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북 쌓인 실패더미서 ‘성공방정식’ 캐내는 육성형 창업가
임승진 ㈜윙잇 대표 인터뷰
수북 쌓인 실패더미서 ‘성공방정식’ 캐내는 육성형 창업가
2022.02.21 11:18 by 최태욱

투자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들만의 무기는 무엇일까? [B장의 무기] 시리즈에서 파헤쳐 봅니다. [더퍼스트미디어]가 ‘시리즈 B’(Pre B포함) 이상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의 대표를 직접 찾아가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맛집으로 소문난 분식집 떡볶이를 온라인으로 옮겨 팔곤 대박이 났다. ‘이커머스, 별 거 없네’란 호기로 메뉴를 늘렸다. 커피부터 감자탕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쟁였다. 1년 반 새 100개 넘는 상품을 다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한 달에 하나 팔기 어려운 것도 허다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개발자 출신의 이 회사 대표는 “시장도, 고객도, 사업도 몰랐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몰라서 더 용감했다. 이리저리 재기보단 일단 찔러봤고, 헛발질을 통해 철저히 학습했다. 그렇게 7년, 문제와 문제해결 사이를 넘나드는 동안 미지의 영역은 서서히 걷혀갔다. HMR(가정간편식) 커머스 스타트업 ㈜윙잇은 그렇게 강소기업이 됐다. 70만명에 육박하는 회원 수, 50%를 훌쩍 넘는 재구매율, 122억원에 달하는 누적투자 등의 수치가 이 회사의 현재를 가늠케 한다. 판매율 제로에서 재고율 제로를 만든 동력은 무엇일까? 임승진 ㈜윙잇 대표가 가진 ‘B장의 무기’를 톺는 과정은 바로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Startup Summary
2015년 12월 설립한 ‘㈜윙잇’(아그레아블에서 사명 변경)은 25~44세 여성 고객을 대상으로 RTH, RTE, HMR 등 간편식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커머스 플랫폼이다. 지난 2020년 12월 시리즈B투자 유치에 성공했으며, 현재 2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 유치를 준비 중이다.

임승진(사진) ㈜윙잇 대표
임승진(사진) ㈜윙잇 대표

| 경험 없이 얻는 경험은 없다…‘묻지마 창업’에 도전한 개발자

“여긴 이미 힘들어졌어. 인건비가 너무 올라서 사람 쓰기가 녹록치 않거든. 하지만 한국은 다르지. 거긴 아직 기회가 있어. 내가 네 상황이면, 난 무조건 한국 가서 창업할거야.”

누군가는 무책임한 조언으로 흘릴 수 있는 말이지만, 임승진 대표에겐 나침반 같은 일갈이었다. 대학 휴학시절, 3년간의 업무경험을 끝내고 여행 차 들렀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는 인생의 항로를 바꿀 계기를 마련했다. 구글, 에어비앤비 등 유수의 IT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했던 한인 선배들의 조언은 묵직하게 다가왔다. ‘미국에서 커리어를 쌓고 40대쯤 창업해보면 어떨까’했던 막연함은 ‘한국에서. 창업. 당장.’이라는 또렷한 키워드로 바뀌었다. 

“원래 의사결정에 크게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빠르게 결정하고 틀리면 바꾸는 게 편했죠. 그때도 그랬어요. 그 얘기 듣자마자 한국 돌아와서 곧장 창업에 돌입했죠.(웃음)”

사업 아이템 선정에서도 임 대표의 성향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환경분석도, 시장조사도 스킵한 채 ‘당장 할 수 있는 것’, ‘평소 해보고 싶었던 것’에 손을 댔다. 그게 쇼핑몰이었다. 전문성을 뽐내며 쇼핑몰 솔루션을 개발했지만 아무도 쓰지 않았다. 만든 공이 아까워 직접 물건을 팔아보려 나섰다. 품목은 여성의류. 당연히 쫄딱 망했다. 임 대표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지독히도 안 팔리더라”고 회상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연예인도 찾아와 먹는다는 맛집을 하던 지인이 자사 떡볶이의 온라인 유통을 노렸고, 덩그러니 쇼핑몰만 있던 임 대표가 그 기회를 움켜줬다. 브랜딩, 패킹디자인부터 상세페이지까지 구색이 갖춰졌다. 사실 이 역시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지금이야 새벽부터 식자재를 받아보는 시대지만, 2015년 당시 식품유통 분야에서 온라인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농가에서 산지직송으로 보내는 사과, 고구마 같은 게 고작일 때, 반 조리 떡볶이 하나 쥐고 신대륙 발견에 나선 셈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첫 달 300만원의 매출이 찍히더라고요. 다음 달 800, 그 다음 달 1300… 계속 튀어 올랐어요. 온라인 간편식 시장의 엄청난 수요와 태부족한 공급을 동시에 절감했죠.”

이 사건을 계기로 ㈜윙잇은 RTE(Ready to eat‧즉석식품), RTH(Ready to heat‧즉석가열제품), HMR(Home meal replacement‧가정대용식)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커머스 플랫폼의 노선을 타기 시작했다. 수많은 난관과 시행착오를 본격적으로 겪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윙잇의 탄생을 알린 떡볶이 제품은 현재도 이 회사의 스테디셀러다.(사진: 윙잇 홈페이지)
윙잇의 탄생을 알린 떡볶이 제품은 현재도 이 회사의 스테디셀러다.(사진: 윙잇 홈페이지)

| 헛발질 투성이지만, 같은 데 두 번 헛발질은 없다 
떡볶이로 대성공을 거뒀지만 떡볶이 플랫폼이 될 수는 없었다. 자연스레 상품 라인업 확대가 이어졌다. 맛있는 제품을 만든다고 소문난 공장이면 어디라도 찾아가 연을 맺었다. 임승진 대표는 “주로 대형 프랜차이즈 같은 곳에 도매로 물건을 넘기던 식품 공장들이었는데, 일반 소매로 나갈 수 있다는 건 생각조차 못하시더라”면서 “우리가 온라인에서 팔거니까 반제품으로만 만들어 달라고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다”고 말했다. 자사의 온라인 진열대는 그렇게 각종 식음료들로 빼곡 채워져 갔다. 특별한 전략도 명확한 콘셉트도 없었다. 임 대표는 “사람 입에 들어가는 건 거의 다 해보는 수준이었다”며 “돌이켜보면 정말 막무가내 식이었지만, 유통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전무했기에 그냥 다 찔러볼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일천한 경험과 부족한 준비는 고스란히 시행착오로 이어졌다. 답이 없는 상품에 헛힘을 쏟고 좌절하는 경우가 태반이었고, 가끔 뜬금없이 터지는 ‘원히트원더’에 매몰되어 비효율을 자처하는 경우도 즐비했다. 가장 큰 문제는 롤러코스터 같이 들쑥날쑥한 성과였다. 매출이 급성장하여 조직 규모와 지출을 한껏 키워놓으면, 대책 없이 곤두박질하여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이 반복됐다. 판매가 잘 되도 걱정, 안되면 더 걱정되는 딜레마다. 관건은 역시 안정감이었다. 임승진 대표는 매출이 급전직하했던 사례들을 역추적하고 분석하여 하나의 솔루션을 도출해냈다. OEM생산과 PB제품 개발이었다. 

“한참 고전하던 시기에 우리를 기사회생시켰던 제품이 하나 있어요. ‘콩숙개떡’이란 떡 제품인데, 정말 불티나게 팔렸죠. 직원도 늘리고, 사무실도 큰 데로 옮기고… 근데 갑자기 매출이 무섭게 빠지는 거예요. 알고 보니 제조공장이 다른 채널에도 넣기 시작했더라고요. 수수료 받고 중개만 해주는 오픈마켓 모델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어요. ‘우리 브랜드로 만들자’는 결심이 서게 된 이유죠.”

2018년, ㈜윙잇은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자체 브랜드 확보에 시동을 걸었다. 자사의 패키징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제품은 다른 채널과의 출혈경쟁을 줄이며, 안정적인 매출 확보를 가능케 했다. PB(독자상표) 제품 개발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콩숙개떡의 히트 경험을 살려 자체 개발한 ‘앙꼬절편’의 성공은 가장 상징적인 사례다.

 

㈜윙잇의 첫 PB상품 ‘앙꼬절편’(사진: 윙잇 홈페이지)
㈜윙잇의 첫 PB상품 ‘앙꼬절편’(사진: 윙잇 홈페이지)

PB제품 라인업이 두터워지며 매출이 조금씩 안정되어갈 무렵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이커머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물류’였다. 임 대표는 “초기엔 공장에 물건을 쌓아놓고 택배 요청을 했는데, 물동량이 많아질수록 실수가 터져 나오더라”면서 “나중에는 우리가 많이 팔면 팔수록, 저쪽에선 난색을 표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는 고객 만족도와도 직결되는 이슈였다. 배송의 정확성과 편의성 모두 진화와 개선이 필요했던 시점이었던 것. 임 대표의 행동은 이번에도 재빨랐다. 외부에 물류창고를 세팅하고, 3PL(제3자 물류‧물류 부문을 전문 업체에 아웃소싱하는 것)을 전격 도입했다. OEM생산, PB제품 개발, 물류 선진화로 이어지는 1년 여 간의 행보는 ㈜윙잇의 체질을 완벽히 바꿔줬다.  

“신제품 팡 터지면 매출이 오르고, 또 폭삭 빠져서 난감해 하는 일이 3~4년 동안 반복됐잖아요. 그런데 물류 창고를 만든 시점부터 저점이 조금씩 올라오며, 처음으로 매출이 안정화되기 시작했어요. 돌이켜보면, 고객들이 택배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것 같아요. 우린 그걸 비용 핑계로 계속 외면했던 거고요.”

 

윙잇의 '써드베이커리' 상품

| 실험과 데이터로 체득한 ‘문제해결능력’이 나의 ‘B장의 무기’
어느덧 창업 8년차에 접어든 임승진 대표. 그가 회사를 일궈 온 과정은 문제해결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 초반의 좌충우돌을 넘어 안정궤도에 접어든 시점에서도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그에 따른 고민 또한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임 대표는 “지금 생각하면, 식품 유통분야를 너무 쉽게 보고 덤볐던 것 같다”고 말한다. 고도로 분업화되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시도하고, 적당히 좌절한 뒤, 수정해서 다시 시도해보는 것뿐이었다. “나름 예민한 편인데 사업하면서 엄청 무던하게 변했다”고 말하는 넋두리에선 그가 겪어온 시행착오의 무게감을 엿볼 수 있다. 

물류 선진화로 안정적인 매출을 구가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여러 가지 난제들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식품 분야의 단골 리스크인 품질 저하문제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고, 스타트업의 영원한 난제인 인사 문제로 팀원 삼분의 일을 물갈이하는 상처를 감내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우물쭈물하기 보단 발 빠르게 결단하고 행동하는 편을 택했다. 이는 어느덧 회사 고유의 문화로 점철되어 조직 전체의 속도감에 기여한다. 임승진 대표는 “우린 식품 회사지만, 식품에 전문성 있는 직원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면서 “오히려 어떤 문제가 닥치든 해결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을 많이 뽑아왔다”고 설명했다. 

다행인 건 시행착오를 겪어 낸 타이밍이 꽤나 절묘했다는 것이다. ‘맨 땅에 헤딩’식으로 배웠던 학습효과가 빛을 보기 시작한 시점과 코로나19 펜데믹의 도입부가 교묘히 맞물리며 더 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중에서도 임 대표가 꼽는 최고의 성과는 지난 2년간의 테스트 끝에 완성한 ‘마케팅 퍼널(Marketing Funnel‧잠재 고객의 유입부터 최종 결제까지의 과정을 설계한 모델)이다. 

“사업 초기부터 우연에 기대 온 측면이 많잖아요. 코로나19 시기에 이커머스 수요가 폭발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이 역시 온전히 우리의 능력은 아니에요. 매출을 인위적으로 제어하는 건 언제나 큰 숙제였죠. 2년 간 이런 요소들을 전부 찾아서 모조리 실험했어요. 이를 통해 회원 수가 매출로 연동되는 알고리즘을 설계했죠. 이제 어느 정도는 매출을 콘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투자 심사역들에게 소구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고요.”

 

임승진 대표는 “데이터 기반의 테스트로 통제 가능한 마케팅 전략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임승진 대표는 “데이터 기반의 테스트로 통제 가능한 마케팅 전략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상품, 배송, 품질,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임 대표의 도장깨기는 이미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 있다. 쇼핑몰에 콘텐츠를 더하는 서비스 기획이 그것이다. 임 대표는 “지금은 단순히 쇼핑몰이지만 그 안에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서비스까지 결합되면 온전한 의미의 플랫폼이 완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객들에게 최고의 맛을 제공한다는 업의 본질 또한 잊지 않는다. 재구매율 55%, 제품 폐기율 제로라는 수치는 맛에 진심인 이들의 경쟁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올해 국내 HMR시장은 그야말로 빡빡하다. 코로나19펜데믹이 불붙인 시장은 이미 거대 자본과 공룡기업들의 각축장이 된지 오래다. 경쟁 스타트업들이 하나둘 대기업에 인수되면서, ㈜윙잇의 링 위엔 체급 다른 상대만 즐비하다. 하지만 임승진 대표는 자못 덤덤하다. 깨지고 부서지며 얻은 필드 레슨의 효과다. 

“조급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단단한 시스템을 믿으니까요. 현재 계획 중인 서비스 기획까지 마무리되면 식품 B2C부분에선 크게 미련이 없을 것 같아요. 그때가 되면 신사업에 도전해봐야죠. 아이템이요? 어차피 식품 유통도 문외한으로 시작했는데, 그게 뭐 중요하겠습니까?(웃음)”

 

/사진: 임승진 대표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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