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모르는 사람이 바로 옆에서 큰소리로 통화할 때다. 집에 어떤 우환이 있고, 부모랑은 어떤 갈등이 있고…전혀 알고 싶지 않은 남의 가정사를 속속들이 듣게 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나의 ‘모를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기분에 불편함을 너머 불쾌함까지 느낄 정도다.
요즘 뉴스를 보면서 비슷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가뜩이나 눈살 찌푸릴 일이 많은 요즘인데, 그런 일들의 막전막후를 필요 이상으로 속속들이 알게 되는 느낌이다. 작년 가을부터 이슈 몰이를 했던 전청조 사건부터 최근의 배우 이선균 사건까지, 일련의 소식을 들으며 느꼈던 피로감이 상당했다.
예전 같으면 심플하게 접하고 치웠을 소식들을 1절, 2절에 뇌절까지 늘어지게 만든 원흉은 단연 유튜브다. 자극을 더해가며 확대‧재생산되는 것도 모자라 지극히 선정적인 가짜뉴스까지 판을 치니 이슈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을 재간이 없다. 일례로, 맨 처음 마약 투약 의혹으로 시작한 이선균 사건은 무려 2개월 동안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더니, 급기야 파렴치한 가짜뉴스들로 점철되기 이르렀다. 그 사이 재능이 넘치던 배우는 비극적인 최후을 맞았다. “장례식장을 점령한 유튜버들이 유가족과 지인들에게 무자비하게 카메라를 들이밀었다”는 소식은 요즘 뉴스가 주는 피로감의 전형이다.
누군가는 알 권리의 무한 충족이라고 반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서 지하철 사례처럼 모를 권리도 존중 받아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면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도 모순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강력범죄 현장도 피부에 와닿게 가까워진 느낌이다. 예전 같으면 ‘크라임씬’으로 꽁꽁 싸매뒀던 범죄의 단면들이 드러나는 일이 잦다. 얼마 전 이재명 피습 사건 같은 게 대표적이다. 눈을 의심케 할 만큼 적나라한 범죄의 순간을 보며,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나’ 의심했을 정도다. 모방범죄 같은 부작용은 차치하고, 그냥 애써 보고 싶지 않은 걸 굳이 보는 현실이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이 역시 유튜브의 지분이 상당하다. 심지어 보도전문 방송사의 유튜브 채널조차 자극적인 제목과 충격적인 썸네일이 넘쳐날 정도다.