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하지만 무른 것들에 대해…반전 매력 탐구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아트 인 메타버스’展 팬서 작가 인터뷰
단단하지만 무른 것들에 대해…반전 매력 탐구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2022.07.07 14:22 by 최태욱

[Artist in METAVERSE]는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아티스트를 발굴‧육성하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스타트업 ‘아츠클라우드’ 주최의 ‘아트 인 메타버스’展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까칠까칠해 뵈지만 막상 만져보면 보드라운 느낌이랄까? 제가 추구하는 이미지가 대개 그래요. 반전의 요소가 부각되는 작업이 많죠.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닌데… 다 모아놓고 보니 그런 공통점이 보이더라고요. 심심한 걸 싫어하는 성격 탓일 수도 있겠네요.(웃음)” 

팬서(panswer‧27) 작가는 색깔이 뚜렷한 아티스트다. 색감, 구도, 아이디어, 무드 등 자신만의 것이 확고하다. 작가 스스로도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작가 본인다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다. 본능적으로 캐치한 상상력을 일러스트레이션, 애니메이션, 인터렉티브 등 다양한 변주로 풀어내면서도 특유의 양가적 감정을 오롯이 표현한다. 즉흥적이면서도 속 깊은 작업들은 찰나에 몰입하며 영원을 추구하는 작가 본인을 닮아있다. 

 

팬서(사진) 작가
팬서(사진) 작가

| 경험과 성취의 순간들…아티스트의 길로 
팬서 작가에게 예술은 ‘고행’과 다를 게 없었다. 적어도 유년시절 느꼈던 예술가의 이미지는 그랬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삶이라고 여겨졌다. 당연히 그 쪽 계통의 꿈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무렵 돌연 예술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예술을 부정하던 소녀가 누구보다 재빨리 예술가의 길로 접어든 모양새. “허송세월하기 싫었다”는 게 그 이유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깝더라고요. 모든 지루함을 견디는 이유가 오로지 대학입시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열심히 해야 특별해질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다행히 미술은 꽤 좋아했고 적성에도 맞았죠.”

예고를 거쳐 현대미술 전공자 됐지만, 여전히 예술가의 길에 대해선 긍정보단 부정에 가까웠다. 대학 입학 후에는 시선을 끄는 분야도 많아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시각디자인, 인테리어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등을 부전공삼아 호기심을 채워나갔다. 하지만 작가가 싫다며 도전했던 모든 경험은 오히려 작가의 꿈을 타오르게 하는 불쏘시개였다. 팬서 작가는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지만 대부분 남들이 원하는 걸 내가 맞춰야 하는 작업들이었다”면서 “그 과정에서 내가 정말 원했고 즐겼던 것은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작업이란 걸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편협한 시각에 갇혀 스스로의 꿈을 부정하며 살았던 셈이다.

부정의 봉인을 풀어 버리자 홀가분하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졸업과 동시에 ‘서울로미디어캔버스 x YCK’ 공모전에 당선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서울로미디어캔버스 애니메이션 공모전’(2019), ‘Dont Panic Seoul_Main poster competition 3’(2021) 등에서도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성취를 이어갔다. 

“작가 활동 초기에는 많이 해맸어요. 혼자 모든 걸 해야 했고, 잘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선택한 게 공모전이었어요. 이를 통해 몇 번의 검증을 받고 나니 자신감이 조금 붙더라고요. 특히 첫 공모전 당선작이 서울역 앞 전광판에 소개될 때의 경험은 정말이지 짜릿했죠.(웃음)”

 

팬서 작가의 첫 공모전 당선작_‘그는 무고한 시민이었습니다’(캡처)_애니메이션_4분 6초
팬서 작가의 첫 공모전 당선작_‘그는 무고한 시민이었습니다’(캡처)_애니메이션_4분 6초

| ‘범인가 냥이인가’ 매섭지만 귀여운 팬서의 예술 세계
팬서 작가의 모든 작업은 오롯이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표현한다는 예술관 속에는 작가의 온갖 경험과 사유, 상상들이 빼곡 자리하고 있다. 주된 표현방식은 일러스트레이션 작업. 여기에 움직임을 얹고 반응을 유도하는 변주를 통해 애니메이션과 인터렉티브 아트의 영역까지 아우른다. 팬서 작가는 “갑자기 생각나는 이미지들을 메모해두는 게 작업의 첫 발”이라며 “그런 이미지를 결합하고 흩어지게 하면서 나만의 세상을 창조해 나간다”고 설명했다.

작품 속에 양가적인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도 고유한 특징이다. 단단하지만 무른 속성을 표현하거나, 귀여운 것 같으면서도 괴기스러운 이미지를 제시하는 식이다. ‘Stay Home’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강력한 파괴의 잔상과 날카로운 터치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그 속에는 두려움과 연약함 같은 정서가 내재되어 있다. 코로나19 감염병에 온 나라가 홍역을 앓던 시기,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재난문자가 청천벽력 같은 굉음으로 느껴진 경험을 토대로 시도했던 작업. 팬서 작가는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집의 이미지, 파괴로 흘러가는 잔상들, 청각의 공감각 등이 몰입의 원동력으로 이어져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PANSWER_STAY HOME_2021
PANSWER_STAY HOME_2021

지난 5월 31일까지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진행됐던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서도 팬서 작가의 반전 매력은 여실히 드러났다. 해당 전시를 통해 작가가 선보였던 작품은 ‘GUILTY PLEASURE’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이다. 디지털 드로잉과 터치디자이너로 작업했으며, 관객들이 함께 참여하는 인터렉티브 요소를 더하기 위해 ‘비주얼 코딩’ 기술까지 새로이 배워 적용했다. 

해당 작품에서 표현하고 있는 반전 요소는 안정감과 불안감이다. 애니메이션 속을 채우는 모습들은 작가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매개체다. 초콜릿이 분수처럼 쏟아지는 광경은 초콜릿을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기호를 반영하며, ‘웅웅’거리는 잡음이 가진 열감은 작가의 ‘최애’ 취미인 PC게임에 몰입해 있을 때 느껴지는 공간의 익숙함이다. 심리적 안정과 편안함, 즐거움까지 선사하는 이 공간은 작가에게 있어 일종의 ‘회피’다. 바로 그 지점에서 안정감과 불안정감, 즐거움과 죄책감이 공존한다. 팬서 작가는 “작품 속 공간은 온라인 공기를 마시며 개인의 취향을 만끽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현실과 벗어나있다는 생각에 죄책감과 불안함을 느끼는 장소”라면서 “원래는 화면 안에 참여자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인터렉티브 요소를 구현한 작품이지만,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서는 모든 과정을 녹화해서 미디어로 재현한 버전을 선보였다”고 덧붙였다.

 

PANSWER_Guilty Pleasure_4분12초_2020
PANSWER_Guilty Pleasure_4분12초_2020

| 관객과의 ‘밀당’도 OK…반전의 아티스트로 기억될래요
팬서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는다. 작가 스스로 “예전 작품을 보면 잃었던 당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말할 정도다. 마치 일기를 써내려가듯 자신의 경험과 사유, 상상을 화폭에 담는다. 하지만 서랍 속에만 고이 모셔두는 일기장은 아니다. 관객들과 소통하길 바라는 마음, 함께 예술을 향유하고자 하는 바람은 여느 아티스트 못지않다. 실제로 작품을 NFT로 만들어 판매한다거나, 작품의 캐릭터를 활용해 키링, 폰스트랩, 티셔츠, 도자기 같은 아트상품을 만드는 활동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지난 ‘아트 인 메타버스’ 전시에 도전했던 이유도 ‘메타버스’를 무대로 이뤄지는 관객들과의 만남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순수미술 외에 다양한 디자인 분야를 두루 공부했잖아요. 그래서인지 예술 작품으로 파생되는 다양한 가치에도 관심이 많죠. 욕심 많고 호기심 강한 성격도 한몫했고요.(웃음)”

 

작가의 태몽(胎夢)에서 비롯됐다는 예명 ‘팬서’는 작가의 유니크함을 한층 강조한다.
작가의 태몽(胎夢)에서 비롯됐다는 예명 ‘팬서’는 작가의 유니크함을 한층 강조한다.(사진: 나인앤드 제공)

팬서 작가의 삶은 의도대로 흘러오지 않았다. 미술을 접한 것이나 작가로 사는 것, 지금의 예술관을 빚어낸 것 모두 특정한 의도보다는 순간순간의 몰입이 더 주효했다. “작가는 고루하고 힘들다”며 손사래를 쳤던 소녀는 그렇게 개성 넘치는 아티스트로 완성되어 가는 중이다.  

“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미디어의 확장성을 넓히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싶어요. 관객들에게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한 편으론 수수께끼 같은 작품을 만드는 신비감으로 어필하고 싶기도 해요. 이 역시 제가 추구하는 반전의 묘미 아니겠어요?(웃음)”

 

/사진: 팬서 작가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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