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둥지 튼 방송쟁이들…음악예능으로 성장 비트 높인다
정재형 334제작소주식회사 대표 인터뷰
디지털 둥지 튼 방송쟁이들…음악예능으로 성장 비트 높인다
2021.11.09 17:31 by 최태욱

텔레비전(이하 TV)이 보물단지였던 시절이 있었다. TV 한 대만 있으면 어디라도 마을사랑방이 되던 모습은 60년대의 흔한 풍경이다. 가정용 TV가 널리 보급된 이후엔 브라운관 속 콘텐츠가 우리를 사로잡았다. 시청률 70%에 달하는 국민드라마가 쉴 새 없이 등장했고, 월드컵 같은 이벤트가 온 국민을 TV앞으로 모여들게 했다. 세상 돌아가는 걸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정보의 통로이자, 국민 여가의 일등공신으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해왔던 게 바로 TV의 존재였다. 

하지만 이젠 모두 옛날얘기다. ICT기술의 발전과 스마트폰의 확대가 콘텐츠 산업의 디지털 기술 융합에 불을 지피며, 콘텐츠 소비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지난 2011년 3.3시간이었던 일평균 TV시청 시간은 지난해 2.9시간으로 감소했다. 이런 경향은 젊은 층일수록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1020세대의 경우, 1인 크리에이터 영상 평균 시청시간이 지상파 TV방송 평균 시청 시간을 압도할 정도다. 

지상파 방송국 프리랜서PD로 활동하던 정재형 ‘334제작소주식회사’(이하 334제작소) 대표의 눈에도 이런 변화는 명징했다. ‘세상이 바뀌었다’라고 실감했던 그 순간, 그는 변화의 중심부로 몸을 내던지는 것을 택했다. 지상파 PD와 작가들을 주축으로 설립된 콘텐츠 스타트업 334제작소가 탄생한 배경이다. 디지털 미디어의 속도와 자유분방함을 전통 미디어의 만듦새로 담아내려는 그들의 창작과 창업에 대한 비전을 들여다보자. 

 

334제작소의 공동창업자들 왼쪽부터 정재형 PD, 윤희나 작가, 김준수 PD
334제작소의 공동창업자들 왼쪽부터 정재형 PD, 윤희나 작가, 김준수 PD

| 유튜브에 수지 뜨는 순간,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무거운 것보단 가벼운 게 좋고, 진지하기 보단 유쾌해지고 싶은 스타일이에요. 그러다보니 예능하고 ‘핏’이 좀 맞나 봐요.(웃음)”

정재형 대표는 SBS의 예능 PD출신이다. ‘오! 마이 베이비’나 ‘불타는 청춘’ 같은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다. 정 대표는 “카메라에 담긴 현상에 연출자의 상상력을 가미해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게 관찰 예능의 매력이었다”며 “황혼 육아나 돌싱 이슈 등 동시대의 사회적인 세태에 접근한다는 점도 좋았다”고 했다. 

즐겁게 일하며 크고 작은 성취들을 이뤄왔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조심스레 의구심이 일고 있었다. 방송이라는 미디어에 대한 불안감과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한 호기심이 뒤섞인 결과다. 

“미디어 콘텐츠 시장의 변화가 아주 드라마틱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주변에 TV보는 친구들이 별로 없다는 것만 봐도 딱 알죠. 유튜브나 넷플릭스 없인 대화에 끼기도 힘든 시대잖아요. 연출자로서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게 당연했죠.”

이런 갈증에 정점을 찍어준 사건이 바로 가수 겸 배우 수지의 유튜브 출연이었다. 2017년 1월 시작된 ‘딩고뮤직’의 웹 예능 ‘오프더레코드, 수지’가 바로 그것. 대세 연예인이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를 들려주고 일상도 공개하는 모습은 현직 PD였던 정 대표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재형 대표는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디지털 미디어에 출연하는 것을 보며 ‘이제 진짜 시대가 바뀌었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수지의 유튜브 출연은 정재형 대표가 디지털 콘텐츠에 꽂힌 결정적 계기가 됐다.
수지의 유튜브 출연은 정재형 대표가 디지털 콘텐츠에 꽂힌 결정적 계기가 됐다.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위상을 몸소 확인한 그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경력직 PD를 찾는 디지털 콘텐츠 기업에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자신을 각성시켰던 수지 콘텐츠를 제작했던 모바일 미디어 딩고 스튜디오였다. 5년여의 방송국 생활은 그렇게 마감됐다.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디지털 콘텐츠 시장은 예상보다 훨씬 다이내믹했다. 경험을 하면 할수록 효율적이었고, 최근의 트렌드와도 ‘찰떡’이었다. 

“방송국에서 프로그램 하나 론칭하려면 보통 억대의 제작비가 들어가잖아요. 디지털에선 그 돈으로 수십 개를 제작해볼 수 있어요. 가벼운 환경에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고, 주기가 짧으니 시청자의 반응을 파악하고 대처하기도 용의했죠. 편성이나 심의도 자유롭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딩고에서의 생활은 길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콘텐츠의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빠른 퇴사로 이어진 것이다. 정재형 대표는 “시장의 속도와 유연함, 자유분방함을 직접 체험하고 나니 ‘직접 해봐야 겠다’는 의욕이 부쩍 커졌다”고 회상했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디지털 미디어로의 숨 가빴던 무대 전환은 그렇게 완성됐다. 

 

334제작소의 촬영 현장
334제작소의 촬영 현장

| 알음알음으로 시작한 콘텐츠 실험, 최종 행선지는 ‘음악예능’
큰 방향성은 정해졌지만 세부적인 맵은 백지에 가까웠다. 도합 10년 정도의 PD경력뿐인 정 대표에게 풍부한 인적‧물적 네트워크가 있을 리도 만무했다. 첫 액션은 탐구였다. 스타트업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탐구는 바로 사람에 대한 것. 디지털 쪽에 뜻이 있는 방송 전문가가 그 대상이었다. 그 결과 학교 후배이자 SBS에서 합을 맞췄던 김준수 PD와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기미작가’라는 별칭으로 활약했던 윤희나 작가가 공동창업자로 합류했다. 정 대표는 “더 늦기 전에 한번 도전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었다”고 귀띔했다. 

2019년 9월 ‘334제작소’란 이름의 스타트업이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 첫 발을 내딛었다. 정 대표는 “크리에이터 시장이 우후죽순 커지고 있지만 전문 작가나 PD 없이는 분명 한계에 다다르는 지점이 있다”면서 “크리에이터가 생각지 못한 영역의 확장을 꾀하면서 방송국 수준의 만듦새까지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초기 경쟁력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오래지 않아 첫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네이버의 계열사이자 전문 웹드라마 제작사였던 ‘플레이리스트’ 산하 ‘뮤플리’채널에서 국내 팬 대상의 음악 예능 콘텐츠를 기획했는데, 정재형 대표에게 그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가수 제이미(박지민)를 호스트로 토크쇼와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던 ‘올때MIC’가 그 결과물이었다. 이는 그야말로 고행의 과정이었다. 뒤바뀐 판에 적응하면서도 그들이 가진 특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하는 일종의 테스트이기도 했다. 그만큼 힘들었지만 그로부터 얻게 된 건 상상이상이었다. 

“300만 뷰 정도를 기록했어요. 나름 성공한 콘텐츠죠. 숫자보다 더 중요했던 건 실력을 검증받으며 자신감을 얻었다는 거예요. ‘거봐, 되잖아’라는 느낌?(웃음) 덕분에 회사의 방향성이 만들어진 시간이기도 했죠. 어렴풋이 ‘예능’을 하자고 했던 것에서 음악예능으로 또렷해 진거예요. 장기 프로젝트에 힘입어 회사의 초기 기반을 닦은 것도 두말할 나위 없이 크고요.”

 

334제작소의 처녀작, '올때MIC'의 캡처화면
334제작소의 데뷔작, '올때MIC'의 캡처화면

첫 해의 성취는 이듬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2020년 축구 국가대표 박주호 선수의 유튜브 채널을 1년 간 기획‧제작‧운영하며 셀럽 콘텐츠의 내공을 쌓았고, IT기업의 브랜디드 콘텐츠를 소화하며 커머스로의 확장도 꾀했다. 그중에서도 334제작소가 특별히 공을 들였던 부분은 자체 채널을 확보하고 이를 성장시키는 일이었다. 정재형 대표는 “단순히 콘텐츠만 제작해주는 방식으론 수익성과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있다”면서 “자체 생산 콘텐츠를 만든 후 해당 IP(Intellectual Property‧지적 재산)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비트라이더’ 콘텐츠는 정 대표의 구상이 오롯이 구현된 좋은 예다. 올해 2월 334제작소가 만든 자체 채널 ‘스튜디오 까르르’의 콘텐츠로, 음악 레이블과 협업하여 소속 아티스트가 곡을 만드는 과정을 음악예능 콘텐츠화 하고 이에 대한 음원 수익을 레이블과 제작사가 공유하는 방식이다. 엠비션 뮤직(Ambitoin Musik)의 프로듀서 웨이체드와 함께 했던 첫 번째 프로젝트는 그 가능성을 시험한 무대였다. 박재범, 타이거JK 등 유명 아티스트를 피처링으로 참여시키며 콘텐츠 자체도 화제가 됐고, 음원수익까지 꾸준히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삼박자가 잘 맞는 프로젝트에요. 일단 우리가 잘하고 재밌게 할 수 있는 게 음악예능이고, 음원수익이라는 안정적 수입원도 확보할 수 있죠. 레이블 입장에서도 음원이나 앨범의 마케팅 비용을 훨씬 절약하는 방식이고요. 향후에도 이 분야의 경험을 두텁게 쌓아 경쟁력을 확보해나갈 생각입니다.”

 

334제작소의 자체채널 스튜디오 까르르의 '비트라이더' 캡처 화면
334제작소의 자체 채널 스튜디오 까르르의 '비트라이더' 캡처 화면

‘스튜디오 까르르’는 비트라이더와 그 뒤를 잇는 ‘리벌스트랙’ 콘텐츠로 음악예능 채널로서의 입지를 다진 가운데 다음 시즌을 구상 중이다. 334제작소는 분신과도 같은 자체 채널을 꾸준히 성장시키는 동시에, 새롭고 다채로운 시도 역시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자신들의 친정이었던 방송국과의 ‘콜라보’도 그중 하나다. 정재형 대표는 “예전엔 방송국이 자사의 콘텐츠가 유튜브에 올라가는 걸 막았지만 지금은 정 반대”라며 “디지털 생태계에 맞춘 방송 콘텐츠의 재제작이나 ‘스핀오프’격의 신규 콘텐츠 제작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기획‧제작‧운영하고 있는 TV조선의 ‘미스앤미스터트롯’ 공식 계정에서 10월 말 ‘금요일에 만나요’라는 오리지날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한 것이 좋은 예”라고 덧붙였다. 

 

4명으로 시작한 334제작소의 식구는 2년 만에 22명으로 늘었다.
4명으로 시작한 334제작소의 식구는 2년 만에 22명으로 늘었다.

짧은 업력에도 여러 가지 시도를 가능케 했던 334제작소의 힘은 콘텐츠 완성도에 있다.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전문 작가들을 내부에 상주시키며 기획부터 참여시키는 업무 방식은 디지털 콘텐츠 생태계에선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업력과 규모에 비해 대기업이나 큰 스튜디오의 작업 의뢰가 잦은 이유도 콘텐츠의 퀄리티와 퍼포먼스가 담보되기 때문이다. 

레거시 미디어와 뉴 미디어의 강점만을 취사선택한 힘으로 기반을 다진 334제작소는 향후에도 그러한 강점을 십분 활용할 계획이다. ‘플랫폼을 넘나들며 서로간의 시너지를 극대화시키는 제작사’라는 모토 또한 그 과정에서 완성됐다. 지금까지 별도의 홍보‧마케팅 없이 기반을 닦아온 만큼, 외부 투자를 통한 홍보 활성화도 중요한 숙제로 평가받는다. 

“의욕만 가지고 뛰어 들었지만 좋은 분들을 만난 덕분에 스타트를 잘 끊을 수 있었어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음악예능’이란 정체성도 굳힐 수 있었고요. 앞으론 플랫폼을 넘나드는 제작사로 자리매김할 계획입니다. 방송과 디지털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니만큼, 둘 사이의 시너지는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론 글로벌 무대에서도 승부가 되는 제작사가 되고 싶습니다. 언어의 힘을 뛰어넘는 음악을 메인 콘셉트로 잡은 건 일종의 ‘큰 그림’인 셈이죠.(웃음)”

 

/사진: 334제작소주식회사 제공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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