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바람 났던 소년은 어떻게 연쇄창업가가 됐나
신강식 파파타랩스 대표 인터뷰
춤바람 났던 소년은 어떻게 연쇄창업가가 됐나
2021.09.07 16:00 by 최태욱

[業클로즈앤퍼스널]은 창업을 향한 인생의 여정을 보다 친근하고 내밀하게 따라가면서, 그 속에 숨은 기업가정신의 본질을 발견해보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세상의 변화가 점점 가팔라진다. 기술의 발전이 기존의 것들을 빠르게 와해시키며 규범과 질서를 재편하고, 문화와 가치를 재창조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 변화는 그보다 조금 느리다. 혁신의 시대에도 새 길의 불확실성보단 옛 길의 안정성을 선호한다. 20세기 말 자기계발서에서 외치던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구호가 여전히 헛헛하게 들리는 이유다.

하고 싶은 일을 직업 삼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안정적인 것에 밀리고, 남들과의 비교에 치이며, 사회의 시선에 재단된다. 심지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조차 버겁다. 직장인 5명 중 2명은 전공과 상관없는 곳에서 일하며,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40대 1에 육박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어쩌면 마음이 동하는 일을 찾고, 그 속에서 보람을 일구며 사는 삶은 천운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신강식 파파타랩스 대표는 행운아다. 삶의 선택지를 받아 든 순간순간마다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기준에만 충실했고, 그 선택들은 고스란히 성취로 이어지며 무대를 조금씩 넓혔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그 상상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그의 창업 도전기는 그 자체로 기업가정신의 진화와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신강식(사진‧오른쪽) 파파타 랩스 대표
신강식(사진‧오른쪽) 파파타랩스 대표

| 상상을 현실로…그 무대의 막이 올랐다 
신강식 대표는 디자인 에이전시 ‘파파타팩토리’와 PPT 템플릿 판매‧공유 플랫폼 ‘파파타랩스’를 직접 창업해 운영하는 기획‧디자인 전문가다. 지난 8년 간 정부‧지자체, 대기업, 대학, 스타트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고, 블로그와 출판, 강의 등으로도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다. 기획서‧제안서의 묵직한 쓰임새나 그 지난한 작업 과정을 생각하면, 꽤나 규격화된 이미지의 인물이 연상되지만 정 반대다. 오히려 ‘격’보단 ‘파격’에 가깝다. 그 이미지를 대번에 알 수 있는 키워드가 바로 ‘춤’이다.

학창시절 신 대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아이였다. 내성적인데다 연약했다. 어른들이 “사람 구실하겠냐”고 끌탕할 정도였다. 매사 쭈뼛쭈뼛하던 아이가 처음으로 의욕을 품게 된 게 바로 춤이었다.

“중학교 축제 때 친구들이 춤추는 걸 봤어요. 뭔가 뜨거운 게 불쑥 올라오더라고요. 남들 앞에서, 저렇게 화려하게… ‘나도 하고 싶다’는 거였죠. 그때부터 틈날 때마다 연습했어요. 전혀 지겹거나 힘들지 않더라고요.(웃음)”

남몰래 갈고 닦은 춤 실력은 소풍 장기자랑에서 폭발했다.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반 친구들은 물론, 다른 반에서도 우르르 몰려와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자고 일어나니 인기스타가 돼 있었다. 쉬는 시간의 교실 한 켠, 방과 후의 운동장 한 구석은 늘 댄싱교습소가 됐다. 갑작스런 친구들의 주목은 부담이 아니라 자신감으로 다가왔다. 신 대표는 “그때부터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완전히 변했다”면서 “소풍 장기자랑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셈”이라고 했다.

하고 싶은 걸 비로소 찾은 자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고교입학 후 정식 댄스팀을 발족했고, 전국을 돌며 무대를 꾸몄다. 지역 대회를 넘어 전국 단위의 대회까지 휩쓸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학교는 물론, 지역 문화정책과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지역 내 재능들이 몰려들었다. 심지어 초등학생 연습생도 있었다. 팀원은 금세 50명 넘게 불어났다. 요즘 연예기획사의 틀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운영방식이었다.

“따로 연습실 구해서 전신거울 대고, 달걀판 붙이고, 그래피티(Graffiti) 같은 것도 직접 했어요. 실제 (연습실)운영도 우리가 다했죠. 외부 무대가면 공연비를 주는데, 공연 제의가 계속 들어오니까 유지가 되는 거예요. 내가 머릿속으로 구상한 게 실제로 돌아가는 걸 경험한 것은 정말 큰 자산이에요. 어쩌면 제 인생의 첫 창업은 이미 그때 이뤄졌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신대표가 이끌었던 댄스 팀의 공연장면
신대표가 이끌었던 댄스 팀의 공연장면

| 선택하라…그리고 그 선택을 믿어라
신 대표의 춤바람은 대학 때까지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 바람을 멈춘 건 결국 국방시계였다. 무사히 군 복무를 마쳤지만 쉽사리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춤에 빠져 사느라 학과 공부를 등졌던 그에게 복학은 미지의 세계처럼 두려운 것이었다. 향후 유망하다는 이유로 택했던 ‘컴퓨터 공학’은 예체능 쪽 재능이 뛰어난 신 대표에겐 맞지 않는 옷에 가까웠다.

시간도 벌 겸 잠시 일을 도왔던 외삼촌의 회사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되었다. 처음 춤을 출 때 느꼈던 바로 그 설렘. 하고 싶은 걸 발견한 것이다. 외삼촌은 광고회사를 운영 중이었다. 자연스레 여러 형태의 광고를 접했고, 금세 그 매력에 흠뻑 빠졌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한 전문대 광고홍보학과에 새로 입학했다.

“학교가, 공부가 이렇게나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여기가 내 세상이구나’ 싶었죠. 난생 처음 공부 잘한다는 소리도 제법 들었고요. 계속 장학금 받고 다녔으니까요.”

 

각종 공모전의 상패들이 신강식 대표의 풍성했던 대학시절을 잘 보여준다.
각종 공모전의 상패들이 신강식 대표의 풍성했던 대학시절을 잘 보여준다.

신 대표가 광고에 흠뻑 빠졌던 이유는 자유롭게 상상하고 그걸 구현해내는 기획의 즐거움이 컸기 때문이다. 졸업 후 제작 현장을 마다하고, 광고대행사를 택했던 이유도 그래서다. 입사예정이었던 대행사가 마침 산하의 프로모션 플랫폼을 신규 론칭하던 때라 신 대표의 실전 갈증을 풀기에도 제격이었다. 크고 작은 공모전이나 오프라인 이벤트, 국제컨퍼런스 등을 기획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규모가 크지 않은 조직인데다 워낙 초반에 참여하다보니 별의 별 일을 다하게 됐어요. 행사 기획도 하고, 사이트도 만들고, 심지어 현장에 현수막도 직접 달았죠. 잘 몰라도 그냥 해보라면 하는 거죠.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웹 기획서 200장짜리를 공부해가면서 쓰곤 했었으니까요.(웃음)”

밤새는 게 예삿일로 여겨질 정도의 고행이 이어졌지만, 신 대표에겐 모든 게 흥미로웠다. 오히려 대학에 편입해 모자란 공부를 따로 채울 정도로 열의를 불태웠다. 신 대표는 “책임감이나 주인의식 있다는 말을 꽤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이미 나중에 내 사업을 한다는 걸 염두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파워포인트 기획‧디자인과 친해지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기획서 쓰는 게 일상인 분위기에서 ‘조금 더 멋지게’, ‘조금 더 전략적으로’ 보이고 싶었던 욕구가 시작점이었다. 잘된 기획서를 한 땀 한 땀 따라 만들다보니, 어느새 자신 만의 내공이 쌓였고 ‘이왕 하는 거 공유하자’는 심정으로 블로그에 올리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광고대행사 시절의 신 대표. 당시의 고생스런 경험들은 고스란히 그의 창업 밑천으로 축적됐다.
광고대행사 시절의 신 대표. 당시의 고생스런 경험들은 고스란히 그의 창업 밑천으로 축적됐다.

바닥부터 다졌던 5년은 그가 가진 열정과 잠재력의 크기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 대기업 계열의 플랫폼 회사으로부터 받은 스카우트 제의가 이를 증명한다. 당시 신 대표는 꽤 심각한 수준의 ‘번 아웃’을 경험했다. ‘메니에르병’(난청, 어지럼증, 이명, 이충만감 등을 동반하는 질환) 판정을 받아 병원 신세를 질 정도였다. 어찌됐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이다.

그는 고민 끝에 이직을 택했다. 큰 기업의 시스템을 경험하고, 자신이 가진 경쟁력의 크기를 가늠하는 마지막 시험대였다. 그리곤 1년도 채 되지 않아 훌쩍 회사를 나왔다. 이유는 명징했다. 언제나 그렇듯, ‘하고 싶은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조직일수록 체계가 튼실하죠. 그 체계 속에서 허둥지둥하면서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딱히 배우고 싶거나 존경하고 싶은 윗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작은 조직에서 억척스럽게 수많은 경험을 쌓았고, 큰 조직에선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경험하고 나니 ‘이제 때가 왔다’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내 사업을 하려거든 바로 지금이다’라는 직감 같은 거였죠.”

 

| ‘거스트패밀리’부터 ‘MIC’까지… 시도하는 삶의 즐거움
신강식 대표는 새로운 시도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이다. 그 시도 속에는 언제나 ‘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고, 이를 매조지해내는 끈기도 있다. 그래서인지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낸 자신만의 브랜드도 여럿 있다. 이는 그 자체로 그가 가진 기업가정신의 편린이자 상징이다.

시초는 역시 그가 고등학교 때 만든 댄스팀 ‘거스트패밀리’다. 문자 그대로 그의 삶에 ‘돌풍’을 몰고 온 브랜드다. 신 대표는 “최초로 무언가를 성취했던, 내 인생 가장 소중한 경험”이라고 설명한다. 숱하게 섰던 댄스 무대에서 그는 주저함을 버렸고 자신감을 완성했다.

두 번째 브랜드는 ‘SB22’다. 댄스 팀 활동 당시 그래피티의 재능을 발견하고, 이를 비즈니스로 승화시킨 케이스다. 흰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 넣고 판매하는 일종의 커스텀 티셔츠 제작 서비스였다. 외삼촌 회사에서 일할 때 부업삼아 했었던 활동. 신 대표는 “싸이월드 채널 같은 곳을 통해 주문이 들어오면 밤새 수작업으로 만들었다”면서 “하루 4~5장 정도 그렸는데, 덕분에 당시 꽤 풍족함을 누리며 살 수 있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SB22의 커스텀 티셔츠. 당시는 운동화가 유행했던 시절이라 주로 신발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SB22의 커스텀 티셔츠. 당시는 운동화가 유행했던 시절이라 주로 신발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여행대학’도 신강식 대표의 도전사에 한 획을 그었던 브랜드다. 마지막 직장생활을 끝으로 창업을 구상하며 두문불출할 당시 죽마고우와 함께 빚었던 작품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일주에 도전한 12명의 여행가와 함께, 여행의 참 의미와 새로운 방식 등을 청년들과 공유하는 프로젝트였다. 전 세계를 돌며 김치를 알린 류시형 셰프, 세계일주에 그림을 덧댄 김물길 작가, 말을 타고 몽골을 횡단하며 이를 영화화하기도 했던 이동진 파일럿 같은 괴짜들이 멘토로 합류하며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TV나 신문 같은 주요 매체에 소개되면서 여행업계에서 수많은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여행대학은 신 대표에게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신강식 대표는 “자기만의 기준으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분들, 그런 사람들과 호흡하려는 젊은 열정들, 이를 비즈니스 가치로 일구려는 기업 오픈이노베이션 담당자들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여행대학 멘토단과 함께. 첫줄 맨 왼쪽이 신강식 대표다.
여행대학 멘토단과 함께. 첫줄 맨 왼쪽이 신강식 대표다.

이러한 경험과 네트워크를 자양분 삼아 탄생한 신 대표의 메인 브랜드가 바로 ‘신프로’와 ‘파파타’다. 광고대행사 시절부터 기획서 삼매경에 빠진 신 대표는 ‘신프로의 닥치고 파워포인트’ 블로그를 오픈하며, 자신의 기획‧디자인 시안을 외부에 공개했다. 좋은 기획서를 벤치마킹하며 실력을 키웠던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는 의미였다. 문서작성 스킬이나 디자인, 깨알 팁 등을 올렸던 블로그는 금세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신 대표는 “많은 직장인들에게서 ‘내 블로그를 켜고 일과를 시작한다’는 격려의 메일을 많이 받았다”고 귀띔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출판업계에서 그런 소문을 간과할리 없었다. 그렇게 탄생한 저서 ‘신프로의 쉽고 빠른 파워포인트 디자인’은 이미 5쇄까지 찍으며 해당 분야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신강식 대표의 저서 ‘신프로의 쉽고 빠른 파워포인트 디자인’은 해당 분야의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신강식 대표의 저서 ‘신프로의 쉽고 빠른 파워포인트 디자인’은 해당 분야의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파파타’ 브랜드는 본격적인 창업의 장(場)이다. 에이전시의 개념인 파파타팩토리, 교육‧강의 창구인 파파타스쿨, 판매‧공유 플랫폼인 파파타랩스로 이어져 온 일련의 과정은 모두 문서 기획 및 디자인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과정이자 결과다. 특히 1년 반 이상의 개발 과정을 거쳐 지난 4월 론칭한 파파타랩스는 ‘긱 경제(Gig Economy)’ 시대의 효과적인 업무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신강식 대표는 “파워포인트 탬플릿을 구매하는 사이트는 이미 많지만, 꼭 하나를 꼽으라면 떠올릴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면서 “지난 8년 간 민관학의 사업계획서, 투자제안서, 회사소개서 등을 기획‧제작한 경험과 전문성, 업무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파워포인트 플랫폼의 잇(IT) 브랜드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PPT 판매‧공유 플랫폼인 ‘파파타랩스’의 메인화면
PPT 판매‧공유 플랫폼인 ‘파파타랩스’의 메인화면

신강식 대표의 시도는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지난 7월말에는 ‘MIC(make it count)’라는 골프 브랜드를 론칭하며 브랜드 수집광으로서의 면모를 한껏 뽐냈다. 취미로 골프를 즐기면서 ‘나만의 골프 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바람이 10개월 만에 결실을 맺은 것. 신강식 대표의 상상은 그렇게 하나하나 현실이 되고 있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게 제 삶인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서 ‘번 아웃’됐다 살아나는 경우도 부지기수지만, 몸이 아픈 것 보다 의욕이 꺾이고 정신이 지루해지는 게 더 참기 힘들더라고요. 계속 그렇게 살지 않을까 싶네요. 시도하는 삶에서 의미를 찾아가면서 말이죠.(웃음)”

 

지난 7월 신강식 대표가 론칭한 골프전문 브랜드 ‘MIC(make it count)
지난 7월 신강식 대표가 론칭한 골프전문 브랜드 ‘MIC(make it count)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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