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담긴 치유와 위로…‘어느 예술가의 블루스’
‘아트 인 메타버스’展 배효정 작가 인터뷰
작품에 담긴 치유와 위로…‘어느 예술가의 블루스’
2022.05.12 16:56 by 최태욱

[Artist in METAVERSE]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아트 인 메타버스’(5월 31일까지,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展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저의 작업은 개인적인 경험, 그중에서도 상처를 주로 담고 있어요. 표현의 과정이 곧 아픔을 해소하고 치유하는 과정이 되는 셈이죠.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 끝에선 모두가 공감하고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그게 예술의 힘이니까요.”

배효정(41) 작가는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한 아티스트다. 미술가의 딸로 평탄하게 흘러갈 것 같던 그녀의 예술은 예상치 못한 암초를 겪으며 위기를 거듭했다. 배 작가의 작품 속에 유독 ‘자신’의 모습이 비춰지는 건 그 때문이다. 시각디자인으로 출발해 영상‧애니메이션, 퍼포먼스, 미디어 아트까지 표현의 변주는 자유롭지만, 그 속에 담긴 삶의 애환이나 간절한 바람은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삶을 반영한다. 작가가 “내 작업은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자신의 치유를 위한 작업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공감과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배효정 작가가 그리고픈 표현의 세계는 바로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배효정 작가의 작품에는 대부분 자신이 직접 등장한다.(당신의 기원_기원의 기원, 비디오, 3min 35sec, 2021)
배효정 작가의 작품에는 대부분 자신이 직접 등장한다.(당신의 기원_기원의 기원, 비디오, 3min 35sec, 2021)

| 시각디자인부터 퍼포먼스 아트까지…삶이 이끄는 예술路
배효정 작가는 미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서양화, 외할머니는 문인화 작가로 활동했다. 자연스레 예술 친화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물려받은 재능 또한 남달랐으니 길은 정해져 있는 듯 보였다. 대학에서 선택한 전공은 시각디자인이었다. 배 작가는 “순수미술이 고루하고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었다”면서 “돌이켜 보면 어머니와 똑같은 길을 가기 싫다는, 어린 마음의 치기였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감정적인 선택의 결과가 좋을 리 만무하다. 창작자의 피가 흐르는 배 작가에게 디자인은 너무 갇힌 세계였다. 클라이언트의 선택에 의해 방향성이 결정되는 디자인 작업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목마름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막상 디자인을 공부하다보니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없더라고요. 자연히 학과 공부보다 그 변두리에 있는 작업들에 몰두했어요. 단편영화를 공부하고, 영화촬영 현장에 다니고,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식이었죠.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표현하는 데 끌렸던 거죠.”

애니메이션 작가를 꿈꾸며 표현의 나래를 펼치던 대학 졸업반 시절,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갑상선암’이라는 불청객. 이미 전이가 진행됐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반나절 동안 이어진 수술을 가까스로 마친 후 대학원 진학까지 이뤄냈지만, 깊어진 상실감과 곤두박질 친 체력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대학원 공부도 애니메이션 작가도 포기한 채 홀연히 미국행을 택했다. 2007년, 28살의 나이였다.

 

갑상선암 수술로 생긴 목의 흉터를 목걸이로 가리는 자신을 표현한 작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치유의 과정을 담았다.(Necklace, 사진, 45x35, 2010)
갑상선암 수술로 생긴 목의 흉터를 목걸이로 가리는 자신을 표현한 작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치유의 과정을 담았다.(Necklace, 사진, 45x35, 2010)

미국 생활은 어학연수생의 신분으로 시작됐다. 그때 접한 뉴욕의 현대미술은 새로운 영감과 열정의 씨앗이었다. ‘모마’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동시대의 가장 핫한 작품들과 실험적인 예술이 가득했고, 이는 배효정 작가의 무력감과 상실감을 목표의식으로 둔갑시켰다.  

“뉴욕의 예술을 접하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이 곳에 다 모여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중에서도 퍼포먼스의 대모라 불리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관객의 참여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예술이라는 특색에 흠뻑 빠졌죠.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세계 미술의 중심지에서 새로이 얻은 꿈은 도피처 삼았던 미국행을 학업 연장의 길로 바꿔주었다. ‘스튜디오 아트’ 전공자로서 다시 학부생이 된 것. 집중적으로 팠던 분야는 역시 퍼포먼스 아트였다. 오롯이 자신의 마음을 대상화하는 독특한 작업 방식도 바로 그때 완성된 스타일이다.

 

외롭고 험난한 유학생의 마음을 표현한 배효정 작가의 퍼포먼스 작품(2011 What I painted, 퍼포먼스, 30min, 2020)
외롭고 험난한 유학생의 마음을 표현한 배효정 작가의 퍼포먼스 작품(2011 What I painted, 퍼포먼스, 30min, 2020)

미국에서 대학원 합격 통지를 받고 진학을 준비할 무렵, 또 다른 난관을 마주했다.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지며 학비가 끊긴 것이다. 대학원 문턱에서 주저앉을 수 없었던 배 작가는 고민할 겨를도 없이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돈을 모았지만 오히려 화근이 됐다. 이미 한번 탈이 났던 몸이 버텨주지 못했던 것. 이번에는 허리디스크였다. 

“답이 없는 상황이었어요. 미국의 살인적인 의료비 때문에 진통제만 먹고 버텼죠. 하지만 거기까지였어요. 급기야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정도로 악화됐죠. 결국 휠체어를 타고 씁쓸하게 귀국해야 했죠.” 

 

| 제주로 스며든 예술가,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다 
한국에서 내리 3개월을 누워만 있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마음이 문제였다. 학업에 대한 미련과 상실감은 우울증의 형태로까지 나타났다. 심난한 마음에 훌쩍 떠나온 곳은 제주도. 그녀의 예술 인생 판도를 바꿀 결정적인 행보였다. 

2013년 1월, 배효정 작가는 제주도에서 새로운 삶을 꾸렸다. 여행을 다니다 섬의 매력에 빠졌고, 작업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점도 정착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아픔을 몸소 느꼈던 그녀는 섬에 스며들기 위한 노력부터 시작했다. 해녀학교를 다니며 지역민들과 소통하고, 제주어나 ‘4.3 사건’ 등을 공부하며 문화와 정서를 향유했다. 승마, 요가, 시 쓰기 등도 자연스레 지역에 흡수되기 위한 활동이었다. 작품 활동이 간간히 이어지긴 했지만 온전히 몰입하진 못했다. 호구지책을 위해 작은 민박집을 운영했던 것도 작업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그렇게 5년, 섬에 완전히 동화됐다는 생각이 들 무렵 다시 몸을 일으켰다. 제주에서의 대학원 진학은 상징적인 신호였다. 

“대학원에 들어가고 나니 작품의 영감이 막 쏟아지더라고요. 그동안 섬에 스며들기 위해 했던 모든 경험들이 예술적 자산으로 축적된 느낌이었어요. 정말 열심히 작업에 매진했죠. 마치 그간 맺힌 한을 다 풀어내듯 말이죠.(웃음)”

 

기억의 공간의 기억, 영상 설치, 가변크기, 2020
기억의 공간의 기억, 영상 설치, 가변크기, 2020

2019년, 39살의 나이로 개최한 첫 개인전은 반전의 서막이었다. 첫 개인전을 통해 제주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배효정 작가는 이후 다수의 그룹전시와 기획전, 아트페스타 등에 참여하며 존재감을 다져갔다. 이 무렵부터 ‘수중 퍼포먼스’라는 기법을 채택,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배 작가는 “실제 바다나 수중 스튜디오에 직접 들어가서 영상을 촬영하기도 하고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한다”면서 “바닷가 근처에 살며 물을 계속 접하다보니, 자연스레 그런 작업 스타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 나를 치유하듯 관객도 치유하는 작품 만들고파 
제주도에 터를 잡은 지 8년 여, 차근차근 제주와 예술을 엮으려던 배 작가의 노력은 서서히 그 결실을 맺고 있다. 지난해에는 ‘제47회 제주특별자치도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제주를 대표하는 아티스트 대열에 합류했다. 제주도에 그리 많지 않은 미디어‧퍼포먼스 작가라는 점에서도 보석 같은 자원이다. 

아트 매니지먼트 기업 ‘아츠클라우드’와 연을 맺게 된 것도 그런 존재감 덕분이다. 아츠클라우드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MOU를 맺으면서,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던 배효정 작가와 아츠클라우드의 연결고리가 생긴 것. 덕분에 서울에서도 제주의 향취와 정서가 듬뿍 담긴 배 작가의 작품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지난 5월 10일부터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인 메타버스, Artist of the week>을 통해서다. 배효정 작가는 “미디어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창구가 제한적이라는 면에서, 아츠클라우드의 등장과 활동은 굉장히 반가운 것”이라면서 “첫 번째 협업이 될 이번 개인전도 설렘과 기대를 갖고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번 ‘Artist of the week’ 통해 배 작가가 특별히 소개해주고 싶은 작품은 ‘해녀지망생의 집터’라는 수중 퍼포먼스 비디오 아트다. 이 작품은 배 작가에게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젊은 시절 떠돌이 생활을 하며 느꼈던 ‘집’에 대한 소회를 녹인 작품이며, 그녀가 가장 처음 물속에 직접 들어가 진행한 수중 퍼포먼스 작업이기도 하다. 

“요 몇 년 새 제주도 집들도 가격이 엄청 올랐어요. 그러다보니 전에는 보지 못했던 집 관련 분쟁들도 생기더라고요. 그런 상황들을 겪으며, 문득 ‘제주도에서 집은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을 했고, 이를 저만의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이죠.”

 

해녀지망생의 집터, 3채널비디오, 8min, 2020
해녀지망생의 집터, 3채널비디오, 8min, 2020

‘해녀지망생의 집터’ 이후 배 작가의 수중작업은 보다 다양하고 신선한 방식으로 실험되고 있다. 작업 스타일에 대한 연구와 도전이 거듭되는 만큼, 다루고 싶은 소재 또한 자연스레 확장된다. 특히 작가의 시선이 개인에서 주변으로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작품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던 손길이 이젠 주변과 세상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저는 항상 저의 이야기를 했어요. 내 경험들과 내 안의 생채기들이 주요 소재가 됐죠. 하지만 이젠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해요. 그럼 자연스레 소통하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겠죠?”

 

/사진: 배효정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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