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첫 직장은 국내 재계 순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였다. 이후의 행보도 화려했다. 유명 증권회사에서 잘나가는 애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는가 하면, 국책은행의 기업금융 부서에서 활동하며 수백 개 기업의 돈줄을 쥐락펴락하기도 했다. 당시에 대해 그는 “거대 기업을 하루아침에 문 닫게 할 수도 있었던 시절”이라고 회상한다.
차곡차곡 쌓여가던 엘리트의 커리어는 사회생활 10년 차에 툭 끊어졌다. 자본주의의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스스로 내려온 그는 돌연 작은 스타트업 하나를 꾸렸다. 그 회사의 이름은 바로 ‘와디즈’. 우리나라 크라우드 펀딩의 토양을 만든 바로 그 플랫폼이다. 지난 2012년 와디즈를 설립한 신혜성 대표는 은행을, 그리고 기업을 너무 잘 알게 되니 더 이상 은행에 머무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금융이 돈을 어디에 얼마나 주는지에 따라 세상이 굉장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일을 증권사나 은행에서는 제대로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내가 ‘좋은 기업’이라고 믿는 회사에 돈이 돌게 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신혜성 대표, 2015년 필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그의 출사표가 꽤나 근사하게 들리는 건, 우리가 이미 와디즈의 성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인지도로 보나, 누적 중개 금액으로 보나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불과 십 년 만에 맨땅에서 일궈낸 성과. 개념조차 모호했던 크라우드 펀딩을 대중화시켰다는 점 역시 의미있는 성취다.
다시 시계를 돌려보자. 2015년. 와디즈가 어렵사리 비즈니스의 기틀을 다져갈 무렵. 앞으로 이들이 이뤄나갈 거대한 성취를 도저히 예측할 수 없던 시절. 신 대표의 출사표를 들으며 필자가 처음 떠올렸던 한 단어는 바로 ‘굳이’였다.
“어렵사리 꿈의 직장에 들어가 놓고 굳이?”
“능력 인정받으며 엘리트 코스 밟고 있는데 굳이?”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데 굳이?”
신혜성 대표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머릿속 한 귀퉁이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다. 그의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렸던 건 결코 아니다. 그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그가 품은 비전에도 충분히 감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 굳이?’라는 두 글자를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프로그래밍 됐기 때문이다. 초중고 시절만 따져도 무려 12년, 우린 그 오랜 세월을 좋은 대학과 안정된 직장이라는 키워드를 아로새기며 살아왔다. 세뇌에 가까운 학습. 자연스레 개개인의 욕망은 사회적으로 검증된 욕망 속으로 편입됐고, 방향감각을 잃은 자들은 그저 앞서가는 사람의 뒤통수만 쳐다보며 달음질한다. 사실 신혜성 대표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기업과 은행은 사회적으로 검증된 욕망의 아이콘이다. 그런데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먼 산을 바라보는 거다. 그가 특이하고 유별나며, 심지어 ‘반골’로까지 보이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