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드’의 롤러코스터 행보 통해 본 스타트업의 ‘캐즘’ 현상
‘스레드’의 롤러코스터 행보 통해 본 스타트업의 ‘캐즘’ 현상
2023.08.04 15:55 by 최태욱

요란법석하게 스타트를 끊었던 ‘스레드(Threads)’의 열기가 시들해지는 모양새다. 출시 닷새 만에 가입자 1억 명을 넘기곤, 이후 열흘 만에 70%가 이탈하는 롤러코스터 행보다. 이쯤 되니 데자뷰처럼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지난 2020년 마치 불나방처럼 스쳐지나간 ‘클럽하우스’다.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그만큼 빨리 식어버렸다. 

신선함이나 호기심일수도 있고, 일종의 ‘포모’(FOMO‧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현상일수도 있을 게다. 초반 돌풍의 이유가 무엇이든, 그렇게 형성된 관심이 대세로 굳어지지 못하는 것은 초기 수용자와 주류시장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 이른 바 ‘캐즘(Chasm‧지질학 용어로 지각의 단절을 뜻함)’ 이론이다. 

미국의 기업 컨설팅 전문가 제프리 무어 박사가 주창한 캐즘 이론은 벤처시장, 요즘으로 치면 기술 스타트업의 유별난 행보를 잘 설명해주는 패러다임이다. 뭔가 ‘신박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새롭게 등장했을 때 소위 ‘얼리어댑터’가 주축인 초기시장에선 열렬히 환영받지만, 일반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주류시장에선 인기가 시들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양 시장 사이에 캐즘, 즉 균열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대신 균열을 잘 극복해내면 새로운 시장 하나가 뚝딱 만들어진다. 김치냉장고가 그랬고 디지털카메라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초반 돌풍이 주춤해진 스레드, 캐즘에 빠진 것일까?(사진: AdriaVidal/Shutterstock.com)
초반 돌풍이 주춤해진 스레드, 캐즘에 빠진 것일까?(사진: AdriaVidal/Shutterstock.com)

스타트업 필드의 캐즘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는 ‘메타버스’다. 지난 2020년부터 약 2년 간, 해당 키워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산업계 전반에 침습했다. 빅테크 기업이나 유통계의 공룡들은 저마다 특화된 메타버스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해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이러한 경향은 비교적 초기 단계의 기업들에게도 빠르게 확장됐다. 실제 취재 현장에서도 업(業)의 벨류체인 내에 메타버스를 덧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예 가상·증강현실(VR·AR) 기술을 전면에 내세운 본격 메타버스 스타트업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팬데믹이라는 구름이 걷히며 시야가 밝아지고 나니 실제 알맹이가 다소 묘연한 인상이다. 그나마 이름이라도 기억나는 곳은 네이버의 ‘제페토’ 정도. 메타버스 생태계를 표방하며 우후죽순 등장했던 플랫폼들이 단체로 캐즘의 골짜기에 빠진 꼴이 됐다. 전문가들은 “혁신성의 여세를 주류시장으로 오롯이 이어갈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쉽게 말해 대중에게 먹히는 ‘한 방’이 없다는 얘기다. 그 사이 메타버스는 아주 조용히 우리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82를 기록했던 메타버스 검색량은 올해 같은 달 35로 급감했다.(구글트렌드, 검색량에 따라 100~0으로 책정) 

 

캐즘이론의 생애주기. 초기시장과 주류시장 사이에 단절을 확인할 수 있다.
캐즘이론의 생애주기. 초기시장과 주류시장 사이에 단절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명품플랫폼들이 고전하는 이유도 캐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실 값비싼 명품을 클릭 몇 번으로 구매한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일종의 심리적 저항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호감도 높은 셀럽을 활용한 공격적인 마케팅과 온라인 특유의 극대화된 편의성은 주효했고, 이내 새로운 명품 소비채널로 안착하는 듯 했다. 

문제는 명품 구매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수 있는 신뢰 획득에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품 및 유인 판매 같은 이슈가 대표적이다. 부정적인 이슈가 쌓이면서 처음 의구심을 가졌던 심리적 저항감이 표면 위로 올라왔고, 주요 명품 플랫폼들의 이미지와 수익성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관건은 심리적 캐즘을 상쇄할 수 있을 정도의 소비자 경험이다. 흔히 드는 사례는 ‘햇반’이다. 론칭 초기 ‘냉동밥이 무슨 맛과 영양이 있겠어?’라는 심리적 거부감으로 캐즘 위기에 빠졌지만, 지속적으로 품질과 편의성을 검증받은 끝에 시장을 새롭게 확장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스타트업 생태계 내의 모든 비즈니스는 캐즘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스타트업이 표방하는 혁신의 본질은 결국, 주류시장을 지배하는 ‘기성의 방식’을 대놓고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심심찮게 발생하는 기성과 혁신의 충돌도 캐즘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타다 사태’나 ‘로톡 사태’ 같은 사건을 통해 동력을 잃는 건 혁신 사이드일 가능성이 높다. 펜데믹 기간, 의료 서비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줄줄이 등장했던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이 최근 줄줄이 폐업한다는 소식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우물을 깊이 파려면 넓게 파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캐즘 극복을 위해선 그 반대의 접근도 요구된다. 기술애호가이든 얼리어댑터이든, 초기시장의 메인 타깃이 될 그들에게 완벽한 만족도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최대한 깊고 단단하게 파고 들면서 자연스런 확장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한때는 생소했지만, 지금은 일상이 된 배달앱이나 새벽배송 등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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