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여가로 행복한 그날까지, ‘프렌트립’
온 국민이 여가로 행복한 그날까지, ‘프렌트립’
2019.09.04 13:16 by 이창희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언제부터인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트렌드다. 손에 잡히지 않는 부와 명예를 쫓기 보단, 한줌뿐일지라도 오롯이 나만의 시간과 경험을 우선순위에 두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끊임없이 성공을 추구하라’고 재촉하는 자본주의에 피로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막연히 쉬고 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같은 시간을 소비하더라도 진정으로 ‘삶의 질’을 높이려면 이 또한 그 나름의 노력이 필요할 터. 그런 노력에 소모할 여력이 없는 우리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스타트업이 여기 있다. 모두가 ‘잘 쉬고 잘 노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판을 깔고 독려하는 ‘프렌트립’을 만나보자.

 

임수열 프렌트립 대표.
임수열(사진) 프렌트립 대표.

| 꿈을 결정하는 건 경험이다

프렌트립은 설립 6년차를 맞는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갖가지 여가 활동을 즐기고 경험을 공유한다. 혼자서 하기 어렵거나 함께하면 더욱 즐거운 취미,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활동 등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모여든다. 그리고 프렌트립은 이들을 서로 연결하는 만남의 장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임수열(34) 프렌트립 대표는 사람들과 모여서 노는 것 자체에 별 흥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 흔한 여행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된 걸까.

때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대 중반의 나이였던 임 대표는 봉사활동을 위해 태국으로 날아갔다. 3주 동안 머무르면서 척박한 곳에서 건물을 보수하고 열악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돌봤다. 뭐든 눈에 보이는 대로 열심히 했다. 그런데 서구권 국가에서 온 대학생 봉사자들은 조금 달랐다. 최소 몇 달씩 기약도 없이 머무르면서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더러운 물을 어떻게 식수로 만들 수 있을지, 부족한 의료품을 어떻게 조달할지 등을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태국에서 봉사활동 당시의 임 대표.
태국에서 봉사활동 당시의 임 대표.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저에겐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시키는 것만 하기에도 급급했는데, 그들은 냉철하게 문제를 직시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몰두했어요. 그들 중 여럿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가로 성장했죠. 그때 느꼈습니다. 경험의 폭이 사람의 꿈을 결정한다는 것을.”(임수열 대표)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학교를 가고 취업을 하며 결혼을 한다. 아이를 낳고 육아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중년이다. 그 과정에서 여유를 갖기란 어렵고,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컨설턴트로 일했던 사회초년생 시절 그가 가장 문제라고 느낀 것이 바로 이 대목이었다. 모두가 청춘을 바쳐 열심히 일할 줄만 알았지 퇴근 이후 ‘자기만의 시간’에 인색했다. 업무에 지친 이들은 그저 쉬는 데 바빴고, 다시 일할 힘을 얻을 동력원을 찾아내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번 아웃(Burnout syndrome)’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욱 큰 문제는, 정작 그게 문제라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사회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들이 있지만, 그 해답의 시작은 개개인이 누리는 삶의 질부터 개선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죠. 어느 날 문득 저에게 던져진, 꼭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것이었어요.”(임수열 대표)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은 피곤하지만 여가를 즐기지 못한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은 피곤하지만 여가를 즐기지 못한다.

| 놀고 싶지만 망설이는 이들을 한 자리에

문제의식은 뚜렷했지만 방법론은 막연했다. 일단 뭐가 됐든 사람들이 놀 수 있는 판을 깔아보자는 생각만 갖고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으면서도 특색이 분명한 놀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프렌트립’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가 만들어졌다. 첫 개시는 무더위가 한창이던 2013년 7월이 진행됐다. 강원도 삼척 장호항에서의 스노클링 여행이 첫 번째 테마였다.  2030을 대상으로 페이스북과 네이버 카페를 통해 대대적인 홍보를 벌였다. 참가비 3만5000원으로 왕복 버스 편과 제철 향토음식으로 꾸려진 점심식사, 스노클링 장비까지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정원 40명이 하루 만에 모집됐고, 때를 놓쳐 다음 이벤트를 요청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임 대표는 곧바로 이에 부응했고,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달 20개가 넘는 이벤트가 생겼다. 이 많은 이벤트를 혼자 도맡을 수 없게 된 임 대표는 호스트제를 도입했다.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호스트를 섭외해 그를 중심으로 이벤트를 설계하고 사람들을 모집하는 방식이었다.

 

강원 삼척 장호항에서의 스노클링.
강원 삼척 장호항에서의 스노클링.

주중에는 달리기나 자전거 라이딩, 주말에는 등산과 스노클링 같은 이벤트가 줄줄이 이어졌다. 임 대표는 “뭔가 해보고 싶은 것은 많은데 쉽게 용기 내지 못하는 대중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초반 수익이 크지 않음에도, 밀어붙일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그리고 그해 12월, 여행업으로 정식 법인 등록을 마쳤다.

물론 탄탄대로만 걸었던 건 아니다. 당시만 해도 참가비만 받고 잠적하는 ‘먹튀’ 온라인 이벤트가 횡행했던 때였다. “순진한 사람들 모아 새우잡이 원양어선 태우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공신력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

임 대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마련했다. 이벤트마다 여행자보험을 필수로 가입했고, 호스트의 과거 이력과 신상을 꼼꼼히 확인하기 위해 팩트체크 팀을 따로 만들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불미스런 사례도 발생하지 않았고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호스트들이 먼저 찾아오는 분위기도 만들어졌다. 유저들이 낸 이벤트 참가비가 수수료를 제하고 모두 호스트에게 전달되는 만큼 호스트의 재량은 큰 편. 각각의 이벤트에서 호스트가 구심점 역할을 하지만, 이들에게 뭔가 대단한 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임 대표는 “호스트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이끌어 주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필리핀 세부 헬멧다이빙.
필리핀 세부 헬멧다이빙.

| 보다 더 많은 이들의 ‘즐길’ 권리를 위해

즐기고 싶은 욕구를 시장성으로 탈바꿈시킨 프렌트립. 하지만 거침없어 보이던 행보는 3년 만에 조금씩 한계를 드러냈다. 대한민국은 생각보다 좁았고, 아웃도어 중심의 이벤트는 점차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 변화를 통한 확장성이 필요했다.

때마침 프렌트립의 여성 유저 비율이 치솟고 있던 시점에서, 첫 번째 변화가 감행됐다. 아웃도어 중심의 이벤트를 전시·공연·공예·문예 같이 일상적 라이프스타일에 바탕을 둔 이벤트로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이를 위해 2016년 3월 ‘프립’이라는 이름의 어플리케이션도 출시했다.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소소하지만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호스트들이 몰려들었다. 다함께 작은 전시를 관람하고 감상을 나누는 활동부터, 작은 일상 소품을 만드는 활동까지, 사람들이 모이면 무엇이든 이벤트가 됐다. 심지어 2시간 동안 나이불문 서로 경어를 쓰지 않는 ‘수평어 프립’도 생겼다.

 

레진 악세사리 공예 프립과 루프탑 요가 프립.
레진 악세사리 공예 프립과 루프탑 요가 프립.

프렌트립의 다음 목표는 해외 진출이다. 다른 스타트업처럼 해외에 서비스를 출시하는 게 아니라, 이벤트의 장을 해외로 넓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서핑이나 열차를 통한 시베리아 횡단 등이다. 로컬 호스트를 섭외하고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하여, 각종 변수를 상수로 만드는 것이 남은 과제다.

“지금까지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느낀 건,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경험에 목말라있고 그것의 실현을 통해 내적·외적으로 발전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삶을 바꾸는 방법은 결국 경험이 아닐까요.”(임수열 대표)

 

/사진: 프렌트립

 

필자소개
이창희

부(不)편집장입니다. 편집을 맡지 않았으며 편집증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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