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낙스의 예술사랑, 지역 문화예술 확장에 거름되다
예술지구_p, W스퀘어에서 드로잉페스티벌 개최
파낙스의 예술사랑, 지역 문화예술 확장에 거름되다
2018.12.09 14:36 by 최태욱

“작년에 프랑스 명품 ‘베트멍(VETEMENTS)’ 디자이너들이 동대문에서 팔고 있는 자사의 ‘카피’ 제품을 가져다가 신상품으로 내놓은 일을 기억하시나요? 이 설치 작품은 그때 그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것입니다.”

작가의 설명에 관람객들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작품을 지켜보던 강연우(26·부산 해운대구)씨는 “SNS에서 전시회 소식을 보고 찾아왔다”면서 “이런 장소에 이렇게 멋진 전시장이 있는 것도 놀랍고, 작품의 수준이나 주제도 흥미롭다”고 했다.

지난 달 24일 토요일, 크고 작은 공장들이 밀집한 부산 금사동 공업지역에 5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날은 ‘예술지구_p’에서 진행하는 <시작을 끝내라 展>의 마지막 주말. 이 전시회는 복합예술공간 ‘예술지구_p’에 상주하며 작품 활동을 했던 11명의 작가가 한 땀 한 땀 빚어낸 작품을 전시하는 자리다. 회화, 설치, 사진 등 40여점의 작품들이 두 개의 전시장(ADP1, 2관)에 고스란히 공개됐다. 박상호 예술지구_p 레지던시 디렉터는 “이번 전시회는 우리 공간에서 3개월에서 1년 동안 창작 활동을 했던 국내·외 예술가들이 지역민들과 만나는 뜻 깊은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멍의 사례를 모티브로 한 박가범 작가의 작품(왼쪽)과 '시작을 끝내라' 전시회의 전경(사진:예술지구_p)
베트멍의 사례를 모티브로 한 박가범 작가의 작품(왼쪽)과 '시작을 끝내라' 전시회의 전경

| 향토기업의 예술 사랑이 만든 사랑방_ 예술지구_p

예술지구_p는 시각미술, 사진, 미디어아트, 창작 스튜디오, 공연예술기획 등 다양한 분야의 비영리 단체들이 모여 운영하는 민간복합예술공간이다. 예술가들이 거주하며 창작에 매진하는 레지던스 스튜디오가 7개 있으며, 2개의 전시장, 그리고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도 갖추고 있다. 단순히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교육이나 이벤트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어서 지역민들의 왕래도 잦다. 매해 크고 작은 공연과 전시회가 열리고, ‘영정사진 찍어주기 행사’나 ‘노인정 영화제’ 같은 지역 봉사활동도 이어진다. 공간 내 마련된 카페는 인근 공장근로자들의 쉼터가 되어주기도 한다.

 

예술지구_p의 전경(왼쪽)과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사진: 예술지구_p)
예술지구_p의 전경(왼쪽)과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

그런데 이 공간의 탄생 배경이 조금 특이하다. 원래 이곳은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안료 생산기업 ‘파낙스 그룹’(구 ㈜욱성화학)이 10여 년 전까지 공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공장지대를 관통하는 고가다리가 생기면서 건물이 삼각형 모양으로 잘리게 됐고, 이후 유휴공간과 창고 등으로 명맥만 이어갔다.

지난 2013년 파낙스 그룹은 방치되던 공간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기 결심했다. 공장으로 쓰던 낡은 공간을 리모델링해 예술가들이 모일 수 있는 아지트로 탈바꿈시키고, 두 개의 창고를 헐어 공연장을 지었다. 공사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파낙스가 부담했다.

사실 파낙스 그룹의 행보가 대단히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이 회사 임직원의 예술사랑은 부산 지역에선 이미 소문이 파다하다. 지난 2000년부터 약 15년 간 부산의 예술대안공간 ‘오픈스페이스_배’의 운영을 지원했고, 신진 예술가들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구입해주는 방식으로 그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박상호 디렉터는 “지금도 파낙스 그룹이 예술지구_p의 각종 공과금(전기·수도세)과 작가들의 식대를 지원해주고 있다”면서 “그룹 사장님과 예술가들이 정기적으로 식사 자리를 갖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파낙스 그룹의 예술사랑은 10일부터 이틀 동안 진행될 교육 프로그램 ‘색쓰는 이들’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이 프로그램은 예술지구_p 레지던스 소속의 작가들이 파낙스 그룹 연구소로 들어가 자신만의 물감을 만들어 보는 활동이다. 올해로 4회 차에 접어든 이 프로그램은 안료를 생산하는 파낙스의 CSV(공유가치창출)로 볼 수 있다. 자신이 작업할 물감을 직접 제작해보는 과정을 통해 예술가들은 색과 가치가 뚜렷한 작가로 거듭난다. 박상호 디렉터는 “총 6명의 작가가 참여하는데, 이를 위해 연구소는 이틀 동안 모든 업무를 중단한다”면서 “회화를 다루는 작가들 입장에선 돈보다 훨씬 값진 지원”이라고 했다.

 

'색쓰는 이들' 프로그램을 위해 파낙스 공장을 견학하고 있는 예술가들(사진: 예술지구_p)
'색쓰는 이들' 프로그램을 위해 파낙스 공장을 견학하고 있는 예술가들

| 아르콘과 함께 하는 드로잉페스티벌&꿀장 행사도 열려

예술지구_p는 오는 14일~15일에도 특별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부산 용호동에 위치한 ‘스퀘어’에서 열리는 ‘드로잉 페스티벌&꿀장’으로, 문화예술의 확장을 도모한다는 공간의 취지를 살려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기획된 행사다. 

이번 행사는 (사)아르콘(ARCON)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지난 8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기업 문화공헌 홍보 프로젝트 ‘기업利문화多’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박상호 디렉터는 “작년부터 예술지구_p 공간에서 페스티벌과 장터를 결합한 형식의 행사를 진행해봤는데, 공장지대다 보니 사람들의 왕래가 원활하지 않았다”면서 “올해는 아르콘의 도움을 받아 유동인구가 많은 몰(mall)에서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0월달에 진행했던 '꿀장' 현장
지난 10월달에 진행했던 '꿀장' 현장

이번 행사는 예술가와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형식이다. 먼저 드로잉 페스티벌을 위해서 35명의 작가(팀)가 참여했다. 이들은 ‘자화상 그리기’, ‘펀치니들을 이용한 그림 그리기’ ‘결정장애 해결을 돕는 주사위 만들기’, ‘초상화그리기’ 등으로 이틀 동안 시민들과 만날 예정. 박상호 디렉터는 “초상화를 그리는 작가는 먹과 붓으로, 섬유를 다루는 작가는 자수도구들을 통해 참가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꿀장’이라는 명칭으로 함께 진행되는 마켓에는 총 40개의 셀러 팀이 참여해 예술가들의 굿즈(Goods)나 아트상품들을 판매한다. 예술공간_p의 이미주 작가는 “작가들은 대중들과 얼굴을 맞대고 무언가를 함께 했을 때 작업의 가치를 크게 느낀다”면서 “각자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해서 대중과 만나고 이를 통해 소기의 성과를 얻는다면, 향후 작업 활동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예술지구_p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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