용자로 옮기고 있다. 이미 독일의 유로바이크(Eurobike) 전시회에서 해외 유수의 전기자전거 브랜드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으며 그 가능성을 검증하기도 했다. 지난 4년 동안 한 쪽에 치워두었던 투자 유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도 그래서다. 김 대표는 “하드웨어 분야에서 새로운 개발을 한다는 건 결국 자금 이슈와 맞물려 있다”면서 “전기자전거로의 본격적인 진출을 위해 투자가 반드시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해 투자유치를 위한 행보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낮에는 교수, 밤에는 사업가로 보낸 4년 여. 취미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던 스타트업 창업은 어느새 대계를 꿈꾸는 소명으로 바뀌어 있다. 이미 지칠 법도 한 시기지만 김 대표는 묵묵하게 내일을 준비한다. 보다 장기적인 목표를 묻는 질문에는 동고동락했던 팀원들을 향한 애정을 덤덤하게 드러낸다.  

“저랑 같이 시작했던 5명의 제자들이 아직도 그대로 있어요. 지금까지 너무 고생했죠. 정말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자전거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 우리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모두 그 친구들의 공입니다. 꼭 함께 뜻 깊은 성취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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