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쉬’하며 팔던 물건 “she! she!”하며 팔았더니, 식스티원
‘쉬쉬’하며 팔던 물건 “she! she!”하며 팔았더니, 식스티원
2019.04.21 20:56 by 최태욱

‘스타트랙’은 핫한 스타트업의 발자취(Track)를 쫒으며 그들의 성장 동력을 파헤쳐보는 시리즈 콘텐츠입니다.

가끔 야심한 시간에 으슥한 국도를 달릴 때면, 갓길 한 편에 세워진 녹슨 승합차를 발견하곤 한다. 차량엔 여지없이 ‘성인용품’이라 쓰여 있다. ‘저 안에선 도대체 뭘 팔까?’ ‘굳이 왜 저런데서 팔까?’라는 궁금증을 가져본 게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게다. 그런 경험이 켜켜이 쌓이면 자연스레 인식이 생긴다. ‘성인용품은 으슥한데서 몰래 파는 물건’이란 인식 말이다. 

1년 반 전, ‘식스티원’이란 스타트업의 출사표가 당황스러웠던 건 그래서다. 수년간 해외영업 현장을 누빈 김대희(31), 독보적인 감각을 자랑하는 디자이너 옥진우(31), 뷰티‧패션 유튜버로 활약하던 최다은(26)이 의기투합해 고작 ‘성인용품’을 팔겠다니… 

그들은 으슥한데서 몰래 파는 줄만 알았던 성인용품을 밝은 곳으로 끄집어내려 했다. 그것도 여성 고객만을 타깃으로 말이다. 해외 사이트를 뒤져 가장 만족도 높은 제품을 선별했고, 산부인과 의사들과 협의해 제품 하나하나의 효능과 안정성도 검증했다. 그리고 스튜디오까지 빌려 사진을 찍고 디자인을 매만져 가장 밝고 화려한 방법으로 진열했다. 

그로부터 1년 반, 식스티원이 만든 온라인 쇼핑몰의 회원 수는 2만6000명에 이른다. 매일 3000명이 넘는 신규 방문객이 꽃단장한 성인용품을 구경하고 구매한다. 최근에는 투자나 인수 제안도 심심찮게 받고 있다. 그만한 기업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필자가 갖고 있던 ‘성인용품은 으슥한데서 몰래 파는 물건’이란 인식을 바꾼 것은 식스티원이 챙긴 또 하나의 전리품이다. 

 

식스티원이 주관했던 한 오프라인 행사의 포스터
식스티원이 주관했던 한 오프라인 행사의 포스터

[Track 01] “판을 뒤집어 業자!”

2017년 9월 닻을 올린 식스티원. 창업 전 석 달 간 현장을 누비며 성인용품 시장을 면밀히 파악한 이후 그들이 내린 결론은 ‘뒤집기’였다. 도매에 지나친 힘이 실려 있는 유통구조를 뒤집고, 남성 관점의 자극적인 표현을 뒤집고, 이를 통해 사회의 인식도 뒤집자. 성인을 상징하는 ‘19’를 뒤집어 만든 사명 ‘61’은 그중에서도 백미다. 

김대희 식스티원 공동대표는 “성인용품 시장이 선정적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지극히 남성적인 관점으로 왜곡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성을 위한 상품에도 남성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진과 표현을 여과 없이 사용하는 식이다. 식스티원은 오로지 여성만을 위한 온라인 쇼핑몰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이를 뒤집었다. 취급하는 제품의 95%가 ‘여성용’이다. 김 대표는 “여성 타깃으로도 충분한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 킨제이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여성의 5명 중 3명은 성인용품을 소유하고 있다. 생일 선물로 편하게 건넬 만큼 일상화돼 있다고 한다. 지난 2018년 일본의 성인용품 기업 텐가(TENGA)가 한국시장을 조사한 결과, 성인용품을 갖고 있는 여성 비율이 2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성인용품이 남성만을 위한 도구란 생각을 뒤집자
성인용품이 남성만을 위한 도구란 생각을 뒤집자

유통구조 또한 뒤집을 여지가 많았다. 검증된 성인용품이 모두 해외제품인 탓에 개인이 이를 개별로 수입해 판매하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소수의 도매업자가 시장을 주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도매의 입김이 너무 강했다. 제품은 물론 상품 이미지까지 독점으로 공급했고, 심지어 쇼핑몰 구축까지 도맡았다. 성인용품을 파는 사이트 어딜 들어가도 비스무리한 사이트에, 비스무리한 이미지로 소개된 제품이 깔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당연히 소비자 선택의 폭은 줄어든다. 판매자 입장에서도 여간 난처한 게 아니다. 도매에서 한 번에 2~3000개의 제품을 떠안게 되니 제품의 특‧장점을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 결국 최종 소비자와 만나는 판매자(소매) 입장에선 자신이 무슨 제품을 파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식스티원은 이런 관행이 잘못된 정보를 양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성(姓)과 관련된 분야는 온갖 ‘카더라’와 ‘낭설’이 넘치는 영역 아니던가. 식스티원은 국내에 있는 모든 도매업자와 거래를 하되, 자신들이 스터디를 마쳐 검증할 수 있는 제품만 선택 취사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번거롭고 익숙하지 않았을 뿐, 불가능한 거래는 아니었다. 김 대표는 “처음엔 난색을 표했지만 계속 찾아가서 우리 콘셉트를 끈질기게 설명한 덕분에 성사될 수 있었다”면서 “마침 도매 입장에서도 기존의 방식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차였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뒤집기는 큐레이션(curation) 방식이다. 제품 광고가 아니라 고급 콘텐츠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취급하는 품목을 속속들이 공부했고, 이를 소개하는 글귀도 한 자 한 자에 정성을 들였다. 사진은 직접 섭외한 모델과 대여한 스튜디오에서 찍었다. 눈요깃거리로서의 비주얼이 아닌 당당함과 솔직함을 어필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담을 그릇인 홈페이지는 따로 개발까지 배워 직접 만들었다. ‘으슥한데서 몰래 파는 물건’은 그렇게 밝은 곳을 향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사명(社名) ‘식스티원’에는 뒤집기에 대한 창업 멤버들의 의지가 듬뿍 담겨있다
사명(社名) ‘식스티원’에는 뒤집기에 대한 창업 멤버들의 의지가 듬뿍 담겨있다

[Track 02] 한 달 가입자 0명…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전시회

야심차게 시작한 그들의 ‘항거’는 한 달 만에 현실에 벽이 부딪쳤다. 신생 플랫폼의 특성상 홍보가 절실했지만, 성인용품을 취급하는 쇼핑몰은 법적으로 홍보가 불가능했다. 포털 사이트나 블로그는커녕 SNS에도 글 줄 하나 올릴 수 없었다. 김대희 대표는 “오픈하고 한 달 동안 가입자가 한 명도 없더라”면서 “단순히 구경 오는 사람도 찾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온라인 홍보가 안 되면, 오프라인에서라도 하자”는 생각에 부랴부랴 론칭쇼를 기획했다. 2017년 10월 홍대 인근에 위치한 ‘디노마드’에서 개최한 론칭쇼 겸 전시회가 그것이었다. 성(姓)을 주제로 하는 아티스트의 전시물과 함께 식스티원이 엄선한 제품을 함께 선보이는 형식의 행사였는데, 이틀간 500여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그리고 이 관람객들이 모두 식스티원의 회원으로 연결됐다. “우리 취지를 알리고, 제품을 선 뵐 기회만 가질 수 있다면 활로가 보일 것”이라던 자신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행사장에서는 물론, 이후에도 조금씩 판매가 이뤄지며 매출이 생기기 시작했다. 반전의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식스티원이 세상에 알려진 순간, 홍대 디노마드 전시회 현장
식스티원이 세상에 알려진 순간, 홍대 디노마드 전시회 현장

이날의 이벤트로 뜻밖의 수확도 생겼다. “우리랑 같이 전시를 해보자” “풀파티(Pool Party)를 함께 기획해보자”는 행사 제휴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성멘토 사단법인 ‘푸른아우성’의 협업 제안이었다. 성문화 활동가로 유명한 구성애 강사가 속한 단체였다. 김 대표는 “성인용품을 양지로 끌어올려 바른 성문화 확산에 이바지한다는 우리 모토를 이해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았다”고 회상했다. 

 

[Track 03] 작품성과 흥행성을 얻은 강력한 두 방 

오프라인 행사를 통해 대중의 니즈를 확인했지만 갈 길은 요원했다. 하루에 한 개를 팔면 모두가 ‘우와’하면서 소리 지를 만큼, 매출이 들쑥날쑥했다. 멤버들은 그럴 때 일수록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식스티원의 초심은 ‘성인용품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서, 꼭 필요한 사람들이 보다 가치 있게 사용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때 초심을 아로새기기 위해 도모한 것이 바로 ‘병원과의 제휴’다. 창업 반 년 째인 2018년 3월의 일이다. 

“산부인과 영역에서 성인용품을 활용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산부인과에는 부부 성클리닉이 있고, 여기서 성인용품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국내 여성의 47%가 성 불감증에 시달린다는 논문 결과도 봤고요.”(김대희 대표)

모든 과정이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서울 시내의 모든 산부인과를 검색하고 그 중에 후보지가 될 만한 30여 곳을 추렸다. 그리곤 무작정 전화를 돌렸다. 첫 통화에서 한 마디를 듣고 전화를 끊어 버린 병원이 27곳이었고, 두 번째 통화에선 다시 두 곳이 떨어져 나갔다. 유일하게 “원장님께 전달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던 병원에서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원장님이 만나고 싶어 하신다”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병원의 원장은 성의학 박사였다. 국내 산부인과 전문의 중 성의학까지 공부한 사람은 흔치 않다고 한다. 멤버들은 쪼르르 달려가 속내를 털어놨다. 원장은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성인용품을 통해 부부 문제를 해결한 케이스까지 몇 건 소개해주며, 식스티원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는 공식 제휴로 이어졌다. 식스티원은 해당 병원에 숍인숍 개념으로 제품을 입점시켰고, 새 제품을 들일 때는 병원장의 검수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김 대표는 “병원과의 제휴 이후에 제품을 보는 안목이 넓어졌고, 제품 상세 페이지에 들어가는 내용의 전문성과 신뢰성도 훨씬 높아졌다”고 귀띔했다. 

 

식스티원과 제휴를 맺은 산부인과 병원에 설치된 제품 진열대
식스티원과 제휴를 맺은 산부인과 병원에 설치된 제품 진열대

식스티원을 한 편의 영화라고 치면, 병원과의 제휴는 작품성을 높이는 활동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달, 흥행성까지 꾀하는 활동이 이어졌다. 바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시도한 것이다. 

“요즘은 SNS에서 핫한 크리에이터들은 영향력이 엄청 나잖아요. 패션‧뷰티 쪽에서 유명한 인플루언서들을 우리 공식모델로 선정하고, 그들이 자신의 채널에서 우리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풀었죠. 수익은 러닝개런티로 하고요.”(김대희 대표)

창업 반년이 지나 처음으로 이뤄진 마케팅다운 마케팅. 이후에는 마케팅 활동을 따로 하지 않았으니 처음이자 마지막 마케팅이기도 하다. 그 효과는 쏠쏠했다. 500~1000명 사이에 머물던 사이트 회원 수가 한 달 만에 5000명까지 치솟았다. 매출도 그와 비례해 상승했다. 

 

[Track 04] 소문보다 훨씬 강렬한 ‘입소문’의 힘

식스티원은 창업 준비 단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뒤집기’ 정신으로 크고 작은 도전을 펼쳐왔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파괴력을 경험한 것은 그들의 내부 노력이 아닌, 외부에서 불어온 입소문의 바람이었다. 2018년 10월의 일이다.

나중에 확인할 수 있었던 바람의 발원지는 모 대학의 철학 수업 시간이었다. ‘성 감수성’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어떤 학생이 프레젠테이션하는 내용 속에 식스티원 사이트에 대한 소개가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골자는 ‘성에 대한 무지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성교통(性交痛)과 성 불감증을 안은 채 살고 있으며, 이를 성인용품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 이후 이 내용과 함께 식스티원의 콘셉트가 대학교 익명 게시판을 통해 돌기 시작했다. 이 대학에서 저 대학으로, 이 커뮤니티에서 저 커뮤니티로 일파만파 퍼져 나간 입소문은 곧장 식스티원의 매출로 연결됐다. 식스티원은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수 백 개의 제품을 포장해야 했다. 

“그때는 전국에서 제품 끌어 모으는 게 일이었죠. 일주일에 3000개씩 팔려나갔어요. 당시 한국에서 굉장히 핫했던 여성 성인용품 브랜드가 하나 있었는데, 국내에 남아있던 제품 전량을 우리가 소진시켰죠. 단 한 달 만에요.”(김대희 대표)

 

입소문에 힘입어 더 높은 곳으로 향하게 된 식스티원
입소문에 힘입어 더 높은 곳으로 향하게 된 식스티원

전국 여대생들의 대동단결로 회원 수는 만 명을 훌 쩍 넘어 2만 명 가까이 증가했다. 창업 1년 동안 차곡차곡 모은 회원 수의 두 배가 한 달 만에 달성된 것이다. 매출 역시 그에 비례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바람은 방아쇠에 불과했다. 바람이 폭풍으로 번질 수 있었던 힘은 여성 고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했던 그 간의 발자취로부터 비롯됐다. 

식스티원은 지금도 매일 수많은 해외 기사를 찾아보고, 외국에서 뜬다는 제품이 있으면 열 일 제쳐두고 수소문해 직접 확인한다. 초기 바람대로 단순 제품 판매가 아닌, 성(姓)과 관련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콘텐츠 작업도 추진 중이다. 그 사이 성인용품 시장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식스티원의 성공이 도매업계에서 꽤 유명세를 떨친 덕분에, 제품을 선택 취사하는 방식으로 계약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심지어 콘셉트를 똑같이 차용해 오픈하는 곳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식스티원은 개의치 않는다. 아니 오히려 반기는 배포까지 보여준다. 

“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뒤집고 싶다고 시작한 일이잖아요. 그건 우리처럼 생각하는 업체가 많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과도 같아요. 그런 면에서 우리의 콘셉트를 따라하는 업체들이 자꾸 생겨난다는 건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웃음)”(김대희 대표)

 

[epilogue]

지난해 예상치 못하게 큰 수익을 거뒀던 식스티원은 12월 한 달 간 매출 전액의 10%를 기부하는 계획을 세웠다. 연말이 되어, 생리대 지원 활동을 하고 있던 여성단체에 기부를 하려 했으나 무려 두 군데서 거절당했다. “성인용품을 팔아서 번 돈은 받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성인용품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식스티원은 여성가족부로부터 세 번이나 경고를 받기도 했다. 성인용품 사이트는 청소년 유해매체이기 때문에 제품의 사진을 직접 노출할 수 없다는 이유다.(현재 식스티원 사이트에 들어가면 바로 제품 사진이 보여지고, 제품을 클릭하면 성인인증 화면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성인용품 사진이 버젓이 노출되는 포털 사이트는 별다른 제재가 없다. 미국의 경우, 성인용품 사이트는 화장품이나 의류 같은 소비재 쇼핑몰과 똑같이 취급된다. 성인용품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 올리겠다는 식스티원의 포부는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사진: 식스티원 제공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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