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시간에 다같이 텔레비전 보는 날?!
동료 여러분,
피지 럭비팀이 내일 금메달을 위한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멋진 이벤트를 다 함께 즐기기 위해 수바 본부, 그리고 타 지부의 유니세프 사무소는 오전 10시부터 10시 반까지 업무를 잠시 중단할(suspend) 예정입니다. 피지블루 색깔의 옷을 입고 다같이 (TV를 보며) 응원을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 피지가 이기리라 100% 확신하고 있으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겠습니다!)
Go Fiji! Toso Viti Toso! ('Go Fiji'를 피지어로 옮긴 말)
어느 날, 회사 메일 계정으로 전체 메일이 날아왔습니다. 메일에는 위와 같이 적혀있었습니다. 2016년 올해 열렸던 리우 올림픽에 '럭비' 종목이 추가되었고, 피지팀이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번에 우승을 하게 되면 피지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이었고, 피지 국민들이 사랑하는 럭비 종목 인만큼 그 '첫'의 의미가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피지 사람들이 애정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 럭비경기를 함께 관람할 생각에 무척 들떴습니다. 하던 업무에 대한 생각도 잠시 내려놓고 사람들이 어떤 에너지를 발산할지 기대도 되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사무실 사람들은 쉬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습니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노래 부르고, 북을 치고, 자동차 경적을 울리면서 엄청난 기쁨과 흥분을 표했습니다. 피지 국기로 몸을 둘러싸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 피지 국기를 달고 빵빵거리며 달리는 택시들까지. 그 분위기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춤을 추며 저 또한 피지의 승리를 기뻐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경기를 하는 30여분 간은 거리에서뿐 아니라, 상점∙은행∙병원에서조차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제가 지낸 6개월의 시간 중 가장 정적이었고, 또 동시에 가장 역동적이었던 피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우승 당일, 피지 정부는 럭비 국가팀이 입국하는 8월 21일 다음날, 즉 22일 월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럭비를 사랑하는 마음이 개개인의 수준을 넘어서 국가적인 그 무엇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저는 피지 사람들의 행복에 또 다른 행복의 이유를 더해준 그 날에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고,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하나의 옷가게에 두 가지 컨셉?
피지 여기저기에 있는 Jack's라는 프렌차이즈 옷가게 유리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두 스타일의 옷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스타일의 옷을 들여놓는 이유는 피지의 인구 구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본토에서 살았던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iTaukei(이타우케)가 총 인구의 56%,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 당시 넘어와 정착한 인도계(Indo-Fijian, 인도피지언)가 37.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數)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서로 다른 두 인종이 각자 고유의 문화를 일정 부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 바로 '피지'입니다. 그래서 인종에 따라 서로 옷 입는 스타일이 다르고, 한 가게에서 두 가지 스타일을 구경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피지에서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피지에 가기 전부터 궁금했던 부분이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먹을 수 있습니다. 특히 신라면, 안성탕면, 너구리, 우동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라면 종류는 큰 마트에서 팝니다. 그러나 한 번 수량이 빠져나가면 다음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제 동료들은 특히 신라면을 좋아했고, 유니세프 사무소 앞에 있는 주유소 마트에서도 신라면 컵라면을 팔아 종종 함께 먹고는 했습니다.
수바 시내엔 의외로 한국 식당도 여럿 있습니다. 제가 가본 곳만 해도 Martha's Fine Food(푸드코트), 서울식당 그리고 다경까지 3곳이나 됩니다. 강남스타일과 코리안 하우스라는 곳도 있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특히 비빔밤과 한국식 바비큐를 좋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떡볶이를 팔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기계로 떡을 뽑는 분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 분이 이사를 가시면서 떡 자체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오자마자 처음으로 먹은 것이 바로 떡볶이였답니다!
먹는 것이 곧 남는 것, 그렇다면 피지에서는?
만약 "피지 음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왠지 맥주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안주로 먹었던 것 중에서는 카사바칩과 달로집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카사바는 고구마와 비슷한 정도의 굵기이고, 겉 껍질은 갈색 그리고 속은 하얀색입니다. 달로(혹은 타로)는 뿌리 식물로, 먹어보면 마와 고구마 중간의 맛이 나지만 그 종류가 다양하여 단맛이 강한 것부터 거의 없는 것까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공차를 예로 들어보면 토핑으로 추가해서 먹는 타피오카 펄은 카사바를 이용해 만든 것이고, 메뉴에 있는 타로 스무디가 달로를 이용한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밥을 먹듯, 피지 사람들은 카사바와 달로를 주식으로 먹습니다. 그런데 그 둘은 탄수화물 함량이 높고 칼로리가 높아, 많이 먹을 경우 영양 불균형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때문인지 피지인들 중 몸집이 크고, 비만인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반 요리로 따지면, 코코넛 밀크를 활용한 요리들이 떠오릅니다. 흰 살 생선을 깍둑썰기 해서 라임과 코코넛 밀크에 살이 쫀쫀할 때까지 절여 먹는 코콘다는 꼭 먹어보아야 할 음식 중 하나입니다. 코코넛 잎을 활용하는 음식도 있는데요. 땅을 파서 바닥에 뜨겁게 달군 돌을 채운 후, 그 위에 야자수 잎으로 싼 고기와 각종 야채를 넣습니다. 그리고 돌에서 나오는 열기로 익히면 '로보'가 완성이 됩니다. 코코넛 잎으로 쌀 때에 코코넛 밀크를 넣기도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코코넛 향이 훨씬 진하게 베어 들겠지요?
아직 못다한 소소한 이야기들
가장 기억에 남는 메시지, "Be Happy"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같은 나라에 대해서라도 사람마다 다른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사이클론과 그에서 기인한 어려움 때문에 제게 있어 피지의 첫인상은 '혹독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피지의 더 많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상처를 치유해가는 피지의 자연 경관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며 긍정적인 에너지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우중충했던 하늘보다, 눈이 시리게 푸르던 피지의 하늘이 더 먼저 떠오릅니다.
피지 공항 혹은 호텔에 가면 귀에 꽃을 꽂고 있는 피지인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관광객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평소에도 사람들은 귀에 꽃을 꽂고 거리를 걷고, 출근을 하고 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 날은 직장 동료에게 오늘 왜 꽃을 꽂았냐고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을 하더군요: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
행복, 행복이란 대체 뭘까요? 저는 지금도 이 물음에 명확하게 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피지에서 6개월간 사람들과 살아가며 느낀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그 행복이라는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배움은 피지에서의 시련과 좌절을 값지게 만들었고, 그 시간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저의 행복을 찾아 가게 될 인생에 여정에서 또 여러분들의 여정에서, 다시 한번 피지를 만나게 되기를 바라며…….
/사진: 이자영
UN 희망원정대 네팔, 우즈베키스탄, 몽골, 가나, 피지, 스리랑카. 이 여섯 나라에서 활동하는 UN 봉사단 청년들이 현지에서의 활동과 생활을 고스란히 글과 사진에 담았습니다. 각자가 속한 UN 기구에서의 이야기와 함께 그곳의 사회와 문화, 여행정보 등 6개월 동안 보고 겪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