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윈과 장차오양의 ‘같은 듯 다른 30년’
마윈과 장차오양의 ‘같은 듯 다른 30년’
2018.10.10 11:28 by 제인린(Jane lin)

지난 몇 년 사이 중국의 창업 열풍을 관심있게 지켜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대륙의 미래를 이끄는 키워드는 창업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실제로 중국의 경제구조에서 창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면서, 과거 전통적인 산업에서 창업으로 대륙의 경제 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비단 중국 뿐일까. 미국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난해 기준, 미국의 전체 활동인구 가운데 약 10%에 해당하는 근로 인구가 창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을 정도다.

이 같은 분위기에 맞춰 중국은 지난 20여년 동안 베이징을 중심으로 국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전 세계 창업 투자금의 약 18%가 베이징을 중심으로 흡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베이징 내에는 약 70여 개의 대학과 280여 개의 과학연구기관, 그리고 300여 개의 창업 공간이 존재하는데, 이 곳을 중심으로 중국 내 최고의 인재가 창업에 매진해오고 있다. 중국 정부가 국가 미래 사활을 창업에 걸었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알리바바(Alibaba)를 창업한 마윈马云회장이 전격 은퇴 선언을 한 것에 이목이 집중됐다. 그의 은퇴 소식이 전해진지 벌써 몇 주가 지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현지 언론에서는 그의 일거수일투족과 은퇴 선언에 담긴 의미, 마윈이 없는 알리바바에 대한 전망 등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다.

알리바바 그룹의 창업자 마윈 회장.(사진: 바이두)
알리바바 그룹의 창업자 마윈 회장.(사진: 바이두)

지난 9월 초, 중국의 스승의 날을 기념해 모습을 드러낸 마 회장은 지난 30여년 간 자신을 칭했던 회장이라는 직함을 떼어내고 이제는 과거 영어 선생님이었던 당시의 자신의 직함을 따라 마 선생이라고 불리고 싶다는 소박한 뜻을 공개했다. 그의 발언은 곧장 중국은 물론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20여년 전 창업한 알리바바로 세계 30대 리더(2008), 전세계 영향력 있는 100(2009),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8(2012)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던 그다.

더욱이 그가 운영하는 온라인 유통 업체 타오바오는 이미 중국의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마윈 회장이 ‘e-커머스의 황제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유다. 지난 2012년 집계된 알리바바의 매출은 미국의 아마존(Amazon)과 이베이(e-Bay)의 매출을 합한 것보다 많은 1738000억원이었다.

현재도 매출 규모에서 알리바바와 비견할 수 있는 그룹은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가 유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윈 회장은 자신의 나이가 인터넷 업계를 이끌기엔 젊지 않으며, 젊은 친구들이 기업을 이끄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은퇴 선언이 있고나서, 그의 삶의 행적과 줄곧 비교됐던 소후창업자 장차오양(张朝阳) 회장의 행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마윈과 장차오양은 모두 1964년 출생, 중국을 대표하는 1세대 기업가이자, 인터넷 관련 기업을 창업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장 회장은 불과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중국의 인터넷 업계를 이끄는 왕즈둥’, ‘딩레이등과 함께 인터넷 대부 3인으로 꼽혔다. 소후는 구글, 야후 등을 대체할 유일한 중국산 검색엔진으로 여겨졌는데, 중국어로는 검색의 여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에서 여우는 매우 총명한 동물을 상징한다.)

소후 창업자 장차오양 회장의 모습. 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 직전까지 그는 중국 인터넷 시장의 ‘대부’로 불려왔다.(사진: 웨이보)
소후 창업자 장차오양 회장의 모습. 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 직전까지 그는 중국 인터넷 시장의 ‘대부’로 불려왔다.(사진: 웨이보)

마윈보다 한 달 늦게 태어난 장 회장은 어릴 때부터 품행과 성적이 모두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안시에서 가장 좋은 학교들을 차례로 졸업했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에는 베이징에 소재한 명문 칭화대학교에 장원급제를 하며 입학, 줄곧 천재소리를 달고 다닌 인물이다.

반면 마윈은 1982년에야 대입 시험에 응시했는데, 당시 모든 대학교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고, 심지어 그가 까오카오(중국판 수능)’를 응시했던 첫 해 수학 점수는 10점 대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윈은 이후 삼수까지 거치며 1984년에 가까스로 전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같은 시기 이미 장 회장이 칭화대 졸업을 앞두고 미국 유학을 계획하고 있을 시기였다.

이처럼 스무 살 이전에 마 회장과 장 회장이 보여준 행보는 상당히 달랐다. 미국에서 공부를 시작한 이후에도 장 회장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 나간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입학했고, 대학원 졸업 후엔 MIT 아시아태평양 지역 연락 책임자로 추천받기도 했다. 이후 그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미국에서 경험한 아이디어를 모아 베이징 중관촌 이노웨이(inno way) 일대에서 창업 준비를 본격화한다. 같은 시기에 마윈은 전문대 졸업 후 인근 지역에서 영어교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주중에는 교사로 일하고, 주말이나 휴일 같은 때는 번역 작업을 하는 일에 몰두했다.

장 회장은 미국에서 돌아와 인터넷 사업의 대부라는 별칭을 얻었고, 대학 강단에서 젊은이들에게 인터넷과 미래라는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당시 장 회장의 특강은 자리를 예약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인기가 높았다. 학생들은 그를 아메리카드림을 중국에서 이룬, 이른바 중국몽을 이룬 젊은이라고 떠받들기도 했다.

반면 같은 시기 마윈은 베이징에서 2년 동안 인터넷 사이트 개설을 꿈꾸며 절치부심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이듬해인 1999알리바바를 개업하지만, 당시의 알리바바는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었다. 당시 중국의 스타트업들은 베이징 또는 상하이를 기반으로 했으나, 마윈은 그의 고향 항저우에서 알리바바를 시작했다.

(왼쪽부터) 왕엔(汪延), 장차오양(张朝阳), 딩레이(丁磊),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마윈(马云), 제리양(Jerry yang), 마화텅(马化腾).(사진: 웨이보)
(왼쪽부터) 왕엔(汪延), 장차오양(张朝阳), 딩레이(丁磊),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마윈(马云), 제리양(Jerry yang), 마화텅(马化腾).(사진: 웨이보)

태어난 직후부터 줄곧 천재라는 칭호를 받으며 사회적인 성공까지 손에 쥔 장 회장이 2004년 무렵 중국의 IT 갑부 순위에서 3위에 랭크된다. 하지만, 마윈에게는 이 시기는 암흑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40세를 맞이한다.

중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중국 고대인의 평균 수명은 36세에 불과했으니, 마윈과 장차오양이 만약 고대에 태어났다면, 장 회장은 성공적인 인생, 마 회장은 뜻을 펴지 못한 인생으로 기록됐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생 행보는 40세 무렵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윈은 자신의 기업인 알리바바를 모기업으로 둔 타오바오(淘宝)’알리페이등을 차례로 창업했다. 이후 독창적인 방식과 혁신적인 운영 방침 등으로 빠른 시간 내에 중국 국내 전자상거래 분야를 잠식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2007, 타오바오를 창업한 지 3년 만에 장 회장의 소호가 기록한 수익을 최초로 추월한다. 같은 시기 알리바바는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 중국 국내 전자상거래 인기몰이에 성공한다.

최근 장 회장이 일선 경영에서 물러난 뒤 건강을 위해 운동에 매진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사진: 시나닷컴)
최근 장 회장이 일선 경영에서 물러난 뒤 건강을 위해 운동에 매진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사진: 시나닷컴)

장 회장도 이 무렵 모바일 게임, 동영상 전용 플랫폼 개설 등 몇 가지 추가 사업 아이템을 검토하지만, 이미 해당 분야 선두 기업인 텐센트’, ‘요우쿠등의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혹평을 받으며 실패를 맛본다. 아마도 그의 인생 최초의 쓰디쓴 실패였다. 이후에도 악재가 계속된다. 안정적으로 정착했다고 여겨졌던 포털 사이트 소후조차 자극적인 뉴스를 다루는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의 등장으로 빠르게 정상의 자리를 추월당했다.

여러 가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던 장 회장은 2011년 무렵 우울증에 걸려 무려 2년 동안 회사의 모든 직무를 내려놓았다. 결국 2년 동안 건강을 회복하는 것에만 치중했으며, 그 사이 소후는 점점 빛을 잃고 후발 기업들 자리를 내어주고 처지를 면치 못했다.

반면, 50세가 된 마윈은 구글에 이어 세계 2번 째로 높은 주가를 기록한 인터넷 기업을 이끄는 인물이 됐다.

알리바바 마윈 회장.(사진: 바이두)
알리바바 마윈 회장.(사진: 바이두)

현직에서 물러난 장 회장은 최근 영어 공부를 하고, 요가를 즐기며, 일찍 잠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했으니, 이제는 다시 국제적인 인터넷 기업을 키워내야 할 차례라고 지적했지만. 장 회장은 더 이상 돈이나 명예에 치중하는 삶을 위해 인생을 소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기 마윈은 여전히 일 평균 10~20억 위안을 쉽게 벌어들이고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삶을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의 인생 행보에 대해 설왕설래를 즐긴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달리 보이는 두 사람의 인생 행보다. 최근까지도 마윈은 행사에서 저녁 먹을 시간조차 없어 이동하는 차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전해진다. 최근 알리바바 회장직에서 퇴임할 것이며 자신은 이제 평범한 교사였던 과거로 돌아가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 마윈 회장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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