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중독女, 제로소비 운동가로 거듭나다
명품중독女, 제로소비 운동가로 거듭나다
2018.11.26 14:35 by 제인린(Jane lin)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는 3년 차 다국적 커플 여원(27∙여∙중국인)씨와 존슨(영국인)씨의 극단적인 삶의 방식이 현지에서 화제다. 두 사람은 평소 소비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생활의 여유를 찾고 있다. 이 커플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이 여타 중산층 부부의 삶보다 행복하다고 자부한다. ‘베이징’이라는 거대도시, 그것도 최신 유행이 급박하게 변하는 소비의 도시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만 같은 소비 최소화 원칙을 무려 3년 동안 지키고 있는 이 커플을 만나보자.

 

베이징에 거주하는 여원씨와 그녀의 남자친구 존슨씨(사진: 웨이보)
베이징에 거주하는 여원씨와 그녀의 남자친구 존슨씨(사진: 웨이보)

여원씨는 올해로 약 10년 차 ‘베이피아오(北漂,베이징에 거주하는 외지 호적자)’다. 후베이(湖北)의 성도 우한(武汉)의 외곽도시에서 태어난 그녀는 10년전 돌연 베이징 행 기차표를 끊었고, 그 뒤로 베이징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영국인 남자친구 존슨씨와 함께 ‘제로 소비’ 운동을 실천해 온 게 벌써 3년째다. 처음 제안한 건 남자친구였다. 어느 날 우연히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에 소개된 미국인 가족의 ‘최소 소비 생활’ 방식을 보고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존슨 씨는 “영상 속 미국인 가족의 삶의 방식은 늘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여겼던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현재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약 60㎡(약 18평) 규모다. 그런데 물건이 별로 없다. 전에 살던 집에서 사용했던 물건의 10분의 1 정도만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두 사람은 매 분기마다 자신들이 버리고 있는 쓰레기의 양을 측정해오고 있는데, 지난 3개월 동안 이들 커플이 버린 쓰레기 양은 손에 쏙 들어가는 작은 유리병에 든 것이 전부다. 그만큼 낭비가 없다는 얘기다.

 

단출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여원씨(사진: 웨이보)
단출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여원씨(사진: 웨이보)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불과 3년 전, 여원씨는 사실상 그녀 또래들과 다르지 않는 ‘월광족(月光族)’이었다는 것이다. 월광족은 중국의 80~90호우(80~90년대 출생자)를 대표하는 명칭인데, 매달 일하고 받는 수입의 대부분을 버는 족족 모두 소비하는 이들을 의미한다.

여씨는 베이징에 소재한 외국계 기업의 소위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다. 하지만 잦은 야근과 많은 업무량 탓에 스트레스는 나날이 쌓여갔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 곳이 마땅치 않았던 여씨는 닥치는 대로 소비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실제로 여씨는 무려 500여 벌의 해외 브랜드 옷을 옷장에 꽉꽉 채워 넣었을 정도로 소비를 즐겼다. 그녀가 혼자 살았던 15평짜리 작은 원룸은 늘 그녀가 구매한 옷과 가방, 신발 등으로 가득 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소유하면 할수록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소비하는 순간에만 잠시 기쁨을 느낄 수 있을 뿐, 대부분의 시간에는 공허함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지나친 소비는 부작용도 낳았다. 높은 연봉을 받았지만 워낙 소비가 많았던 탓에 직장생활이 길어질수록 빚은 쌓여갔다.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여씨는 과감히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삶을 변화시키려 애썼다. 

 

그들의 삶은 어떤 모양으로 변했을까?(사진: 웨이보)
그들의 삶은 어떤 모양으로 변했을까?(사진: 웨이보)

사직서를 제출한 그 날 이후로 지금껏 약 3년. 그동안 여원씨가 구매한 옷은 단 한 벌도 없다. 여씨는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아주 천천히 이 생활 방식에 익숙해졌다”면서 “소비의 욕구는 인간이 만든 ‘심리적인 장애’ 중의 하나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3년 동안 의류 구입만 금지한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비닐 봉지 등 일회용품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물 한 병도 구매하기 보다는 집에서 끓여 마셨고, 외출 시에는 텀블러에 끓인 물은 담아서 가지고 다녔다. 평소 즐겨 먹었던 인스턴트 음식이나 배달 음식도 일절 끊었다. 평소 모든 음식을 집에서 직접 조리해 먹는다. 말린 과일로 만든 조미료를 주로 사용하며, 그 조리료 통도 친구들이 사용했던 유리병을 깨끗하게 세척한 뒤 재활용했다.

현재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의 가구들은 모두 중고품이다. 그들이 직접 돈을 주고 구매한 제품은 단 하나도 없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가구인 빨간색 안락 의자 역시 이웃집의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것이다. 여 씨는 “빨간 의자를 발견하고는 당장 뛰어가 주워왔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면서 “유일한 결점은 천에 기름얼룩이 남아 있는 것 정도”라며 웃었다. 그녀가 가장 아끼는 애장품인 가죽구두 역시 남자친구인 존슨의 고향에서 만난 중고품 시장에서 건진 것이다. 가격은 4위안(한화 약 800원)에 불과하다.

 

여원씨가 아낀다는 빨간 안락의자(왼쪽)와 가죽구두(사진: 웨이보)
여원씨가 아낀다는 빨간 안락의자(왼쪽)와 가죽구두(사진: 웨이보)

이들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지난 8월 ‘제로 소비’ 방식이란 타이틀로 그들의 일상이 온라인을 통해 알려 지면서부터다. 이 커플은 지난해 여름, 문득 이렇게 생활하면 쓰레기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궁금해졌고, 이를 직접 실험해보기 위해 두 사람이 배출하는 쓰레기 양을 측정, 온라인에 게재했다. 두 사람의 실험에 따르면, 여원씨와 존슨씨가 매 분기 측정한 ‘어쩔 수 없는’ 최소 쓰레기 양은 작은 유리병 두 개 분량이다. 쓰레기들은 주로 비닐 테이프, 사용하고 남은 빈 약통, 유리병의 광고 표지, 면봉, 옷에 붙은 세탁 안내문, 택배 포장지, 간식 봉투 등이다.

음식물 같은 생활 쓰레기가 나올 수 있지 않냐고? 음식물 찌꺼기는 퇴비통에 구멍을 뚫고 공기가 통하도록 보관했다가 동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마른 흙과 마른 나뭇잎을 섞어서 부식시킨 후 비료로 활용한다. 그렇게 만든 비료롤 활용해 직접 채소를 재배해 먹기도 하고, 정년 퇴직 후 집에서 소일거리로 채소를 재배하시거나 화분을 키우는 이웃집 어르신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여자라면 당연히 필요한 위생 용품은 어떨까? 약 12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천을 구입해 사용한다. 여원씨는 “재활용이 가능한 여성 위생용품을 사용하는데, 물세탁이 가능하며 뜨거운 물로 소독해 사용하기 때문에 혈액 순환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일상 생활 중 비닐 포장된 상품이나 식재료는 구매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함께 지킨다. 그래서 외출 시 반드시 챙겨서 나가는 제품들이 몇 가지 있는데, 도시락과 식기, 천가방 등이 대표적이다. 개인 생활 용품인 칫솔이나 치약, 비누, 목욕제 등은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모든 원료는 자연에서 채취한 것들로 건강에 무해하며, 쓰레기 처리 시 분해가 가능하다.

 

반 년 동안 모은 쓰레기가 유리봉 두 통 분량에 불과하다(사진: 웨이보)
반 년 동안 모은 쓰레기가 유리봉 두 통 분량에 불과하다(사진: 웨이보)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실적으로 이들이 직접적으로 지불하는 돈은 ‘월세’ 정도가 전부이다. 지출이 극단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 커플은 이삿짐을 챙겨도 캐리어 하나에 전부 담긴다. ‘캐리어 하나에 담을 만큼만 소유하자’는 건 이들이 세운 원칙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들이 안 쓰기만 하는 건 아니다. 예전과는 비할 바가 없지만, 돈을 벌기는 한다. 올해 1월 ‘THE BULK HOUSE’라는 간판을 단 작은 가게도 열었다. 두 사람의 가치를 담은 물건을 파는 상점이다. 수제 샴푸와 비누, 수제 식기와 도시락 케이스, 천연 유기농 팩 등 약 80여 가지의 제품을 판다. 쌀자루였던 제품을 개조해서 만든 가방이나 헌 천으로 만든 베개 커버, 옷 등도 있다.

존슨씨는 “우리 삶의 방식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목적으로 오픈한 가게”라며 “그래서 우리 가게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어떤 포장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온라인 주문 시에는 옥수수 성분으로 만들어진 테이프로 포장해 택배 상자가 자연스럽게 분해되도록 유도한다. 지난 3월 이후 두 사람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배출된 쓰레기 양은 불과 비닐 봉지 한 개 분량이다.

 

제로소비 운동을 실천하는 여원씨의 상점(사진: 웨이보)
제로소비 운동을 실천하는 여원씨의 상점(사진: 웨이보)

이 가게는 이들이 실천하는 운동의 거점 본부 역할을 한다. SNS를 통해 사연을 접한 사람들이 자주 찾고, 일부 고객들은 이들 커플의 삶을 지지하는 것에서 나아가 동참하겠다는 뜻을 전하기도 한다. 여원씨는 “가게 문을 연 이후 가장 기쁜 것은 전에는 직접 만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을 가게를 통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회사 다닐 때보다 수입은 형편없이 줄었죠.(웃음) 하지만 워낙 쓰는 게 없으니 더 넉넉해요. 무엇보다 마음이 매우 충만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당장 실천하기는 힘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작은 것부터 조금씩 줄여다가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같은 충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여원씨)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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