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상가, 진짜 예술의 낙원으로 진화 중
d/p 갤러리, ‘검은 밤, 비디오 나이트’ 전시 개최
낙원상가, 진짜 예술의 낙원으로 진화 중
2018.12.22 12:56 by 이창희

그곳은 낮에도 별이 뜨는 하늘, 깨어서도 꿈이 보이는 낙원. 더 낮게 더 느리게 더 가까이 가고 싶어, 더 높게 더 빠르게 더 멀리 가고 싶어

진득한 음악이 자욱하게 공간을 채운다. 노랫말엔 어딘가 모를 간절함이 묻어 있다. 한쪽 벽면에는 노래에 맞춰 뮤직비디오가 상영 중이다. 이곳은 서울 종로구의 낙원악기상가 4층에 위치한 ‘d/p 갤러리’. 노래의 주인공은 예술가들로 결성된 밴드 검은 밤(Black Night)’이다. 그림 같은 걸 전시할 법한 갤러리에서 뜬금없이 뮤직비디오라니, 대체 무슨 사연일까.

 

낙원상가 d/p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밴드 ‘검은 밤’의 뮤직비디오 전시(사진: 검은 밤)
낙원상가 d/p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밴드 ‘검은 밤’의 뮤직비디오 전시(사진: 검은 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공감

2012년 결성된 검은 밤은 영화감독, 작곡가, 비디오 아티스트 등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밴드다. 김유석(베이스보컬), 도재명(드럼), 안정주(기타신디사이저보컬), 전소정(아코디언테레민보컬) 등 네 명의 멤버는 평소엔 본업에 매진하다가, 때때로 모여 이 같은 음악적 퍼포먼스를 펼친다. 정적인 전시회에 음악으로 생동감을 불어넣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d/p 갤러리에 이들의 노래가 전시되기 시작한 건 지난 14일부터. 12곡의 노래에 맞춰 제작한 뮤직비디오 12편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공간과 기억의 관계를 다루는 이들의 노래는 실험적인 가사와 과감한 사운드가 돋보인다. 특히 뮤직비디오는 감각적인 비디오 아트를 연상케 한다. 뮤직비디오 제작에는 멤버들뿐만 아니라 여러 미술가들과 게임 디자이너 등도 참여했다. 이들의 협업이 다양한 예술적 실험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다.

덕분에 d/p 갤러리를 찾는 이들의 발길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전시 첫날엔 비교적 한산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입소문을 타면서 주목 받고 있다. SNS상에서의 반응도 뜨겁다.

그동안 전시회에서 공연을 한 적은 많았지만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전시하게 된 것은 처음입니다. 전시와 공연이 어우러지면서 내는 시너지에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훌륭한 공간이 바로 낙원상가내에 있다는 것이 멋지지 않나요?”(안정주 작가, 검은 밤 기타&보컬)

 

검은 밤 뮤직비디오 스틸컷(사진: 검은 밤)
검은 밤 뮤직비디오 스틸컷(사진: 검은 밤)

이번 전시가 열리고 있는 d/p 갤러리는 지난 4월에 처음 문을 열었다. 공간의 콘셉트는 개인의 생활양식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기획자 중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 공간의 명칭인 ‘d/p’는 별개의 낙원이란 뜻의 ‘discrete paradise’의 약자다. 다양한 개인들이 모이고 흩어지며 각자의 낙원, 때로는 우리들의 낙원을 만들고 부수는 경험을 지향한다.

5월 오픈 전 성격으로 열린 <노화 에피소드 1. 수집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6차례의 전시가 이뤄졌다. 이번 검은 밤 밴드와 마찬가지로 댄스필름을 상영했던 도시공간무용프로젝트 <풍정.(風情.)> 시리즈(9), 2018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정은영 작가의 작품을 박수지 큐레이터가 재구성한 <어리석다 할 것인가 사내답다 할 것인가>(11) 등이 d/p 갤러리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대표 전시들이다.

 

올해 낙원상가 d/p 갤러리에서 열린 '노화 에피소드 1. 수집가' 전시회(왼쪽)와 도시공간무용프로젝트 '풍정.각(風情.刻)' 장면.(사진: 우리들의 낙원상가)
올해 낙원상가 d/p 갤러리에서 열린 '노화 에피소드 1. 수집가' 전시회(왼쪽)와 도시공간무용프로젝트 '풍정.각(風情.刻)' 장면.(사진: 우리들의 낙원상가)

이처럼 d/p 갤러리에서 펼쳐지는 전시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서로를 만나 엮이고 섞이면서 풍성한 스토리를 빚어낸다. 자칫 어려울 수 있고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는 예술을 대중에게 색다른 느낌으로 전달하는 공간이다. 일반적인 갤러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과 신선함은 이곳만의 차별점이다.

 

┃모두의 파라다이스가 되는 그날까지

1968년에 지어진 낙원상가는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그냥 건물이 아니라 지난 50년 동안 실로 많은 이들의 추억이 켜켜이 쌓인 곳이다. 어릴 적 꼬깃꼬깃 모은 돈으로 통기타를 사러 왔던 기억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하다.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음악가들도 수시로 드나들었다. 건물에서는 악기를 조율하거나 연주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2018년 낙원상가. 하드웨어는 그대로지만 소프트웨어가 달라지고 있다.(사진: 우리들의 낙원상가)
2018년 낙원상가. 하드웨어는 그대로지만 소프트웨어가 달라지고 있다.(사진: 우리들의 낙원상가)

하지만 낙원상가는 2000년대 들어 큰 위기를 겪었다. 노래방과 같은 영상기기와 공간의 발달로 악기 수요는 갈수록 줄어들었고, 자연히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무엇보다도 도심재생 사업 명목으로 철거될 신세에 처한 것이 가장 큰 타격이었다.

다행히 안전 진단에서 높은 등급을 받으면서 철거 위기는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난 자리는 여전히 허전했고, 언제쯤 다시 과거의 영화를 되찾게 될지 기약이 없었다.

낙원상가 재건에 앞장 선 곳은, 그 옛날 낙원상가를 지어 올린 대일건설이었다. 뜸해진 사람들의 발길을 다시 모으기 위한 비장의 카드는 역시 문화예술’. 낙원상가의 정체성에 맞는 복합 문화공간 구현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열겠다는 계획이었다. 공연과 영화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는 야외 공연장(4), 악기 강습 프로그램인 반려악기 캠페인’, 집에 잠들어 있는 악기를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음악 교육을 지원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올키즈 기프트등이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아티스트와 대중의 만남이 이뤄지는 곳, 4층 야외 공연장.(사진: 우리들의 낙원상가)
아티스트와 대중의 만남이 이뤄지는 곳, 4층 야외 공연장.(사진: 우리들의 낙원상가)

전시회 외에도 낙원상가를 주제로 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보는 아트 워크숍’, 아날로그 정서를 잊어가는 현대인을 위한 자신에게 쓰는 엽서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사시사철 열리고 있다. 예술의 도구를 파는 공간에서 예술 그 자체가 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d/p 갤러리는 이 같은 낙원상가 문화예술 프로젝트의 핵심적 공간이다.

단순히 악기를 사고파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해서 많은 사람들이 직접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음악가뿐만 아니라 미술이나 전시를 하는 분들, 나아가 일반 대중들도 함께 어울리고 즐길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하면서 말이죠.”(윤식 대일건설 홍보팀 과장)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고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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